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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Oct 24. 2024

가야 할 길

3부-5화. 동네 경찰 ▶ 가야 할 길

추모 공원을 자살 예방 특별 구역으로 선포한다. 동네 경찰이 예방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어느 날 공원 근무자가 동네 경찰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무릇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부딪치고 어울려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어쩌다 사이코패스가 되기도 하고 인지 부적응자가 되기도 한다. 놀기만 원하고 공부하거나 독서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오락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거나 색에 취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는 분열 망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세상을 등지는 자세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영생을 구원받고자 종교에 심취하고 철학에 몰두한다. 세상의 끝을 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순간에 경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과 시작이 함께 하는지, 끝이 정말 끝인지 모르기에 답답할 뿐이다. 주저리주저리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가고 있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없고 믿을 수 있는 정체나 과정도 없다. 쉽게 빠져들지 못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만지고 싶지만 만질 수 없고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먹다 보면 어느 순간 헛것이 보이고 실제 먹지 않았지만 먹은 것 같은 망상이 떠오른다. 과연 먹었나 싶다. 삶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이 나는가? 나만 생각하고 나만 외로운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 꿈속에서 무언가를 만나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 뇌 안이 어지럽기만 하다.

  

피아노 소리가 어느 순간 아름답게 들리지만 어느 땐 정말 쿵쾅거리는 것이 귀에 거슬리다 못해 부숴 버리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한다. 어제 꿈을 꾸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잘 안 됐다. 거머리가 붙어 떨어지지 않고 나와 거머리가 하나가 되어 서로를 공유하고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먹고 먹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은 서로가 동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한 선에서 협의한 내용이다.

    

가끔 미래 아닌 미래가 보인다. 환상인지 악몽인지 모르는 그런 뒤죽박죽인 미래, 과거보다는 미래가 자주 보이는 것 같다. 과거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강한가 보다 아니 미래의 행복한 꿈들을 바로 시작하자. 영생을 살고 싶은가? 누군가에게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현실에 최선을 다해 누군가의 안내자가 되어라. 그러면 반드시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근원은 형태와 형상이 뚜렷하게 남아 자신의 존재를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준비되었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남들 앞에 보여주어라. 그들이 인정한다면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다.


생명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전달하며 영원히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삶의 지원자가 된다면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존재는 존재에서 출발하고 희망은 희망에서 출발한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처음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고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는 것이다.


시작과 끝을 어떤 가짐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영원하고 절멸하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존재하니 존재한다. 사라지니 사라진다. 보이지 않으니 없어졌다. 없어졌으니 사라졌다. 흔적과 느낌으로 삶을 보지 마라 그저 그런 것에서 영생을 찾는다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가서는 것과 멀어지는 것은 단지 느낌과 차가운 기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진대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갈 수 있다면 가라, 가고 싶다면 떠나라"


오고 가는 것은 너의 두발에 달린 것이지 누가 너를 붙잡아 두거나 어렵게 선택하지는 못한다. 지금이라도 벗어던지고 간다면 넌 너의 길을 찾을 것이고 난 나의 길을 펼칠 것이다. 무엇이 고 그른지는 살아봐야 알 듯 떠난 자리는 사라져야 사라진 것이다.


고통을 받고 있다면 고통을 떨쳐내고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을 덜어내고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받아들여라. 단지 왜라는 의문문으로 다가서지 말고 온몸으로 거부하거나 맞서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최선을 다해 느껴라. 그것은 네가 가져야 할 감정으로 행복과 사랑의 충만함이 함께하니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맺을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현실에 최선을 다해 나가라 언젠가 네가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도로는 다양하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인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 어떤 길로 들어설지 돌아설지는 각자의 판단 기준에 달려있다.


"시작과 끝"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환생하거나 윤회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단지 네가 가야 할 곳으로 넌 간 것이고 그것이 새로운 길일 때 넌 다시 태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죽어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육체에 새로운 믿음이 생성되어 시작하는 것이지 또 다른 네가 태어나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는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존재로서의 가치가 빛을 발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너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너로 인해 다른 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지침이 되어 주는 것이다. 삶을 방해하거나 괴롭히는 존재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움트게 하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지라는 것이다.

