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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Aug 27. 2023

평범한 날들

출근 1등 하다 (교단 일기)

서울에 갈 때는 주로 사당역까지 좌석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서울에서 있는 모임에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온다.

1학기는 의정부로 출근하여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살았는데 이번 학기는 서초동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길찾기를 검색하며 차로 갈까, 좌석버스를 탈까 망설이다 처음에는 할 일도 많고 동네 지리도 모르니 자동차로 출근하기로 했다.

대중교통은 갈아타고 걷는 거리까지 1시간이 더 걸리고 차는 일찍 나가기만 하면 35분이면 된다.

교사의 일이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하는 것이 아니고, 서서 수업하고 교실을 자주 왔다 갔다 하면 서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그러니 대중 교통을 갈아타고 다니면 너무 힘들 수도 있다. 다니던 학교도 아니니.

일단은 일찍 가는 거야.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여유 있게 아침을 시작하는 거야.

공공기관은 5부제로 자동차 뒷번호에 따라 주 1회 자동차로 출근을 할 수 없는데 다행히 친환경차는 5부제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수원, 안양, 과천을 지나지만 20여 Km밖에 되지 않는다.

우면산 터널을 지날 때까지 직진만 하면 되고 집에 와서 수업자료라도 만들려면 노트북을 들고 다니니 자동차 출근이 편하다.

집에서 6시 10분에 나가면 6시 50분 쯤 도착한다. 이 정도면 일찍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여름이 마지막 열정으로 익어갈 무렵 새로운 학교 출근하였다.

운동장에는 운동하는 주민들이 보이고 주차장에는 다른 차가 없어서 좁은 주차장이지만 차 세울 자리를 고를 수 있다.

초록색 인조 잔디 건너 중앙 현관 양쪽으로 묶어 놓은 커텐처럼 분홍색 배롱꽃이 나를 반긴다.

키작은 아이들도 보라고 낮은 곳에서 건물 위쪽 높이까지 가지런하게 피어 있다.

이 익숙함. 지난 학기에 내가 근무하던 교무실 앞에 늘어졌던 그 배롱꽃이 낯선 학교에서 친숙한 인사를 한다.

느긋하게 걸어가 가지런히 꽃대를 타고 올라가 피어난 꽃 사진을 찍고 빗방울 머금은 모습도 찍는다. 기분이 좋다. 교문에서부터 학교의 깨끗한 전경을 바라보며 점점 가까이 걷는 기분은 왠지 무대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다. 출근 시간에 임박해 주차하고 교무실로 들어갈 때는 알지 못했던 기분이다.

벌써 몇 년째 이 학교에 다닌 선생님도 그 꽃이 양쪽에 핀 줄 몰랐다고 한다. 이름도 새롭다고 한다.     어느 날 퇴근 길에 원어민 선생님에게도 이 꽃의 이름은 배롱꽃이라고 중학교 영어로 알려주었더니 이름이 예쁘다고 했다.

지난 학기는 학교 근처에서 살아 출근 시간이 6분 거리니 8시 30분에 집에서 나간 적도 있다.

이른 아침 공기를 들이느라 복도와 교실의 창을 열고 남모르게 일찍 아침 풍경을 감상하고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신다.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라 학생 자료를 살펴보고 수업 준비를 한다.

이제 출근한 지 열흘이 되었다.

여름날을 뜨겁게 달군 교권 회복을 위한 외침과 안타까운 교사들의 죽음 소식으로 가슴이 타버릴 것 같은 날들이 지나고 있다.

그 논란에 선 지역 서울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하니 그저 하루하루 평범하기만 바라본다.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지만 주로 지방과 경기도 지역에서 살고 가르치던 내게 조금은 부담과 두려움이 일어난다.

서울 아이들 어떻게 다른가 하니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부모님 중에 법조계 종사자들이 많기는 한 것 같다.

경기도에서는 사라진 상벌 점이 그대로 시행되고 등교 시간도 빠르다.

나는 경기도민으로 경기도 학생들의 9시 등교가 서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는 느낌이다.

성장기에 잠 더 자라고 늦춰진 등교 시간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나도 빠른 출근을 하다 보니 저녁에 일찍 잔다. 등교 시간이 늦어도 지각생은 줄지 않는다.

부모들 출근하고 깨울 사람이 없어 만성 지각인 학생들도 있다.

수업은 그대로 학습지 하고 크롬북에서 단어 찾고 수업 발표한 학생 토이 스토리 도장 찍어주고, 부수 노래도 부르는데 학생들은 잘 따르고 있다.

 토이스토리 캐릭터 도장은 스티커 대신인데 학습 동기 부여가 된다.

초등학생들은 수업 잘하는 학생에게 스티커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비교가 되면 정서학대가 될 수 있다고. 좋은 쪽으로 강화가 될 텐데.

서울 강남 학생들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일부 좀 특이한 학부 형들이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젊은 교사의 희생과 문제 제기를 하는 목소리를 듣고 다소 조심은 할 것이다.

민원 전화가 직접 담임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은 잘된 일이다.

바로 2학기 상담 주간이라 몇 분의 어머님들과 면담하고 전화상담도 잘 끝났다.

손자를 키우는 7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님이 병 음료를 들고 오셨다. 한사코 만류해도 드시라 한다.

노인에게 무거운 그걸 다시 들고 가라 하기에 아직 더운 날씨다.

오시느라 목마르실 테니 하나 드시라 따 드리고 마침 청소하시는 분이 지나길래 두 개를 드렸다.     

그리고 좀 가벼워졌을 테니 나머지는 도로 가져가시라고 가방에 넣어드렸다.

듬직하고 성실한 학생이라 손자를 잘 키우셨다고 말씀드렸다. 노인정에서 봉사도 한다니 평소에도 손자 칭찬은 자주 들을 것 같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손자 칭찬이 노인의 기쁨이리라.

할머니의 손자는 매일 일기를 쓴다고 한다.

학원을 다녀야 하느냐고 묻기에 꾸준히 스스로 공부하면 3학년 때까지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성실한 그 학생이 책 읽기는 싫어하여 할머니가 잠이 안 오니 한 페이지만 읽어달라 하여 매일 한 쪽씩 책을 읽게 한다고 하신다.

참 지혜로운 할머니와 착한 손자이다.

아이가 꾸준하고 성실하니 한자 급수 문제집 사서 하루 한 쪽씩 공부하면 큰 도움 될 거라 했더니 그거 좋네요 하고 만족해하신다.

TV에 나오는 배우처럼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할머니 학부 형과의 상담을 끝으로 한 주를 마무리했다.

여름이 가고 하늘이 푸르고 높아지는 계절이 다가온다.

사람들을 힘겹게 했던 무거운 소식과 날씨가 가을과 함께 서로 신뢰하고 상식이 통하는 날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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