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라이닝 Jul 10. 2024

아카시아는 무슨 죄니

이불킥

아파트 단지에 나비모양의 하얀 꽃들이 만개하면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른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게 만드는 향이 마치 첫사랑 같다. 나에게 오지 않고 나로 하여금 다가가게 만들었던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잎을 떼며 그의 마음도 함께 가늠해 보곤 했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확률은 반반. 처음 줄기를 자를 때부터 눈대중으로 '좋아한다'는 말로 끝나도록 요령껏 첫 문장을 골라보아도 좀처럼 '좋아한다'로 끝나지 않았다. 왠지 진짜인 것 같아 속상해서 애꿎은 줄기를 몇 번이나 잘라 잎을 떼다가 아카시아 나무가 무슨 죄인가 싶어 머쓱해졌다.


잘라진 줄기를 한번 매만지고 돌아서며, 진짜 그의 마음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간들. 아카시아는 정말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아카시아 말에 따르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사실 '좋아한다'로 끝나도 고백을 할 용기도 없었다. 그냥 혼자 좋아서 행복한 상상을 할 뿐이었다. 그 아이의 행동과 눈빛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게 'green light' 인지 아닌지 밤새도록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좋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도 나도 그 아이도. 그저 내 생각이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뿐이다. 아카시아 잎에 담긴 천국과 지옥을 떠올린다. 어색했던 첫 키스와 이불킥, 별거 아닌 다툼들. 술주정과 함께 떠나보낸 사랑, 안녕, 잘 지내지?



작품 <아카시아> 김재현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

이전 22화 그림이 다시 그림이 되는, 고유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