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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Jan 13. 2022

수신: 친목회에 가입하시겠습니까?

기간제 교사의  교단 일기

친목회에 가입하시겠습니까?


3월 새 학기 폭풍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면 친목회에서 메시지가 온다.


친목회에 가입하시겠습니까?


학교에는 월 2-3만 원 정도의 금액을 월급에서 공제하여 친목회비로 모아놓고, 각종 경조사와 사적 모임에 회비를 융통하고, 만기 전근을 가면 새 학교에 간식을 보내기도 한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를 자주 옮기니 친목회 혜택을 대부분 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처음 교직생활을 사립학교에서 시작했다.


곧잘 따져 드는 성격에, 남들보다 자주 왜?라는 의문을 던져대는 삐딱한 성질머리가 있는 나는 의외로 관계지향적 인간이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느껴지는 자아인식도 그러하다 느낀다.



20대 중반의 사학재단 기간제 교사는 예스맨이었다. 잘 보이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실낱의 희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었다.


친목회는 당연히 가입하고, 경조사는 당연히 참석했고, 간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과일 예쁘게 잘라 층별 교무실에 나르기부터 워크숍 장소 섭외까지 열의를 다했다.


내가 국어교사라는 이유로 맡겨진 하나의 임무가 더 있었는데, 학교 메신저로 친목회원들의 경조사나 일상적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었다.


육하원칙에 따른 개조식 메시지는 아니고, 집단의 유대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법 재치 있고 유려하게, 때론 감동적이게’ 라는 기대치가 더해진 임무였다.


출근하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부터 좋은 생각 같은 매거진을 찾아 읽고, 책 좀 읽는다는 친구들에게 밑줄 친 문장 좀 공유해달라며 졸라댔다. 어떻게 하면 인상 깊은 메시지를 쓸 수 있는지, 사연 소개를 의뢰한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축하와 안부 인사를 다른 선생님과 나눌 수 있을지, 업무 외의 시간은 대부분 그 고민으로 보냈다.


‘내가 라디오 작가도 아니고 말이지. ‘ 운명에 없던 창작의 고민에 툴툴거리며 일 년이 지나니 자산이 생겼다. 사연을 소개하기 위해 모아 놓은 글들이 다시 꺼내보기 좋은 나만의 인사이트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습관을 일부 유지한다. 부서에서 업무로 전체 메시지를 보낼 때, 더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바빠 죽을 것 같다는 담임 선생님들께 협조를 구해야 할 때, 밑줄 친 좋은 글들을 함께 써서 보낸다.


좋은 글을 공유하는 것은 내게 ‘티코스터같은 의미다. ‘차만 주면 되는데 뭐하러 번거롭게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 작은 정성과 대접으로 누군가는 잠시 행복해지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담아.


그래서

관계지향적인 인간

너 말이야 너 너 너!


선생님?
친목회에 가입하시겠어요?




아니오. 저는 가입이 어렵겠습니다.


짧고 간명하게 답장을 보낸다.


당장 다음 학기에, 내년에 이 학교에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있는 동안 제 방식으로 친목을 다지겠습니다. 한 달을 꾸준히 티코스터를 정성 들여 받친 찻잔을 나르다 보면, 여기저기서 답장이 오거든요. 저는 그것으로 충분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다음 메시지는 내 마음에 적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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