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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Feb 29. 2024

살림 휴업합니다 2부 - 복에 겨운지 모르고..

번외 ; 시드니 여행

그렇게 딱 이틀,

내 집이 될 에어비엔비 주택으로 짐을 옮겼다. 우린 사실 여행 중에 숙소를 옮기는 법이 없다. 애초에 에어비엔비를 알아보지를 않는 편이다. 에어비엔비 앱을 연건 거진 8년 만이었다. 아이가 18개월 때 함께 갔던 그 캐나다 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랜만에 앱을 연건 다 ‘Taylor Swift’… 그녀 때문이었다. 하필 딱 우리가 여행하는 이 시기에 그녀가 이곳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호텔 값이 3배로 뛰었고, 그마저도 방이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 난 이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앱을 열고 막상 알아보다 보니 주택의 꿈을 여기서 꺼내보자 싶었던 것이었다. 막상 집 앞에 서서 집을 바라보니 내 상상과는 꽤나 달랐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셋이서 보내기엔 딱 좋아 보였다.


1층에 방 한 칸, 주방, 거실, 화장실, 영국식 작은 테라스가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방 두 칸이 있었다. 호주에는 여전히 영국의 모습이 가득하므로 이곳 역시 영국식 주택이다. 오랜만에 오픈 키친에 서니 기분이 참 좋았다.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오픈키친이니 절대로 아니다. 그럼 머.. 폐쇄키친이라고 해야 하나? 이곳에서 제대로 기분 좋게 요리를 해보고 싶었지만 살림살이가 영 부실 했다. 코팅프라이팬 하나 중간사이즈 냄비하나 작은 냄비 하나, 칼질하면 미세 플라스틱이 아니라 우둘투둘 일어난 플라스틱이 손으로 다 느껴져서 플라스틱 잘리는 게 눈에 훤히 보일 듯한 얇은 플라스틱 도마 2개, 조리도구 그리고 커트러리와 젓가락 아주 많이가 갖추어져 있었다. 전부 새로 구비할 수도 없고 그냥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어차피 밖에서 내내 놀러 다니느라 밥때 집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현실적으로 한 끼 해 먹으면 끝날 듯했다. 장을 보러 가까운 마트로 걸어갔다. 여전히 시티 지역이긴 했지만 아주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다 보니 주거지역들을 지나게 되었다. 이미 해외살이를 하고 있는데도 마치 해외에 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설렜다. 옛스럽고 투박한 느낌의 상점들이 맘에 들었다. 한때 유행 같았던 나의 밴쿠버 어학연수 시절이 마구 떠올랐다. 자주 가던 커피집과 작은 슈퍼마켓, 1달러 피자라고 써놓고 돈은 2달러를 받던 피자집이 생각나자 더 두근두근 하였다. 셋이서 마트에 도착했다. 어쩜 이리도 익숙할까? 해외여행 가면 마트 가는 게 설레는 일이었는데 이건 어느 센가부터 전혀 낯설지가 않아졌다. 그 익숙함으로 척척 물건을 담고 계산하니 이또한 기분이 꽤 괜찮았다. 워낙 호주제품이 많은 싱가포르이다 보니 늘 사던 제품들이 그대로 있었고, 마트의 디자인도 퍽 익숙했다. 다른 점은 품질. 나는 싱가포르에서 며칠씩 걸려 넘어오는 수입품으로 먹고 있지만 여기에선 국내산이다.


'복에 겨워 불평만 늘었지'

이쯤에서 식자재 이야기를 살짝 하고 넘어가자면, 과일들이 대부분 참 싱싱했고, 마트고기 주제에 상태가 너무나 좋았다. 오가닉 고기인데도 싱가포르보다 몇 배나 저렴했다. 사람들은 동남아에 산다고 하면 과일 실컷 먹겠다고들 말한다. 절대로 틀린 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싱가포르는 그 무엇도 자체 생산하는 것이 없다. 전부 수입. 과일, 채소, 고기, 생선 모두 수입산이다. 그러니 과일이 덜 신선하고 덜 달콤하다. 자고로 과일은 수출을 하려면 미리 수확을 하는 법이니까... 그리하여 원래 후숙 과일인 망고가 제일 맛있다. 물론 두리안, 망고스틴, 잭푸르트 등의 열대과일은 맛있다. 단지 내가 여렸을 때 부터 먹던것이 아니라서 익숙치 않을뿐..자주 먹어보지 않았으니 이게 맛있는 건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워터멜론인 수박은 말 그대로 워터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수박을 먹으니 세상 단맛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집 바로 옆에 있는 피시마켓에 갔다. 세계 3대 피시마켓이라고 하는 이곳에서 어마무시한 생선들을 마주했다. 모두 ‘Product of Australia’ 바로 옆에서 잡아다가 바로 파는 국내산이다. 너무너무 신선해서 두근두근 할 지경이었다. 이곳에 살았다면 난 주 1회는 무조건 와서 장을 봤겠구나 싶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과일은 어쩜 이리 달고 해산물은 왜 이렇게 싱싱한 거냐고. 그랬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과일이? 과일 한국에 비하면 완전 맹맛이야!!!! 생선도 한국이 훨씬 맛있지...야.진짜 한국이 제일이다.."


