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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Sep 26. 2024

신령 축문

2부-7화. 동네 경찰 ▶ 신령 축문

누런 살쾡이는 수몰작전 성공 유무를 떠나 여우와 함께 있던 검은 나시에 대해 적개심을 누그러트릴 수가 없다. 여우와 남자가 온기를 나눈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본 뒤, 온통 머릿속은 화산 폭발 직전 화구에서 흘러내린 용암 뱀처럼 꿈틀거려 미칠 듯하다. 살기를 억제한 웅크린 심장이 화도 아래서 때를 기다리며, 마그마방에 분노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저 두릅나무 아래서 산제사를 올려야겠어


산신제는 마을의 수호신을 산신으로 여기고 산신에게 드리는 제사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올리며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한 해 동안 무탈하고 안녕을 기원한다. 사실은 마을 사람들이 산신의 보호와 위력을 믿거나 적어도 산과 산신에 대한 존중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산제당은 마을을 수호하고 복덕을 내려주는 산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곳이며, 산신이 강림한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산제당은 마을의 뒷산이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근의 높은 산에 자리 잡고 있다. 산제당은 대체로 제기와 제주 등을 보관하는 당집, 제물을 씻고 목욕재계하는 샘, 제물을 올려놓고 제사를 드리는 제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제사는 제물 올리기 ⟶ 축문 읽기 ⟶ 소지(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쓴 종이) 올리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산제사가 시작되면 마을의 각 가정에서도 작은 상에 시루를 올려놓고 기도를 한다. 산신은 그 형상이 동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마을을 지켜주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영험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산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거나 산제당 근처에서 불경한 일을 할 경우에는 산신으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마을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산제당 근처의 나무를 베면 해를 입는다든지, 산제당을 철거했다가 해를 입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실제 마을 사람과 결부되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1)


누런 살쾡이는 혼잣말을 삼키며, 텐트에서 챙긴 여우와 검은 나시의 팬티를 바닥에 펼친다. 그러다 장롱 깊숙이 보자기에 싸놓은 산삼을 꺼내 팬티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보자기 산삼은 살쾡이가 여우와 같이 살 때 산에 들어 붉은여우 꿈을 꾸다가 뱀에 물려, 죽기 전에 캐낸 삼이다. 살쾡이는 여우가 근신 생활을 방해하여 산신이 노했고, 붉은여우의 가호로 독사에 물렸어도 불사신처럼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산신제 제물은 마을 기금과 마을 내외의 찬조비로 마련한다. 때로 현물로 찬조품을 받기도 한다. 제물은 술, 돼지머리, 북어, 백설기, 각종 전, 과일, 과자 등이며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산신제는 특정한 날을 정하여 자시에 시작한다. 제의는 유교식 제례절차를 따른다. 제의는 진설,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소지, 사신, 음복, 파제 순으로 진행된다.


초를 켜고 향을 피우고 산신에게 술잔을 올리고 절한 뒤, 축문을 읽고 절한다. 이후 술잔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두 번 반복한다. 이후 산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빌며. 고수레를 하고 축문과 지방을 태우고 촛불을 끈다. 제의가 끝난 뒤 음복한다. 제물을 그대로 두고 산신당에서 내려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산신당에 가서 제물을 가지고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한다.


구전에 의하면 범을 산의 주인으로 여기는 마을에서 산신제의 제물이 특이하다. 제물은 인간이다. 마을에서는 처녀를 산신에게 바치고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금기를 잘 지켜서 산신의 화를 사서는 안 된다. 마을의 평안을 빌고자 하는 산신제에 부정이 타면 오히려 마을에 우환이 생기기 때문이다.2)


붉은여우가 점지해 준 산삼을 남에게 팔면 채삼 한 심마니가 단명한다는 습속을 중히 여겨 팔지 않고 신줏단지처럼 보살핀다. 살쾡이는 산삼을 여우가 팔아치우지 못하게 숨겨놓고, 온갖 정성을 들여 미라처럼 말려 놓았다. 그 사건 이후 뱀에 물린 다리가 썩어 채삼을 제대로 못하자 여우는 살쾡이 곁을 떠난다. 살쾡이는 삼령 높은 산삼 두 채를 무당에게 큰돈을 주고 신풀이하는데 신기 받은 부적처럼 소중하게 보관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강림한 태백산을 비롯해 산은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의 주요 대상이다. 더구나 생활이 궁핍한 산촌 주민들에게는 풍요를 안겨주는 산이야말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산신은 산촌 주민들에게 인간에게 병이나 재난을 안겨 주는 정도가 아니라 산림의 주인으로 산신에게 혜택에 감사하고 풍요를 빌기 위한 산신제는 절대적이다. 자신들의 생존을 돕는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의 정령을 숭배하고 제의의 대상으로 삼는 풍습이 제의 형식으로 굳어져 전해진 것이다.


예로부터 봄철 삼짇날, 가을철 중양절에 산신제를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봄은 생명의 기운이 없어 보이던 겨울에서 벗어나 생명의 발산이 극에 달하는 여름으로 넘어가는 경계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고 식물들이 움을 틔운다. 가을 역시 여름의 왕성한 생명력에 힘입어 곡식과 과일 등이 수확되면서도 생명의 기운이 꺼져드는 겨울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그 대표적 절기가 삼월 삼짇날과 구월 중양절이다.