간다고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지 사라지는 것은 어딘 가에 묻히는 것이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작은 기운으로 남아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 남는 것이지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삶 속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현실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존재로서의 가치가 조잡해지는 것일 뿐이다. 사라지는 것은 연기이지만 다시 피어나는 것도 연기일 것이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삶과 죽음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허비하지 말고 다가서는 마음으로 항상 정진하기 바란다.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삶의 무게를 느낄 때 나는 너를 선택했고 너는 나에게 의지하였다. 삶은 단지 삶을 위해 사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존재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삶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나누려고 했는가? 사는 것에 쪼들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을 텐데 말이다.

삶이 다가왔을 때 너무 억눌리지 말고 아주 자연스럽게 공기를 맞이하듯 대하라. 그 중심에는 너의 기운과 정성이 깃들려 있을 것이다. 간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가면서 흘리는 것은 너의 땀과 그리움일 것이다. 지금 가더라도 두려워 말라. 언젠가 가야 할 길을 조금 먼저 출발하는 것뿐이니.

벌써 시작해서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난 단지 오늘 왔을 뿐인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언제 왔냐고 했는데 벌써 간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한참 지난 후에 와도 될 것을 왜 그리 어이없게 왔다가 가느냐. 한 줄기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오늘도 달렸는데 어이하여 내일이 없다고 소리치냐. 너 없이 살아온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그렇게 쉽게 떠나가느냐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만나 떠날 준비를 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넌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이제 떠나야 한다면 마음 편안하게 떠날 준비를 하거라. 간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떠난다니 맘은 행복하다.

시작점과 끝 지점은 동일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같은 공간으로 가겠다고들 야단들인지 모르겠다. 알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천지에 널렸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갈 곳을 모르지만 가자. 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여 쉬고 있지 않겠는가? 갈 곳 없는 이가 너뿐인가 하여라.

   

여긴 어디, 여기가 어디라면 너는 말해줄 수 있나?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려줄 수 있나 현인들에게 항상 물어왔던 이야기 중 하나가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단골 문제 아니었던가?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떻게 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고 그러다 보니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단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허비한 시간이 억 만하고도 숨 멎을 듯하다. 형상이 만들어지고 가슴이 생기던 날 나는 뛰어다닐 수 있었고 그런 존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세상과 담쌓고 나가기를 거부하였지만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살아왔고 살아온 시간을 되새기며 어둠의 그림자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움을 나누지 못했고 아픔은 아픔으로 마주한 채 오늘도 삶을 내달리고 있다.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말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지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삶의 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있을 때 잘해”라는 몇 마디 안 되는 글귀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 세상에서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했을 뿐이지 실제 우리가 보는 것과 존재의 가치는 대립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대가 필요 없는 존재라면 당신을 잉태한 존재도 쓸모없는 존재였던가? 그건 그릇된 생각일 게야. 자식인 나로, 부모인 너로,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로 가치를 품었을 것이야. 언젠가 어디서든 너와 나라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 상대에 대해 심도 있게 숙고하고 존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


추모 공원 관리원은 몇 주 전부터 본인 어깨에 담이 걸렸는지 무겁고 찌뿌둥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도 병세가 좋아지지 않고 더 심해졌단다. 점집에 갔더니 어깨에 붉은여우가 들러붙었다는 점괘를 받아, 떼어내려고 신기 강한 무당에게 굿판을 벌였는데도 소용이 없다며 혹시 좋은 수가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동네 경찰은 이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누런 살쾡이를 키워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 흐르는 소리로 말한다. 공원 근무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소문 끝에 애완용 사바나 고양이를 입양하여 키운다. 그 뒤로부터 어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결 가벼워졌다며 관리소 입구에서부터 연신 고맙다고 두 손을 잡아 아래위로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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