듣고 보니 맞다. 과일이 달다달다 했지만 한국의 배처럼 달고 과즙이 줄줄 흐르는 과일이 없다. 한국딸기는 귀하디 귀한 맛이다. 그렇게 부드럽고 단 딸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딸기, 이집트딸기 등등 여러 나라의 딸기를 먹어봤지만 씨가 너무 커서 표면이 거칠고 과즙이 적고 단맛이 적은 게 대부분이며 한국처럼 빤딱 거리는 딸기는 찾기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으로 싱가포르에서도 '한국딸기'라는 이름이 붙으면 가격이 비싸다. 이 또한 들어오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으니 비싸도 장바구니에 무조건 담는다. 생선도 맞는 말이다.. 한국처럼 고등어가 가시제거 싹 다해서 진공포장 딱해 나오는 곳이 있으랴... 고등어를 안 먹는 나라도 많은 것을.. 그 맛있는걸ㅎ

그래도 여긴 납작 복숭아도 너무 달고 맛나고, 무화과랑 살구도 싸고 맛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납작 복숭아를 발견하고 너무나 반가워서 사 왔는데 유럽의 그 맛을 상상하고 한입 베어 물었다가 대실망했던 기억을 오늘의 납작 복숭아로 덮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다가 깨달았다.

너나 나나 해외살이를 하다 보니 한국이 그리워서 이 생활에 감사한 점 다 잊고 불평이 늘었구나.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다 누리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가 이토록 다양한 경험을 누리고 있는데 이런 건 자꾸 깜빡깜빡하는구나. 어딜 가나 만점짜리는 없는 법. 어딜 가나 장단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장점 9에 단점 1로 만들면 그게 행복이라는 걸 또 깨달았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쿠킹호일, 라면, 김치, 스테이크, 연어, 버섯, 양파,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를 담고 과일은 잔뜩 사 왔다. 호텔 조식으로 먹어보니 과일이 너무 맛있었다. 난 또 우리 아들이 이렇게나 과일을 좋아하는지 몰랐지. 과일로 배 채우는 애였네.. 호일을 사 온 이유는 프라이팬 상태 때문이었다. 코팅팬이 긁혀서 딱 봐도 쓰면 안 될 팬이었기에 호일이라도 깔아야 했다. 이 또한 그렇게 좋진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라이팬 위에 호일을 깔고 고기도 굽고 연어도 굽고 버섯이랑 양파도 양껏 구웠다. 대성공! 잘 익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밝고 시원하고 넓은 주방에서 오랜만에 요리하니 꽤나 기분이 좋았다. 마무리는 라면이 국룰! 김치는 당연히 비*고가 있을 줄 알았지만 없었다. 대신 현지에서 만든 현지브랜드의 비싼 김치를 눈물을 머금고 사 왔는데 예상외로 너무 맛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제 김치가 한국브랜드만 있는 게 아닌 것도 신기한데 맛까지 있으니 참 기분이 새로웠다.


우리의 시드니 여행은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워낙 책, 박물관, 전시회를 좋아하는 셋이라서 흔히들 가는 시드니여행 코스와는 사뭇 다른 일정도 많았고 그 와중에 또 남들 가는 곳도 몇 군데 챙겨야 했기에 참으로 바쁜 일정이었다. 유투브에 돌아다니는 맛집 리스트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 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도 하고 한국말로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에 가면 아무래도 한국 여행객이 매우 많아서 여행지 현지의 바이브가 조금 떨어지기 마련이다. 최대한 녹아들고 싶다면 목적지 근처에서 구글맵을 켜는걸 좋아한다. 게다가 싱가포르에는 식자재는 아쉽지만 맛있는 식당은 이곳보다 더 많은것 같다 ㅎㅎ

남편의 남은 주재기간 2년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아마도 이보다 더 긴 일정의 여행을 없을 듯하다. 그토록 오고 싶었고 기다렸던 이번 여행. 그 여행이 어느새 끝나가니 너무나 아쉽지만 이 추억으로 또 살아가야지. 그리고 난 충분히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말고, 아쉬운 것보다 누리고 있는 것에 더 감사해야 한다는 걸 또 까먹지 않게 어디 꼭 적어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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