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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Feb 13. 2024

세 번째 설-해외살이 하는 우리가 명절음식을 하는 이유

AND Chinese new year 가 아닌 Lunar New Year

벌써 이곳에서 보내는 세 번째 설이다.

첫해는 오자마자 곧장 설이었기에 어영부영 어~~~ 하다가 지나갔고,

다음 해부터는 명절 음식이랍시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작년에는 만두를 빚었고, 올해는 갈비찜과 잡채를 만들었다. 떡국은 필수고.


나는 한국에서 '명절 k-며느리'를 피해 간 사람이었다. 친정에서도 편한 딸이었고 시댁에서도 편한 며느리였다. 친정은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어릴 적엔 음식의 양이 아주 대단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결혼하고

10년 차쯤 되니 음식의 양도 줄고 사서 하는 품목도 생겼기에 내가 거들 것도 거의 없었다.

시댁은 제사가 없었기에 음식의 양이 매우 적었고

그마저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두 분이서 며칠 전부터 조금씩 미리 해 두셨기에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시댁은 제사도 안 지내는데 왜 제사음식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명절음식은 꼭 제사와 상관있는것 만은 아니라는걸 이곳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 명절에 편한 한국여자였던 내가 굳이 타지에서 홀로 명절음식을 하고 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으니까.


아마도 '허전함' 때문일 테다.

명절날 기름냄새 풍기면 음식을 하지 않아도 복작복작 함께 모여 맛있는 밥을 먹고 세배하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끄럽게 떠들 가족이 없기 때문에 명절음식을 한다. 명절느낌을 내고 싶어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 등하굣길에 만나는 한국 엄마들끼리 나눈 대화도 그랬다..


A - "이번설에 뭐해요? 우린 남편이 회사사람을 초대하재요~"

B - "엥? 굳이?~! 한국사람? "

A - "아니~현지사람이요~"

B - "아~ 그럼 부담이 오히려 덜하지~"

C - "난 초대를 받았어요 언니.. 나 음식도 못하는데 하나씩 해서 모이자는데 아 어떠케.."


D - "사가~~ 부처스***에 밀키트도 많이 들어왔더라 아니면 저기 그 반찬가게 있잖아 거기 명절음식 들어온 거 같던데? 거기서 사가~ 못하는 거 하려고 하지 말고 시댁 가는 것도 아닌데~"


B - "어휴~ 시댁에도 사가는 사람 천지야~ 사가사가"

C - "언니는 뭐해요?"

D - "난 어제 장 봤잖아~ 갈비찜이랑 생선전은 다했고 잡채만 하면 돼.. 작년엔 동그랑땡도 했는데 올해는 나한테 그렇게 까지 고생시키지 말자 싶어서 안 했어"


C - "어휴~ 언니 진짜 대단하다 그걸 언제 다해요~"

B - "그르게~ 동그랑땡은 오바야~ 나도 만두는 이번에 안해요~"

D- " 아니 만두야 말로 원래 사 먹는 음식 아니야? 아하하하하하하"


B - "그래서 올해는 생략 ㅋㅋㅋ 언니 나 오늘 후버스 가서 갈비찜고기 사왔잖아~ ㅎㅎㅎ 고기 진짜 좋더라~ Short rib이 있길래 그거 한 대 컷 해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스튜용으로 살코기만 샀지.


A - "아니 생선전 꺼리는 도대체 어디서 사요?"

D - "내가 좋아하는 곳 있어요 *** 가면 다 있어요~ 한국밀키트도 많아서 비상용으로도 좀 사두고~"


A -  "근데 다들 한국에서도 많이 했어요? 난 한국에서 많이 하다가 여기 오니까 첫해는 신나서 안 했는데 설이랑 추석 한 번씩 다 그냥 지나고 나니 다음 해부터는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리고 이후의 대화는 모두가 공감하며 '나도 나도 맞아 맞아' 연발이었다.

북적북적할 가족이 없으니 그런가 그렇게도 피하고 싶어 했던 명절 기름냄새를 찾게 된다고.. 이러다가 한국 가면 다시 손 딱 뗄 거 같긴 하지만, 지금은 허전함에 명절음식을 한다고..

