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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꽃 틔운 할머니

꽃말 파는 월하노인을 만나다

by 천년하루

선생과의 싸움으로 유급 위기에 처한 3학년 4반 채석 군

도내 예쁜 화단 꾸미기 대회 중 교생 채승의 지적에 화가 나

마지막 수행평가서를 찢어버리려는 찰나

성준이 나타나 잠시만 참아 달라며 채석을 만류한다


2층으로 이뤄진 기숙사 침대 구석에 이불을 덮어쓴다

이불 아래 숨을 몰아쉬고 있던 채석을 향에 할 말이 있다며

2층 침상 위로 오라고 전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학교 더 다닐래 아니면 그만둘래


대화로 풀어야 될 일을 이런 식으로

되지도 않는 감정 쌓기를 할 거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고등학교가 대학교도 아니고 4년을 다니려고 하니

어서 사과하는 것이 신상에 좋지 않을까?


꽃을 사러 꽃집에 들른다


주인이 자리를 비워 가게 앞에서 성준이 서성거린다

채석은 내부 마룻바닥에 펼쳐진 홑이불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8분의 시간이 흐를 때쯤이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들어선다

채석을 보고 당장 이불을 걷어 내놓으라고 호통친다

채석은 고개를 숙인 채 민망함을 숨기려

어디 갔다 왔냐며 도둑 들까 걱정했다고 화제를 돌린다


채석은 꽃말이 사과인 꽃이 냐고 묻는다

주인아주머니는 그런 게 있나 모르겠다며

주변에 있는 꽃을 훑어보는 사이

채석은 생기 잃은 장미꽃 한 송이를 집어 든다

상한 꽃잎을 떼어 성준 앞 바닥에 떨구는데

다른 장미송이도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주인아주머니는 채석에게 없다고 하는데

꽃집 아저씨가 뒤뜰에서 개망초를 꺾어 안개꽃을 섞는다

이 꽃말이 '맑은 마음의 사과'라며 채석에게 건네준다

꽃을 건네길래 얼마냐고 묻자 구천이라고

카드로 계산하려는 채석을 성준이 잡아 현금으로 계산한다

주인이 연하게 웃음을 보인다

추가로 뜯긴 장미꽃 한 송이와 제일 작은 물 받침대도 구한다


옆 과일 가게를 지나는데 할머니가 채석을 살짝 부르더니

복숭아와 사과, 작약을 사면 좋은 일이 생길 게야

손자 같아 거저 주는 거라며 사천을 달라고 한다

채석은 못 미더워 이왕 선심 쓰는 거 꽃이 핀 과일이 있으면 더 좋겠네요

할머니는 직접 그린 민화 꽃을 사과, 복숭아, 작약에 붙여서 건네주더니

채석 엉덩이를 톡 치고는 담에 또 보자며 웃는다


과일 꽃 할머니 떨이로 화해한 채승과 채석은 6년 뒤

같은 학교 선생과 교생으로 만나서 부부교사의 연을 맺는다

학교에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다


깊은 사과는 상대가 감동할 수 있어야 진정한 맛이다

복사꽃은 화해, 작약 꽃은 새로운 시작, 사과 꽃은 유혹의 꽃말이다

매자 할머니가 전해준 생과일에 그림 꽃

화해는 유혹의 새로운 시작을 틔운 샘이다

성준은 채승 선생의 할머니가 7년 전에 잃은 외손인데

오지랖 풍년 꽃미남 꽃말되라며 화단에 뿌린 제비꽃을 모기가 물고 빨고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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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