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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17. 2024

집 별자리 이야기

사이판 별빛투어

"구름이 너무 많아 내일로 미뤄야겠습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저녁 7시로 예정된 별빛투어가 다음 날로 미뤄졌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두 배로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여행의 묘미. 갑자기 바뀐 일정 덕분에 여유 있는 밤을 보내며 다음 일정을 수정했다. 모든 게 순조로워도 재미없는 법. 갑자기 보지도 않던 하늘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정변경 덕분에 사이판의 하늘을 눈에 더 많이 담을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 날 저녁 구름이 조금 사라졌다. 보름이 가까워 달이 너무 밝은 게 작은 방해물이었지만 뭐 어떤가. 별빛투어가 안되면 달빛투어를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가이드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첫날 투어했던 만세절벽으로 향하는데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도 작은 소리도 없는 길을 따라 오직 자동차 전조등과 운전자의 감각에 의지해 북쪽으로 구불구불 가는 것부터가 우리에게는 특별한 투어가 되었다.


드디어 북쪽 끝 절벽 앞에 도착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 손을 꼭 잡고 가이드의 목소리에 의지해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몇 분 뒤 다른 여행팀 차량들도 속속 도착했다. 마지막 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리를 깔고 바닥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이드의 설명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별빛투어는 만족스러웠다.


달이 비현실적으로 크고 둥글어서 '인터넷 사진을 퍼온 것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공감하며 웃었다. 구름이 달을 잠깐씩 가릴 때마다 별들이 눈을 반짝였다. 우리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한참을 카메라에 그 빛을 담으려다 아름다움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사진보다 지금 내 눈에 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듯, 어느 순간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고 그저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북두칠성 찾으셨나요?"


마지막 팀이 도착해 자리를 잡자 가이드가 별자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들 북두칠성은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시리우스와 다른 몇몇 별들은 설명을 듣고서야 '와, 그러네.' 하며 손가락을 뻗어 별자리를 확인했다. 복잡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어린아이들도 숨죽여 들으며 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고 별들을 다시 바라보니 그 옆에 아직 이름표가 없는 수많은 별들에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 이야기가 정해지지 않은 별이 있다면 그 별을 내 별로 만들어서 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동생별과 엄마별도 함께하는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4살 차이 나는 자매가 살고 있었어요. 둘은 성격은 많이 달라서 다투는 날도 많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냈어요. 어른이 되어서 아빠가 병들어 눕자 둘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병원비를 댔어요. 하지만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곧이어 엄마도 아프기 시작했지요. 그래도 둘은 씩씩하게 살며 결혼해서 아파트 앞뒷동에 나란히 살며 퇴근 후에 저녁을 같이 먹으며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교통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었어요. 동생은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늘에 가서 예쁜 네모별이 되었어요. 그리고 10년 후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위에 별이 되어 세모모양을 만들어 '집별자리가'가 되었어요. 집별자리 옆에는 커다란 아빠 별이 반짝이고 있었지요. 언니는 집별자리를 보며 생각했어요. '나는 나중에 그 옆에 하와이섬 별자리가 될 거야. 엄마, 아빠, 정화랑 제부랑 아이들이 매일 놀러올 수 있게. 그때까지, 알로하.'


집별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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