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중학교는 보통 체육대회라고 하지만 올해는 이벤트 회사가 와서 운영하는 ‘명랑 운동회’라고 했다.
몇 년 전 학생 수가 적은 경기 북부 학교에서 이런 형식의 명랑 운동회를 한 적이 있었다.
운동장은 넓고 학생 수가 적으니 남의 경기를 구경하느라 지루해서 학급 대열을 이탈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이 학생 모두가 이벤트 회사에서 가져온 도구를 사용하여 경기에 참여하며 하니 즐거운 놀이 학교 같은 느낌이었다. 치어리딩 동아리 학생들의 공연이 한층 흥을 더해주었다.
이번에도 업체에서 신기한 경기 도구를 가져와서 재미있는 단체경기를 하고 흥과 재치가 넘치는 사회자의 진행으로서 하루 웃음꽃이 피는 운동회가 되었다.
변함없는 체육대회의 꽃인 줄다리기와 계주는 마지막을 장식했다.
학생들의 줄다리기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가 한 팀이 된 줄다리기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공포를 주던 달리기는 교사가 되어서는 참여하지 않으면 되었지만 오늘은 단체로 하는 줄다리기라 거의 모든 교사가 참여해야 했다.
전체 경기가 청백 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우리 반이 속한 홍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반 줄다리기 순서일 때 옆에서 함께 영차를 외치며 앉으라고 하니 학생들은 박자에 맞춰 영차를 하고 뒤로 당기니 우리 팀이 가볍게 이겨 놓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200점 정도 홍팀이 지고 있었다.
과자를 먹고 싶은 아이에게 과자를 사 주는 엄마처럼 지고 있는 반 아이들에게 승리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줄다리기라면 달리기보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상대편과 마주 섰는데 맞은편에 나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선생님 얼굴이 보였다.
약간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힘내야지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경기에 나온 우리 반 어머님 한 분이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줄을 잡고 뒤로 눕자고 하였다.
어른이 된 뒤로 이럴 때 아니면 승부를 가리고 집착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학부모님도 자녀 팀의 승리를 위해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서 줄을 잡는 순간부터 상대편 기운이 팽팽하게 느껴졌다. 줄을 꽉 잡고 영차 힘을 주며 뒤로 눕는데 아주 조금씩 줄이 당겨짐을 느꼈다. 진행자가 그만하는 것 같아 경기가 끝인 줄 알고 줄을 놓았는데 상대편으로 줄이 끌려갔다. 아, 조금씩 우리 편으로 당겨졌는데 마지막 줄을 놓기 전에 상대편으로 줄이 끌려간 것이다.
아쉽게 1패. 잡아당기고 앉자고 외치던 학생의 어머니가 끝까지 당겨야 해요라고 외친다. 끝까지 더 당겨야지 마음먹으며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온 힘을 다해 당겼다. 간신히 이겼다.
승부는 1:1.
줄을 당길 때 곁에서 응원하던 우리 반 ㅇㅇ이의 얼굴을 보며 힘껏 당겼던 것이 힘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 경기에서 있는 힘을 다해 당기는 데 힘이 달리는 걸 느꼈다. 조금씩 더 빠른 속도로 줄이 상대 편으로 당겨졌다. 결국 우리 편이 졌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데 곁에서 보던 한 학생이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웃는다. 학생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기분이 묘했다. 이기기 위해 줄을 당길 때 내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졌을까, 좀 쑥스러웠다.
승리는 주지 못했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된 거지, 하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마지막 계주에 기대를 했지만 역전하는 듯하다 다시 지고 말았다.
몸이 아파 한동안 학교를 힘겹게 오던 ㅁㅁ이가 달렸는데 약간의 차이로 졌다.
경기가 끝나고 누군가 달리기 초반에 지기 시작해서 졌다고 ㅁㅁ이 탓을 하여 ㅁㅁ이가 울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를 탓하는 것은 체육대회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최악의 상황이다.
우는 아이를 위로하고 종례 시간에 최선을 다한 경기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명예롭게 지고 상대편의 승리를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는 피날레를 바라는 것이 무리일까.
우리가 인생을 살며 최선을 다하고 얻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잘못하고 사과하지 않고 남 탓하는 부작용이나 문제를 일으킨다.
명예로운 패배와 자기 점검이 필요한 날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패배는 강한 승리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교과 수업을 벗어난 햇살 아래 지낸 하루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맑은 가을 공기로 마음의 주름을 쫙 펴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