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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영원이 순간으로 순간이 영원으로
by
우산
Jun 1. 2021
‘MAX DALTON 영화의 순간들’
전시에서
정지된 시간 속의 영속성을 보았다.
영화에서 없는 세상은 없다.
영화 속의 아름다웠던 장면은 멈추지 않고 관객의 삶에서 살아 숨 쉰다.
울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요정이 나타나 예쁜 드레스와 맛있는 음식을 주며 소녀에게 든든한 위로를 주기도 한다.
아무도 못 오를 것 같은 높은 탑에 갇힌 공주에게 영화 속 세계에서는 말을 달려 그 탑에 오르는 왕자가 나타난다.
아직 일반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화성의 아름다운 영상과 괴물도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마법 못지않은 놀라운 미래의 모습이 실현되기도 하고, 사랑과 이별, 갈등과 화해가 관객들의 심장 박동수를 쥐락펴락 한다.
그러니 영화 속 세상에는 불가능한 것은 없고,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람들 마음에 가려진 이면의 감정이 살아 움직이며 눈앞에 보이는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호수 위의 잔잔한 물결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집과 지옥보다 무섭고 잔혹한 세상도 존재한다.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그 순간 실존하는 세상과 영상 속의 세상의 간격을 없애고, 그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들과 또 다른
제3의 추억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제3의 세상이 예술가의 손에 맡겨진다면 예술가의 필터를 통과한 또 다른 색채의 제4, 5의 세상이 탄생한다. 그리고 순간이 영원으로 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처음 갖게 된 아이패드에 난초를 그려 보고 한시(漢詩) 한 수를 써넣었다. 꽤 흥미를 느껴 맘에 드는 풍경도 그려 보았다.
갈대에 둘러싸인 눈 내린 저수지, 사진을 놓고 그려 보니 제법 그럴듯했다.
물감과 팔레트를 펼쳐 놓지 않아도, 먹을 갈지 않아도 간편하게 태블릿 위에 그림을 그리고 저장한다는 것은 나만의 작은 요술 상자를 가진 것 같다.
그 그림은 언제라도 내 맘에 맞는 색으로 바꿀 수 있고 그림 안에 무엇인가를 더 그려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연습하면 제법 작품이 될 것 같은 기대도 생겼다.
이런 나의 어설픈 예술 흉내를 본 친구가 이 전시회를 추천하였다.
마침 친구들과 서울 둘레길을 걷기로 약속한 터라 삼성역에 있는 전시장을 집에 오는 길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장권을 예매했다.
아이패드로 그린 영화 속의 순간이란 어떤 것일까, 기대를 하며 전시장을 들어섰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전시장을 들어서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영화 세트 장 같이 꾸며놓은 대기실과 촬영용으로 전시된 그림을 보는 순간 그와 친숙해졌다.
한 번쯤 본 영화의 장면을 그린 장면이 눈에 띈 이유도 있지만 그가 쓰는 색채와 화풍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저학년용 학습지를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유난히 맘에 들었던 교재의 샘플 디자인을 통해 접했던 그림 풍이 바로 그의 작품과 비슷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 유명했던 그의 스타일이 많은 일러스트 작가들에게 유행했던 것 같다.
영화 속의 장면을 그린 것이라서 영화 속의 감동이 함께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으로 그림의 선이 단순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동화적이고 따뜻했다.
나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준 것은 영화 닥터 후에서 타임머신 역할을 하는 타디스 그림이었다. 짙은 녹색과 검정으로 선명하지 않게 나타난 숲 속 배경, 그림 위에 타디스가 작게 홀로 떨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 숲 속 배경 그림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타디스가 홀로 떨어져 울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림의 색채는 고요하지만 곧 떠날 것 같은 느낌도 물씬 풍겼다. 이것이 작가가 가진 고도의 표현력, 예술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맥스 달튼을 통해 재탄생한 영화 속 세상을 보며 전시장을 걷는 것은 영화 속 세상을 걷는 것과 같았다. 동시에 영화 속 감동이, 내 마음속 감성이 함께 움직였다.
마피아들의 세상도 그 인물들의 표정과 선이 단순화되어 다양한 성격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그들과 추억 여행을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단순하지만 배역이나 성격을
담아내는 고도의 표현력, 거칠지 않은 붓터치, 무엇보다 열려 있는 건물의 측면에 담긴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 모습을 작가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세밀한 선과 색으로 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문명이나 과학의 발달이 이런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과학 기술이 사람들을 성급하고 메마르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에 이 전시는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되었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영화에서 영화로 시대에서 시대를 넘나들고, 때로는 현실에서 우주라는 가상세계까지 여행할 수 있으니 이렇게 입체적인 전시는 없는 것이다.
또한 전시된 그림에 담아낸 다양한 직업 세계와 창의적인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직업탐색과 진로체험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타 그림만 해도 수십 가지 정도로 다양하게 그려졌으니 악기 연주자, 제작자, 디자이너로서의 동기 유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영화 호텔 부다페스트에 관한 그림이 주는 느낌은 원색을 피하고 분홍과, 순한 녹색 등으로 그려진 그림이 마음을 순화시켜주기 때문인지, 50이 넘은 내 마음을 동화의 세계로 성큼성큼 걸어가게 했다.
전시의 구성도 스타워즈를 그린 장면에서는 3D 안경을 쓰고 입체적으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했고, 음악까지 들으며 영화 속 장면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우리 영화를 아카데미에 오르게 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림 역시 그가 단지 영화 속 장면을 모방만 하는 작가가 아니라, 예술적 재창조의 능력이 있는 작가임을 입증해 주었다.
전시장을 떠날 때 내 마음에서는 몽실몽실 둥글게 뭉쳐진 민들레 홀씨가 형형색색으로 피어나 날아다니는 것 같다.
아침에 서울 둘레길을 걷고 몸에 배낭을 멘 채 들어선 전시장을 나오면서도 피곤할 줄 몰랐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먼 나라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게 예술의 매력이고 선한 영향력일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셀카만 찍고 돌아설 텐데 염치 불문하고 다른 관람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대충 한 컷 눌러줄 줄 알았는데 가로세로 휴대폰을 돌려가며 원거리 근거리 다양하게 찍어준다.
다음 작품 앞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역시 짧은 다리를 길게 찍어주려 애를 쓰며 찍어주었다. 다들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거나 착한 사람들이 전시회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설픈 그림을 보고 이런 좋은 전시회를 추천하며 격려해준 멋진 친구에게도 감사를 전해야겠다.
몇 가지 기념품을 사서 딸들에게 주었더니 전시회의 감동이 딸에게도 전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침울하게 하는 이때, 예술가가 전해 준 행복 바이러스가 우리 집에서 활짝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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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플러스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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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별, 긴 만남
10
설악산, 산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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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12
사진 전시, 박용기 님 '시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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