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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Oct 31. 2024

동네 주민

3부-7화. 동네 경찰 ▶ 동네 주민

강산이 한번 바뀌고 생활을 끝낸 꼬마 경찰은 어느 시골의 동네 경찰이 되었다. 경찰관서는 1급, 2급, 3관서 구분되는데 꼬마 경찰은 운 좋게 모든 급지에서 근무하며 도시, 산골, 농촌, 어촌 마을 주민들과 같은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두메 마을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파출소 옆 단층으로 된 붉은 지붕 아래에 두 노인이 살고 있다. 읍내 오일장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마음은 바쁜데 몸은 따라가기가 싫은지 멈칫거리는 몸짓이다. 3단 신발장 문이 열리고 하얀 스포츠머리에 허리 꼿꼿한 노인이 서있다. 3단 왼쪽 첫 줄에 머리가 놓인 검은 단화 목을 오른손으로 밀어 넣고는 구두 앞 천장에 손가락 네 개를 집어넣고 윗부분을 살짝 들어 올린 뒤 앞 쪽으로 보낸다.


닫힌 장에서도 먼지가 똬리를 틀었는지 구두 앞코에 허연 비듬 같은 작은 가루가 묻어있다. 노인은 왼 손 엄지와 검지로 구두 양 볼을 잡아들더니 오른 손가락 살 등으로 먼지를 털어낸 뒤 조금 남아있던 가루가 눈에 거슬렸는지 입술을 오므리고 큰 숨을 들이쉬고는 입김을 후~우하고 거침없이 세 번을 분다. 헛기침이 나오자 앞부리에 침이 튀여 여러 방울이 가죽을 확대하고 있다.


노인은 신발장 하단 틈이 없는 서랍을 열기 위해 왼 손으로 문짝을 밀고 왼발로 밑 둥을 받치더니 오른손으로 미닫이 서랍을 어기죽 어기죽 연다. 그 안에 놓여있던 털이 듬성듬성 빠진 울퉁불퉁한 검정갈색 구두 솔을 시멘트 바닥에 두세 번 빗질한 뒤 구두 콧등과 옆면을 털기 시작한다. 앞에 묻어 있던 방울이 길게 퍼지자 동그란 말 그림 구두약 뚜껑을 연다. 구두약은 오백 원 동전만큼 쪼그라들어 구둣솔을 비비자 솔에서 빠진 허리 잘린 털이 배짝 마른 구두약 옆에 누워 서로의 노쇠함을 인정하는 듯 엇비스듬하다.


시간이 훅하고 지나간다고 했는데 그걸 느끼고 있다. 까마득한 깊이에 추를 달고 내려가는 깊은 샘 두레박은 차가운 물이 다일 때 어떤 기분일까. 후루룩 내려가는 밧줄은 시간이 스며들어 맨드리 살이 까칠한 결로 성장했다. 아니 늙어서 비늘이 벗겨지는 틈까지 와 버린 게 틀림없다. 햇빛을 가만히 쳐다보면 서서히 빛이 살에 박혀 털을 지나 그림자를 만들고 정오에 바짝 오른 빛은 털구멍을 빼고는 물속에 던진 돌멩이 마냥 붉게 익는다.


장독대 구석에 버려진 남향 도자기 그릇 안에 자라고 있는 녹색 풀뿌리를 젖시고 흘러나온 천연수를 맞이한 플라스틱 받침대는 10년이 지나자 서서히 본연 성질로 회귀한다. 그 안에 눌어붙은 세월을 할머니가 닦아내려 수세미를 비비자 손가락 사이에 둥글고 거친 알갱이가 각질처럼 허옇게 묻어난다. 이제 수명을 다한 자세일 거라고 노인은 단번에 알아챈다.


"오랜 날..."

머릿속 저편에서 몽개몽개 뭉쳐있지. 뭉게구름처럼 덩어리 보따리가 솜사탕 되어 뜯어서 입에 넣으면 눈 녹듯이 녹잖아. 사실 조금씩 뜯어먹어야 제 맛인데 언제부턴가 솜사탕은 가짜 사탕이란 걸 알았지 뭐야. 친구들은 살살 녹는 맛이 좋아라. 엄마한테 사 달라 조르면 솜사탕을 만드는 아저씨는 코웃음을 지으면서 더 졸라 데라고 고개를 조금씩 위로 들어 올리곤 했는데...

나랑 같은 편 같았지만 사실 엄마가 내편이란 걸 커가면서 알았지 뭐야. 그땐 몰랐는데 철부지 어렸을 적 사랑을 몰랐다는 노랫말처럼, 근데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즐겼던 설탕 거미 줄은 이젠 찾아보기 어려운 먹거리가 되어 버렸어. 앳된 시절에 엄마가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사달라고 발버둥치곤 했는데...

손자의 신병훈련 수료식이 있었지. 아들은 어머니 손을 붙잡고 손자가 있는 연병장으로 찾아가다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표정이 무뚝뚝한 아저씨의 뒷발이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어머니 발이 걸려 넘어졌어. 아들 손을 잡고 있어 그대로 주저 않았지. 솜사탕 파는 아저씨를 쳐다보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어...

아저씨랑 다툼할 생각은 일도 없었지만 어머니 무릎이 걱정되어 괜찮은지 덧없이 묻는 질문이 허공을 한참 돌아다녔어. 하필 그 시간에 뒷걸음질 처서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는지... 어머니 무릎은 흙먼지가 석면가루처럼 박혀 들었다. 손으로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도깨비바늘 같은 미국가막사리 씨처럼 생태교란종으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손자 먼저 만나보고 입영심사장 끝 쪽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안의 앞 서랍에 쟁여놓은 물티슈로 흔적을 지워보자며...

손자를 만나 서로 부둥켜안으며 그동안의 수고에 관하여 어깨를 쳐주며 북돋고 할머니는 손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비비면서 우리 손자 늠름하게 잘 버텼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연병장 바닥이 모조잔디로 깔아져 있어 쿠션 작용을 했다는 사실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서도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삼일이 되던 날 무릎에 검은 멍울이 나타나면서 아픔이 찾아왔다고...

교통사고가 나면 그 순간에는 괜찮다고 병원 진료를 머뭇거리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고서야 아픔이 생겨 병원에 가는 경우가 다반사잖아.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이 흘러 가슴을 훔치고 맴돌다 귓가에 머물고 있어. 멜로디가 90년대로 가둬두는 묘한 속삭임 같더라. 내 맘 깊은 곳에 슬픔 하나로 충분하니까...


오래된다는 사실은 시간을 먹고 자랐다는 말이고, 추억은 시간이 흘러간 흔적을 따라 물길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여행은 마음을 들뜨게 하니까 동요하는 감정을 공유하면 물체 사이에는 흥분하게 하는 물질 분비를 촉진시킬 거야.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을 가지면 박동들뜨듯이... 여행처럼 시작된 산골 마을의 경찰 심장은 동네 주민들과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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