한국에서는 명절시즌이 되면 어딜 가도 다 파는 갈비찜용 갈비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한국식 재료 찾기가 더 힘든 동남아 싱가포르..

한국 정육점에 가면 있지만 매우 비싸거나 한정으로 판매해서 늦게가면 없다. 가끔은 고기의 질이 내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고..

내가 좋아라 하는 정육점에 가서 이들은 바베큐로 구워 먹는 긴 갈빗대를 가리키며 '이거 한대만 이만한 사이즈로 컷' 해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스튜용 비프를 한 뭉텅이 사 왔다. 이렇게 700G씩 대략 1.4KG을 맞춰서 받아 들고 와서 핏물을 뺀다.




 

백종원 슨상님의 레시피가 제일이다. 장기알처럼 무랑 당근도 돌돌 깎아서 준비하고, 표고, 양파, 꽈리고추, 파도 모두 준비한다. 시간이 참으로 오래 걸리지만 과정은 사실 간단한게 갈비찜.



꽈리고추와 파는 불을 끄고 마지막에 잔열로만 슬쩍 익히는게 포인트! 그래야 색이 살아있으니까.



잡채도 해야지.

당면 먼저 한참 불리고, 돼지고기는 밑간을 해둔다.

당근, 양파 채 썰고, 버섯도 준비한다.

시금치를 데치고, 데친 시금치 건져낸 물에 그대로 불린 당면을 삶는다. 요즘 당면을 양념에 볶아버리는 레시피가 유행인 거 같다. 하지만 난 그걸 싫어한다.

모든 재료를 다 볶았는데 당면마저 또 볶으면 내 입엔 너무 물린다. 나는 당면을 삶아서 재료와 섞어 무치는 걸 좋아한다. 이때 간장만으로 색을 내려고 하면 절대 불가능하다. 엄청 짜질 테니까.


이때의 팁은 노두유! 노두유 반스푼만 넣어서 섞어주면 간을 세게 하지 않아도 색이 짙어져서 맛있어 보인다.

나는 노두유를 종종 사용한다. 볶음이나 찜류에 살짝만 넣어주면 색이 확 올라와서 훨씬 맛있어 보인다.

맛을 보기 전에 눈으로 먹는 맛도 매우 중요하니까.

보기 좋은 요리는 원래 맛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



설이니까 떡국도 먹어야 하고 갈비찜이 있으니 밥도 먹어야 하기에 떡국은 조금만 끓여서 국처럼 둘 다 준비했다. 이렇게 중국느낌 가득한 이곳의 설에서 우리는 우리의 설을 보냈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영향이 강력하다. 한참 전부터 온 세상이 빨갛게 물들고 며칠 전부터는 모두가 빨간 티쳐츠를 입는다. 당일이 되면 치파오등등의 전통의상을 입는다. 많은 상점들에서는 해피뉴이어~라는 말대신 꽁시 파 차이~를 외친다. 이곳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다. 이 시기엔 유난히 더 내가 싱가포르가 아닌 중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들의 문화이니 받아들이고 즐기게 맞다.  하지만 작년까지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많은 브랜드들과 학교에서까지 구정을 Chinese new year이라고 말하고 표기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그렇게 말할지언정 글로벌 브랜드와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국제학교에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구정은 중국의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나는 아들에게 Lunar new year 라고 정정해 주면서 설명을 해줘야 했고 더불어 아들은 화를 내며 학교행사 때 빨간 옷을 입지 않겠다고 까지 했었다. 물론 달래서 입고 갔지만..

올해부터는 달랐다. 작년에 몇몇의 논란이 있었고, 이제는 대부분의 곳에서 Lunar New Year 이라고 표기하고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맘이 편해졌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설 행사로 빨강 노랑 옷을 입고 오라고 하였고, 사자춤과 중국 북을 치는 행사를 했지만 그건 이들의 문화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니까 이들의 문화를 즐겨야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끼리 우리의 설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Lunar New Year 만으로 난 매우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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