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태는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다정이와의 즐거운 글램핑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다정도 물론 승태가 알아서 다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어차피 집에서 특별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승태의 준비를 열심히 도왔다. 승태가 예약한 숙소는 복층 구조의 글램핑장이었는데 숙소 내부에 작지만 수영장도 있었고 내부가 널찍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정은 1박 2일 동안 먹을 음식을 챙겼고 승태는 렌트와 영화를 담당했다. 승태가 운전을 하는 걸 한번도 본 적 없는 다정은 렌트를 할 거라는 승태의 말에 조금은 불안했지만 서울에서 운전할 일이 없어서 안 했을 뿐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매번 운전을 했었다고 하며 다정을 안심시켰다.
“빠진 거 없이 다 챙겼지?”
“응! 오늘 날씨도 좋네.”
집 근처에 있는 렌트카 대여소에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한여름의 열기가 아스팔트를 달궜지만 글램핑을 떠나는 승태와 다정의 설렘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가끔 뭉게구름이 해를 가릴 때마다 찰나의 순간에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서늘함은 기분을 더 좋게 했다.
렌트카 수령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차 내외부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했다. 짐을 싣고 출발을 하려는데 불안하게 손잡이를 잡았다. 승태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승태의 부드러운 핸들링에 다정도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제야 승태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운전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뭔가 멋진 척을 하는 것처럼 보여 괜히 웃음이 나왔다.
가는 길이 멀지는 않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휴게소에도 들렀다. 가는 길에 휴게소는 꼭 들러줘야 한다며 다정이 들렀다 가자고 했다. 휴게소에 내리자마자 덮쳐오는 강한 열기를 뚫고 설탕을 솔솔 뿌린 통감자와 핫바를 사서 먹었다. 어느새 뭉게구름은 제법 흩어져 새털 같은 구름이 하늘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역시 이건 꼭 먹어줘야해.”
“그러게. 진짜 맛있다!”
“근데 너 생각보다 진짜 운전 잘하더라.”
“나 잘한다니까. 그 험한 부산 바닥에서 운전하던 사람이라구.“
“그러게. 부산 운전이 그렇게 험하다며?”
“뭐 다들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통감자를 호호 불어 먹고는 차로 빠르게 돌아왔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할 듯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멀리 보이는 산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오랜만에 푸른색을 보고 있으니 눈도 마음도 안정이 되는 듯했다. 승태가 틀어 놓은 잔잔한 재즈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출발부터 확실히 푹 쉰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아까 먹었던 간식 덕에 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글램핑장에는 길다란 삼각형 모양의 숙소 여러 채가 마주보고 있었다. 입구에서 안내를 받고 차를 우리 숙소 옆에 주차했다. 입구에는 숯불구이를 할 수 있도록 화로와 간이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문을 여니 현관에 해먹이 놓여져 있었고 현관문을 여니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넓은 거실, 테이블과 주방이 보였다. 주방 뒤쪽에는 4m 정도 크기의 간이 수영장에 물이 가득 받아져 있었다. 손을 넣어보니 한기가 확 돌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승태야! 물 너무 차가운데?”
“그래? 어디 봐봐.”
승태도 와서 물에 손을 담가보더니 너무 차갑다며 수영할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다정은 당당하게 괜찮다고 얘기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까만색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고는 수영장으로 돌아와 발부터 천천히 담궜다.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한여름의 열기가 머리 위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뒤따라온 승태는 호기롭게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얼어붙을 뻔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 진짜 차갑다구!”
“나도 알아 바보야. 그래서 발만 담그고 있잖아.”
“너도 일로와”
“아 잠깐만!”
승태가 다정의 손을 잡고 수영장 안으로 끌고 들어오자 다정이 소리를 지르며 승태에게 물을 뿌려댔다. 승태도 지지 않고 다정에게 열심히 물을 뿌렸다. 금세 머리까지 다 젖었지만 아까와 같은 한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시원한 여름날의 분위기만 남았다.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난 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와 산을 보며 컵라면을 먹었다. 푸른 잎이 가득한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은근한 시원함을 담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다시 뭉친 뭉게구름은 산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물놀이 후에 먹는 컵라면은 역시 꿀맛 같았다. 이 분위기에 이 풍경, 낭만이 가득했다.
라면을 다 먹은 다음은 주변에 가볍게 산책을 다녀왔다. 근처에 개울이 흐르고 있어 개울을 옆에 끼고 걸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가 편안하게 들렸다. 문득 이렇게 자신을 데려와 준 승태가 고마워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승태도 그런 다정을 슬쩍 보고는 깍지를 끼고 싱긋 웃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승태와 산책을 해본 적이 있나 싶었다. 산책을 자주 즐기는 우리였지만 아무 것도 없는 이런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산책을 하는 게 너무 좋았다. 일단 도심을 벗어났다는 것도, 주변의 풍경도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무런 걱정 거리 없이 여기에 승태와 단 둘이 있다는 게 좋았다.
“어떻게 이런 데를 다 찾았대.”
“그러게. 내가 이런 데를 찾아 온 것도 신기해.“
“진짜 너무 좋다. 입사하기 전에 최고의 선물이야.”
“그럼 다행이구.”
승태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을 안아줬다. 그 순간에 산바람이 살랑 불어 다정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개울가에 잔뜩 널부러진 자갈을 들어 물수제비 뜨기도 하며 놀았다. 둘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어쩌다 한번 운이 좋아 여러 번 뜨고 나면 서로 자기가 잘났다며 자랑을 했다.
어느 정도 걸었다 싶었을 때 다시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서든 산책을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산책은 가는 길도 좋지만 오는 길도 좋았다. 가는 길에 내 등 뒤로 지나갔던 풍경은 돌아보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때 느껴지는 새로움은 어느새 기분좋음과 신기함으로 다가온다. 다정은 그런 느낌 자체가 좋았다.
“슬슬 바베큐 준비해드릴까요?”
“아 네. 저희 지금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바로 준비해드릴게요.”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니 글램핑장 사장님이 바베큐를 준비해주셨다. 승태와 다정도 미리 해동해둔 고기를 꺼내고 채소를 씻어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다. 여름이라 아직 해가 길어서인지 대낮과도 같은 기분이었지만 냉동실에서 술도 꺼냈다. 살얼음이 살짝 끼어 딱 먹음직스럽게 시원했다.
“드시다 보면 벌레가 많을 수도 있는데 이거 쳐 놓으면 괜찮으니까 편하게 드세요.”
“우와! 감사합니다.”
글램핑장 사장님은 바베큐 준비를 마무리해 주시고는 가장 바깥쪽 입구 앞에 얇은 방충망을 쳐 주셨다. 덕분에 바깥 풍경은 그대로 즐기면서 벌레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정과 승태도 따로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기에 우선 입구에 향만 피워두었다.
고기는 승태가 구워줬다. 이제 우리도 직장인이니까 삼겹살 말고 소고기를 먹자는 승태의 제안에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준비해왔었다. 승태는 고기가 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고기를 구웠다. 다정은 그 중에 제일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를 골라 쌈을 싸서 승태에게 먹여주었다. 승태는 입에 쌈을 한가득 머금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다정도 승태가 구워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본격적으로 즐거운 저녁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