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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Dec 18. 2022

시험, 문제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쓰다(교단 일기)

보통 학기말 고사라고 하는 2차 지필고사 문제를 출제하는데 이번에는 지문 3개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작권 상관없이 출제 의도를  살린 문제를 내려고 하다 보니.

동 교과 교사가 지문을 브런치에서 가져온 게 있어서 글은 좋은데 저도 브런치 작가이다 보니 그냥 퍼다 쓰기 미안하고 댓글을 남겨야 하나 망설이다 새로 글을 썼습니다.

논어에 나온 구절과 뜻이 통하는 글이 필요했는데 급히 쓰다 보니 이상해서 수정하고 수정하고 시험 출제가 거의 한 달이 더 걸렸습니다.

교육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 범위가 좀 넓다고는 하지만  그림은 특히 신경 쓰이더라고요.

당랑거철이라는 고사성어 관련 그림도 찾다가 사진을 보고 사마귀를 그리고 수레를 그리고.

그러다가 미술학원 다녀본 딸이 낫겠지 하고 큰딸, 작은딸 모두 솜씨를 빌렸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큰딸의 사마귀 그림에 제가 색칠하고 수레 그림은 작은 딸이 태블릿에 그린 것을 사용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한 문제가 어렵게 탄생했다는 것을 알까요?

1차 지필 때만 해도  수업을 잘 듣던 아이들이 2차 지필 날짜가 다가오자 수학을 하느라 바쁜 모습이 보입니다.

2학년 과반 학생들, 수능이 끝나고 곧 자신들 차례라고 마음이 바쁠 테니 진학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한문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문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영역의 근간을 아루고 당황하고 바쁠 때 쉬어가며 숨을 고를 수 았눈 과목입니다.

직접적으로 올해 수능에 나온 최척전, 기타 고전 작품과 가사 작품 등에, 시구에 한자 어휘가 직접  쓰입니다.

세상이 바쁠수록 첨단화될수록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너그럽게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자꾸 과학, 정보, 기술, 숫자에 관련된 과목에 한문이 밀립니다.

도덕, 인성, 언어, 철학, 고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과목인데.

사마귀를 그리기 전에는 교미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말 때문에 사마귀가 징그러운 곤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다섯 번쯤 사마귀를 그리다 보니 귀엽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연습한 그림

큰 딸의 사마귀와 작은 딸의 수레

지필 문제에 들어간 그림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태어나 생명의 규칙대로 살아가는데 제가 선입견이 너무 강했나 생각이 듭니다.

한자도 어렵다는 선입견에 많이 뒤로 밀립니다. 한글보다는 어렵지만 약간의 시간만 들이면 결코 그렇지 않은데요.

한자는 중국 것. 한자는 어렵다는 생각에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한자로 기록한 문화유산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그 안에는 현대 사회에도 살아있는 가치들이 많이 있는데.

알아야 보이고 모르면 눈을 고 있어도 보이지 않지요.

저는 조금이라도 그 가치를 알리려 노력하며 수업을 하고 평가 문제를 만들고 학생들은 난 금요일 시험을 마쳤습니다.

또랑또랑한 눈빛과 밝은 얼굴로 수업을 하던 아이들 모두가 1등급은 아니라 안타깝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니 학생 시절은  점수가 전부인 것 같아도 결국은 과정을 밟는 성실함과 정답을 찾는 방법의 훈련, 틀린 문제들의 원인 찾기와 그 후의  태도가  삶의 자세로 남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곤충 그리기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넘어 연습하면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태블릿으로 그리기도 연습하며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는 교사의 시간을 수업자료 만드는데 활용하고 싶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교훈을 얻는 시험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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