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산 Apr 17. 2023

꽃의 눈물

외로움에 흘러나온 사춘기 소녀의 눈물(교단 일기)

  그 소녀는 다른 민들레보다 좀 더  키가 크고  꽃송이도 커서 장미나 철쭉에 비길만한 단단한 꽃인 줄 알았다.

 음악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즐거운 민들레인 줄 알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애의 흔들림이 리듬에  맞추는  흥겨움이 아니라  불안한 떨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필요한 서류를 가져오지 않아 어머니께 전화를 했는데 여러 번 해도 받지 않고 남긴 문자에도 며칠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보통의 부모님보다 무심함인지 삶의 힘겨움인지 모르지만 어린 소녀에게 힘겨운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 절실히 필요할 것 같아 그 아이를 불렀다.

 교사의 수업이나 말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

 교무실로 불러 방과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어머님의 퇴근 시간은 언제쯤 되는지 묻자 아이는 바로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야간에 장사하시는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거의 없고 말없는 오빠하고만 있다 잠이 든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길었던 외로운 시간, 가족이 와닿지 않는 상황을 오래 견뎌야 했다.

 내가 묻는 몇 마디 말에 오랫동안 바지랑대 끝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던 아이는 흐느꼈다.

  폭력이나 가정불화는 아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였지만  엄마한테 응석도 부릴 14세 소녀가 어려서부터 양친 모두 밤에 일하러 나가고 컴퓨터에 의지하고 좋지 않은 문화에 접하며 자신을 해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몇 마디 말에 이렇게 폭포수처럼 솟는 눈물은 아이의 외로움의 강과 이제 시작되는 사춘기의 감정이 만나 거센 파도가 되는 것 같았다.

 적지 않은 세월을 지나온 나도 아이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아이가 가여워서 가슴이 무너진다.

 그 아이가 앞으로도 혼자 보내야만 하는 시간들이 위태롭다.

 지금은 주변에 어리고 순진한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허한 마음에 누구라도 따라다니며 위험한 문화에 빠질까 하는 걱정이 된다.

 양친 부모님이 있는 학생들이라도 방과 후의 시간을 관리해 줄 사회복지사나 국가 기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도 어머니가 안 계신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는 중간에 집에 들러 저녁을 해 놓고 가게로 나가셨다.

  나는 엄마가 해놓은 밥과 국을 동생과 챙겨 먹었다.

  나는 책과 음악을 좋아하여 부모님의 부재를 외롭게  느끼지는 않았다. 동생들이 밖으로 놀러 나간 시간, 집 안의 고요를 즐겼다. 저녁 여덟 시나 아홉 시에 어머니는 돌아오셨다.

  그때는 다른 아이들이 어찌 사는지는 보이지 않아 그저 나에게 주어진 생활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요즘은 저학년이나 유치원생의 경우 방과 후에 부모와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많고 외식도 많이 한다.

 슬픈 민들레 같은 이 아이는 엄마가 언제부터 밤에 나가 장사하였는지도 모르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저녁에 집에 계시지 않았다고 한다. 늘 말없는 오빠와 덩그러니 집에 있었다.

 꿈이 뭐냐고 하니 막연하게 음악을 하고 싶은 민들레는 자신의 홀씨를 만들기도 전에 희망 주머니가 흔들린다. 친구들을 따라 자신을 해치는 일을 몇 번이나 했다고 한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3주쯤 전에 심어 네 개의 잎이 나온 방울토마토 싹을 보여주었다.

 힘겹게 싹을 틔우고 자라는 그 잎이 예쁘고 소중하지 않으냐고. 이 싹이 앞으로도 계속 자라야지 무너지면 얼마나 슬프겠냐고 물었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견디고 14 년을 산 너는 더 소중하고 예쁘고 잘 커나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는 바쁘고 지치신 거지 너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고 함께 있지 않아도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의 말이 어린 민들레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바쁘고 지친 삶이 어린 자녀에게 불안함과 외로움으로 전달된다. 안정되고 평안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밝고 여유롭다.

 물론 안정된 환경이 것이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흔들리면 그 영향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에게서 가정으로 청소년, 자녀들에게 그늘로 내려 않는다.

 어릴 때  장사가 잘 된 날이면 아버지는 주머니에 가득한 지폐를 보이며 달라고 하지 않아도 용돈을 쥐어 주셨다.

 차츰 장사가 덜 되고 집세가 부담스러워지며 쓸쓸해하시던 아버지의 표정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민들레의 아픔은 부모님께도 전하고 전문가에게 상담 신청도 할 것이다.

 물론 나도 민들레에게 상쾌한 바람도 불어주고 칼슘, 미네랄  같은 영양도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 끝에 이 세상 모든 음악을 들어 보고 멋진 음악을 작곡할 꿈을 키우며 시간을 채워가라고 했다.  세상의 멋진 음악은 작곡가의 외로움과 고통 속에 피어난 것도 많다고.

하지만 중1 소녀에게는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흙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오늘 그 민들레가 나랑 이야기를 나누며 흘린 눈물만큼 외로움이 덜어지고 행복이 자랐으면 좋겠다. 작은 꽃의 아픔이 내 마음에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마음에 파고든다. 오늘은 힘을 내어 일어서기보다 가녀린 꽃줄기처럼 그 바람 따라 아픔을 맡기고 싶다.








이전 04화 호기심일까, 말썽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