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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Feb 20. 2024

너 그거 아니? 급식은 대단한 선물이라는 거!-1부

런치박스와 스낵박스 그 끝없는 굴레...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예비소집일을 앞두고 우리는 싱가포르로 왔다. 아이와 함께 설레는 맘으로 학교로 향하는 대신 '우리 아이 입학 안 합니다~~' 하는 의미의 서류를 메일로 보냈고, 학교 대신 비행기에 올랐었다. 아쉬움이 컸다. 일생의 단 한번. 초등학교 입학식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 초등학교 입학식은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까...

내게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건 내 아이가 꼬물꼬물 유치원을 졸업하고 진짜 독립의 첫걸음으로 나아하는 첫발 같은 것이었다. 너와 내가 손을 잡고 너도나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리는 맘으로 학교를 들어서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입학식만 하고 출국하면 안 될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사실 아이는 유치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전에 우린 이곳의 학기 일정을 맞춰서 나와야 했었다. 내 아이는 끝맺음과 시작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나는 그게 지금도 아쉽다. 넌 3년 동안 유치원이라는 기관의 너무나 멋지게 잘 마쳤기에 너 스스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라며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대단한 마무리로 성취감 획득을 누리고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서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비록 우리가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하나의 챕터를 잘 마무리했다며 우리끼리 외식을 하며 축하했다.

도착하고 단 2일, 주말을 보내고 아이는 바로 등교를 했다. 학교 등교를 시작하기 전 입학식 대신 우리끼리 잘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짐정리 전혀 안된 집이 우리를 맞이했다. 3개월 먼저 들어와 있던 남편이 우리가 들어오기 며칠 전에 혼자 받아둔 해외이삿짐.. 엄청난 양의 우리 살림들.. 어디서부터 짐을 풀어야 할지 막막한데 설상가상 난 당장 도시락을 싸야 했다. 난 소풍도시락 몇 번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 급식을 누렸던 한국맘인데... 재료는 도대체 뭐부터 사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시작하기 전엔 거창했던 상상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런치박스 싸기 3년 차..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잘 대처했던 첫날이었다.

나름 만들어져 있는 미트볼 한팩을 사 와서 토마토소스에 조려서 보냈다. 반도 정리안된 주방에서... 스낵박스도 싸야 했다. 지금은 눈감고도 싸는 스낵박스이지만 그땐 그것마저도 당황스러웠다. 과일을 싸야 하나? 진짜 과자를 싸야 하나? 쨈 바른 빵을 싸야 하나? 친구들은 뭘 싸 오려나? 혼자 이상한 거면 어쩌지? 등등 도시락 하나에 온갖 가지치기 생각이 멈추지를 않았다. 한식 도시락을 싸는 날에는 김치를 꼭 씻어서 넣어주었다. 혹시 냄새가 날까 싶어서.. 물론 온세계 사람들이 너도나도 김치를 좋아하는 요즘세상이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그건 지금도 씻어서 넣어준다. 초반엔 도시락에 정성을 쏟았다. 점심도시락 하나를 위해 감자를 삶고 밀가루에 으깨서 뇨끼를 만들어 싸주기도 하고 볶음 요리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한동안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매일매일 새로운 도시락을 새벽마다 업로드했다. 매일 새로운 메뉴로...

그런데 반전은 사실 y3부터는 도시락을 싸는 것 대신 카페테리아에서 직접 사 먹어도 된다. y2와 y3를 지내고 y4가 되어서까지 도시락을 매일 싸는 건 나의 오버스러운 고집이 절대 아니다.

점심을 드시는 당사자, 아드님 상전의 선택이다.





주 1회로 감사히 여기마..

이곳에 온 첫해 아이는 이곳 학년으로 y2였고 적응에 좀 더 수월했으면 하는 마음에 기꺼이 도시락을 정성껏 쌌다. 오로지 아이의 수월한 적응 만이 나의 관심사였던 날들이었으니까. 덕분에 아이는 어려움 없이 잘 적응했고, y3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영어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적응했던 아이다. 즉, 사 먹는 게 힘든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사 먹지 않겠다는 이유는 반박 불가의 사항이었다.


"엄마 카페테리아에서 파는 음식이 너무 건강에 안 좋아 보여"

"너네 베지테리언 메뉴, 아시안 메뉴, 웨스턴메뉴, 종류별로 매일 나오잖아"

"어 근데 베지테리언은 난 싫고 아시안 메뉴도 그저 그래 맛이 없어 그리고 나머지는 프렌치프라이 치킨 파스타 머 그런 거야 1주일에 한번 정도는 사 먹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매일 먹을 순 없을 거 같아 "


이런.... 너무 정확하게 이유를 설명해 버렸다. 나도 그 말에 홀랑 납득하고, 설득되어서 더 이상 싫다고 하는 건 엄마라는 존재가 할 말이 아닌 것만 같았기에 주 1회에 감사하며 그렇게 또 일 년을 보냈다.

매주 1회는 사 먹고 금요일은 스낵은 싸지 않고 런치만 싸기로, 금요일은 스낵도 사 먹을 수가 있기에 도넛이나 브라우니를 사 먹겠다고 했다.

아니, 건강하지 않아 보여서 안 사 먹겠다면서 웬 도넛??

아무튼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주 1회가 줄어든 것만으로도 훨씬 가벼워졌다.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여전히 아침 도시락은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아니..주 2회 사 먹기로 했잖아?!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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