도가는 책력을 보는 사람으로 산신제를 올리기 3일 전부터 동침을 삼가고 부부 관계를 하지 않으며 상가에 가지 않고 개 잡는 모습을 보지 않는다. 도가는 제수 마련을 위해 혼자 인근의 시장에 나가 장을 보되 값을 깎지 않는다. 산신제 당일에는 부정한 사람이 아니면 마을 사람 누구나 참석해도 좋지만 도가를 비롯한 유사 등 책임자 서너 사람이 산제당에 올라온다. 부정한 사람 아니면 마을사람 누구나 참석해도 좋지만 여자들은 부정 시 한다.


하루 중 해뜨기 전에 치러내는 제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① 제당 안에 마련된 단에 양쪽에 촛불을 켜고, 창호지 2장을 각각 산신과 수배신 앞으로 한 장씩 걸고, 산제당에서만 쓰는 실도 한 타래 바치고, 음식을 차려놓는 등 제물을 진설한 후에 도가와 참가자가 함께 절을 한다. 이어 ② 바가지로 부정 치기를 하고, ③ 향나무나 만수향을 올리고, ④ 다시 도가와 함께 절을 하고 술을 올리고, ⑤ 삼백육십 오일 매일이 밝아지도록 수배신에게도 절을 하고, 술을 올리고 축원한다. 다음으로 도가가 ⑥ 자신의 집부터 시작해 각 가정의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올리는데, 만약 소지가 잘 오르지 않으면 서낭당에서 다시 올린다. ⑦ 마지막으로 물을 떠서 눈으로 들은 부정, 귀로 들은 부정, 모든 부정을 가셔 달라는 말로 부정을 가셔 내고, 마지막으로 음복을 하는데, 우선 산신에게 바치는 술을 땅에 붓고, 도가부터 차례로 술을 마시되 제당에 절한 사람에게만 잔이 돌아간다.3)


제수로 진설되는 모든 음식은 조리하지 않은 생물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백설기와 메, 미역국은 당일 저녁 산제 샘의 샘물을 길어서 화톳불을 놓아 짓는다. 예전에는 백설기가 다 익으면 시루를 떼어 제단에 진설하기 전에 제관이 산등성이로 나아가 동네 주민들을 향해 마중시루 떼 시오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각 가정에서는 그 소리를 듣고 시루를 떼다가 장독대와 안방 성주신 앞에 차려놓고 소지를 올리며 고사를 지낸다.4)


살쾡이는 자신의 죽음과 맞바꾼 삼령이 족히 백 년이 넘는 산삼 두 채를 여우 팬티와 나시의 팬티에 하나씩 말아 신령에게 제물로 진설하고 제상을 차린다. 두 사람의 인령을 단축해 심령이 높은 산삼으로 바꿔 채삼 할 수 있게 산신제를 올린다. 제당은 붉은여우가 출몰한 산기슭 두릅나무 밑으로, 음산한 기운이 흐르는 터로 정하고 제사를 지낸다. 살쾡이는 신령에게 축문을 올린다.


유세차 음력 9월 9일 심메마니가 감히 밝혀 아룁니다.


신선계곡 천년운산 성황의 존엄하신 신령이 험한 고개를 지키며 사니, 산신과 수신을 모두 다스려 강림할 때에 조화롭게 하고 화복을 유지하여 내려오니, 그 권위가 매우 엄하고, 그 효력이 지극히 밝으니 신의 도움은 이와 같습니다.


심메마니는 채삼 하며 살아가니, 신령님을 존경하여 우러러보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해마다 춘추에 각자 정성을 다하니, 지금 같은 좋은 시절에도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실로 신의 도움에 의지함으로 정성스레 빌어 목욕재계하고 돼지고기를 저미고, 술을 빚어 수없이 절하며 바랍니다. 바라고 또 바랍니다.


신령님이 우리를 도와 재앙이 멀어지고 없어지게 하시며, 길조가 연달아 더해지며, 바라는 바가 이미 이루어져 집안이 풍요로워지고, 채삼 판매가 늘어 이윤이 늘게 해 주십시오.


분명 여우와 검은 나시가 신선계곡에서 함께 왔으니 영영 도망가 버리어 제집을 안심시켜 풍요롭게 하고 길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상향


누런 살쾡이는 제사상을 차리고 준비를 마치기까지 20분 동안에 제물을 올리고 축원한다. 번거롭지 않게 아뢰기를 바라며 조용히 올린다. 살쾡이는 신령을 향해 갖추어 청하며 경외하며 신께 술과 백 년 묵은 산삼을 올린다. 제사 산신과 수신을 모두 다스리는 천년운산의 신령께 소지를 올린.


“신령님, 굽어살펴 주십시오.”


“모든 잡귀들은 흠향하시고 심메마니를 제발 도와주십시오.”


“신령님 거처를 모독하고 더럽힌 두 잡귀, 여우와 검은 나시의 기운을 백 년 묵은 산삼과 제수하니 부디 그들의 연령을 이 삼에 불어넣어 신령님의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꼭 한 가지 소원을 바란다면 잡귀인 여우와 검은 나시의 명을 거두어 천년운산 심메마니가 높은 삼령 채삼을 바라고 바라옵니다.


 신령님 두 잡귀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1) 서영숙 (2007). 음성 지역 산신제와 산신설화의 전승양상- 이진말과 용대동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77, 727-750.
2) 김순재 (2023). 범 전설의 마을 지명화와 산신제의 전승 -충남 논산시 범골을 중심으로. 지명학, 39, 118-142.
3) 김정하 (2007). 인제군 산신제(山神祭)의 시기 및 구성 원리 고찰. 아시아강원민속, 21, 145-166.
4) 강성복, 박종익 (2013). 세종시 양화리 원수산 산신제의 전통과 전승양상. 어문연구, 75, 139-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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