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잘 쓸 이유가 있어?

D+7

by 코드아키택트

프로그램을 왜 잘 써야 할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배우기 싫어할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건축은 데이터 관리

학교에서 배우는 건축은 디자인이다. 건축가들이 거무잡잡한 옷을 입고 자신의 모델 앞에서 멋진 포즈를 잡는 그런 건축이다. 하지만 실제 건축은 어마어마한 협의의 연속이다. 법규에 맞는지, 도면대로 제대로 지어지는지, 전기 통신 배관은 엄한데 뚫지 않는지. 이런 일이 실제 건축이다. 과거이자 현재의 방식은 종이도면을 들고 각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오는 길에 까먹고 몇 개는 반영하고 그런 프로세스의 연속이다. 프로그램의 이해를 통해 데이터를 잘 관리한다면 이런 프로세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서 모든 참여자들이 특정 수준 이상이라면 같은 도면 또는 데이터를 놓고 공간의 제약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최근 태블릿의 발전으로 종이 가지고 하는 협의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더 합리적은 데이터 관리를 할 수 있다.


비창의적인 일에 쓰는 시간 절감

건축 디자인에 쓰는 시간은 창의적인 일에 쓰는 시간과 비 창의적인 일에 쓰는 시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창의적인 일에 쓰는 시간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골몰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개인의 확신, 경험, 기질 등등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들에 좌지우지된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잘 쓰는 것이 이 시간을 절약해 준다고 말하기 어렵다.

반면, 비 창의적인 일이란 다음과 같다. 같은 도면 200장 그리기, 계단 그리기, 반복되는 입면 복붙하기. 이런 반복작업은 프로젝트 진행 중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가령 디자인을 갈아엎거나, 그려놓고 보니 마음에 안 들거나 하는 등등의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프로그램을 잘 쓰면 이 시간을 정말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그게 흔히 말하는 파라메트릭 모델링이 가지는 힘이다. 프로그램을 잘 쓰면 비 창의적인 일에 쓰는 일을 엄청나게 경감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놓고 결론을 내리면 이렇다. 비록 프로그램을 잘 쓰는 것은 창의적인 일에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비 창의적인 반복적인 일에는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프로그램을 쓰는 방식이 비록 초반엔 느려 보여도 프로젝트 생애주기 상 각 작업의 효율성을 말도 안 되게 향상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프로그램의 발전과 새로운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는 프랭크 게릴라는 아저씨다. 물고기 모양의 건물을 짓고 싶어 카티아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야기는 건축계에서 매우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아주 굵직한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좀 더 잘 아는 자하하디드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랜드마크 적일 뿐이며 비싸기만 하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내가 겪어본 것으론 이렇다.


1. 돈이 없다

아무리 거무죽죽한 옷을 입고 멋있게 단상에 나와도 그들도 사업자다. 사업자는 투자대비 큰 이윤을 남겨야 한다. 체질자체가 생산성이 낮은 건설 업계에서 투자대비 이윤을 키우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라이선스 비용과 같은 고정비용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그게 하나의 이유다


2. 디자이너로 교육받았다.

건축 및 건설 산업을 AEC라고 한다. 건축가(Architect)가 디자인하고 엔지니어(Engineer)가 각종 엔지니어링을 수행하고 건설사(Construction)가 실제 수행하는 구조다. 이런 분업 구조에서 디자인 이상의 무엇을 잘하는 건축가를 만나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리고 나의 학부로 돌아가보면 설계 스튜디오가 디자인에 몰빵 되어있다. 컴퓨터 기반 수업도 있지만 굉장히 마이너 한 분야로 취급받는다. 그러다 보니 애당초 생각의 장벽이 있다.


3. 프로그램 사용 경험이 좋지 않다

건축이나 건설에서 가장 간편하게 일하는 방식은 종이에 슥슥 그리는 것이다. 연필과 형광펜 몇 번 슥슥 움직이면 알아서 잘 업체들이 움직여 준다. 그런 편리한 유저 경험을 놓고, 뭔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느리기까지 한 프로그램을 켜서 무언갈 할 이유가 없다. 내가 프로그램 쓰길 좋아해도, 유저경험이 아직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험난한 소프트웨어의 길

이렇게 쓰고 보니 프로그램을 쓰도록 이야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꽤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형 프로젝트에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게 필수지만 중소규모 이하로 가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조업과 다르게 건축은 항상 다른 제품을 만드니, 프로그램을 써라라고 강요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어떤 길이 경제성 좋으며 좋은 건축을 만드는 것인지. 오늘은 물음으로 끝맺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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