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자유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명한 노래도 있듯이 춘천으로 떠날 때는 기차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춘천살이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많이 검색해본 것은 살아갈 집을 구하기도 있었지만 출퇴근을 위한 교통수단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춘천으로 일을 하기 위해 이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당장에 먹고 살려면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차로 운전하면서 다니기에는 장롱면허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왠지 춘천으로 온 이유, 낭만이 없어지는 듯 하였다.
그렇게 알아보던 중 ITX 청춘 기차 정기권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기존 기차 요금의 반값정도의 할인, 용산, 청량리, 왕십리 등 정차하는 곳의 편의성 등이 나를 위해 딱 맞는 시스템이었다. 지금과 그 때의 모습을 비교하면 역사의 모습도 사뭇 달라졌다. 외관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운영하는 시스템이 바뀌었다. 2019년도에는 지금처럼 QR을 스캔하며 내리고 타지도 않았고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입구를 드나드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승무원이 기차 안에서 열차표를 검사하는 빈도가 무척 잦았고 결국에는 지금처럼 지하철을 탈 때와 같이 티켓을 스캔하고 탑승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은 (아마도) 헷갈려서 전철 대신에 ITX 기차를 타게 되고 본의 아니게 추가 운임을 내게 된다. 억울해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나도 가끔 좌석을 구매할 수 없을 때 일단 타고 보고 추가 운임을 냈던 적도 있다. 일단 집에는 가야하니까.
정기권을 구매하면 우리들은 자유석에 앉을 권리를 얻게 된다. 이 자유석이 모르면 어려운데 ITX 기차에는 4,5호차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중에 1층이 자유석인 것이다! 가끔 출퇴근 시간에는 6호차까지도 자유석이 된다. 반대의 이유로 주말에는 자유석이 없다. 정기권을 구매하였는데 주말에도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나같은 사람의 경우 사이칸에 앉아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좌석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이칸은 열차차량과 차량 사이에 있는 복도에 지하철처럼 옆으로 나란히 좌석이 비치되어 있다. 각 사이칸마다 좌우로 3개씩 총 6개 좌석이 있는데 복잡한 시간대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이 사이칸 좌석마저 없으면 진짜 입석으로 춘천까지 가게 될 때도 있다. 주말 막차시간대가 되면 클럽만큼 붐비는 사이칸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자유석이라는 방식에 대해서 처음 춘천에 온 나는 물론 알 수 없었고 이 자유석이 사이칸에 있는 그 좌석인줄로 믿었었다. 사이칸에 타서 다닌지 한 달은 족히 되었을 무렵, 평소처럼 앱을 통해 빈자리가 있는지 검색해 본뒤 남는 자리에 타서 가고 있었다. 당연히 승무원이 검사를 한다. 난 정기권을 당당히 보여준다. 승무원이 한마디를 해주었다. 4,5호차 1층이 "자유석"이니 거기 가서 앉는게 좋으실 텐데요. 그 때서야 난 자유석이 그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왜 나는 검색을 더 자세히 해보지 않았을까. 주위에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사이칸의 재미"에 빠져 있었던 것도 같다. 온갖 사람들과 소리가 난무하는 사이칸.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자리가 없는 날이 아니면 사이칸에 앉지 않았다. 불편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유석에 앉기 위해서 출퇴근 시간에는 4,5호차 탑승칸 앞에 줄을 서서 있다. 겨울에는 정말 힘들어지는데 아침 일찍 출근인 날에는 너무 늦게 가면 자리가 없으니 꽤 이른 시간에 줄을 서서 자리에 앉아서 가기 위해서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도 내가 타는 역은 춘천역이어서 종점이기에 자리가 꼭 있었으나 남춘천역에서 타는 사람들은 정말 러쉬하듯 밀려탄다. ITX가 춘천이 종점이지만 가평, 강촌, 평내호평 등에서 정차하는데 평내호평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이 무척 많다. 그래서 가끔 서서 가다가 평내호평을 지나면 대부분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춘천에서 살게 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사이칸에 대한 추억은 떠오를 것 같다. 풋사랑, 첫사랑이 가끔 떠오르듯 사이칸에 대한 에피소드는 춘천살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아는 것도 없고 그래서 설레고 신기했던 기분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울에 가는 일이 자주 없고 정기권을 물론 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사이칸에 앉을 일도 없다. 대신 사람들이 잘 모르는 4,5호차의 2층석을 애용한다. 다음에 춘천 올 일이 있으면 타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사이칸에서의 재미를 혼자 영상으로 촬영해봤던 기억을 남기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춘천 여행은 기차가 딱이다.
https://youtu.be/q_BiKj4tHq4?si=BfL5Irv36kOK-IQ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