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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an 03. 2024

엄마, 누구랑 카톡해?

잘못한 게 없는데 눈치가 보인다

빛의 손 잡고 오는 그림자처럼 설렘과 짝지어 온 좌절감은 잠시였다. 저녁이든 주말이든 온전히 내 몫인 외톨이 육아와 살림의 정량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는데 홀연히 등장한 남자 때문에 이제와 내 삶에 없던 장벽이라도 생긴 듯이 인식하는 건 굉장히 우스운 일.


정신 승리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낼 수 있는 시간에 뚜렷한 제약이 있다는 사실에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내 책임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테니 나는 지금까지처럼 삶을 이어가면서 이 사람이—혹은 언젠가 다른 그 누구더라도—좋아질지, 괜찮은 사람인지 지켜보자 생각했다. 아이들이 격주로 아빠를 만나며 내가 그때만 시간이 난다는 점은 그도 인지했으니까.


듣기 좋은 말들이 이어질 때도 나는 이 사람이 혹시 길에 떨어진 꽃 줏으러 온 건가 하는 경계심으로부터 초연해졌다. 애당초 안중에 없던 사람이었다. 어떤 식이 되든—그 사람의 마음이 짜게 식는 것까지도—내 일이나 육아, 가사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사는 게 고달프긴 했으나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몰랐던 여유를 발견했다.


생각을 정리하자 현관문을 두드리던 울적함이 떠나갔다. 그리고 다행인지 그의 다정함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그는 내 퇴근 시간이나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챙겼다.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잠깐 무슨 일을 할 거라고 예고했고,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왜 답장이 늦었는지 사후 보고를 했다. 나? 퇴근하고 저녁상 차리고 정리를 하고 애들을 쥐 잡다 보면 답장을 그 사람처럼 하진 못했다.


적어도 나는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고만고만하던 내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나보다 먼저 알아차린 건 우리집 딸아이였다.


엄마, 누구랑 카톡해?

카톡하는 내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다. 바람피우다 들킨 것도 아닌데 돌연 눈치가 보였다.


“응? 엄마 친구.“

“친구 누구? 누군데에?”

“어어, 그냥 엄마 친구.”


그렇구나 하고 대충 넘어가도 좋으련만 어쩐 일인지 딸아이가 계속 “캐”물었다.


“친구 누구? 저번에 카페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만났던 그 이모?”

“아니이~”

“그럼 무슨 친구? 샤인머스캣 농장에 같이 갔던 그 이모야?“

“아니이~ 너가 본 적 없는 친구.” (그리고 앞으로도 딱히 만날 일이 없었으면 싶은 친구.)


“엄마, 그러면 무슨 친구야? 그 친구 이름은 뭐야?“

“이름? 말해도 모를 텐데?”

“그래도~ 그 이모는 이름이 뭐야?”

“이모 아니고 삼촌이야. 엄마 삼촌 친구도 있잖아.”

“삼촌? 누구 삼촌?”


나는 불륜을 발뺌하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거짓말로 여자인 친구 이름 아무거나 둘러대지 않은 걸 후회하는 동안 아이는 평소랑 다르게 자꾸 물었고, 훔친 것도 없이 제 발 저린 나는 짜증이 났다.


“아우, 고만 좀 물어봐!“


딸아이는 아빠랑 따로 살게 되고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내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에 나오는 그것, 결혼한 사람이 또 결혼하는 그것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꼬마에게도 촉이 있는 걸까. 이런 류의 변화도 아이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정을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는 너무 많이 자랐다.


그즈음 1분에 1만 원을 벌 줄 아는 여자도 내게 같은 말을 했다. 주말에 만나 놀이터에 아이들을 풀어놨는데 언니가 누구랑 카톡 하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언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애 딸린 이혼녀라는 내 처지가 그랬다. 급하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쁘지 않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언니도 동생도 하고 있었다.


그가 ‘쿵'을 해도 '짝'을 하지 않으며 지냈다. 사람을 잘 보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단점을 한없이 눈 감다 큰일이 날 뻔했고 이혼으로 수습했다. 사랑한다던 남편은 언젠가부터 간데없었고, 나도 변했다. 그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면 제풀에 나가떨어지려니 싶었다. 이혼남, 어디 멀쩡한 이혼남 같은 게 없을까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그리고 반갑지만 어딘가 미안해지는 미혼남의 다정이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여갈 즈음 작은 문제가 생겼다. 그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앓는 소리가 하고 싶어졌다. 아직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종종 현타가 와 숙연해지는 채로, 모네의 그림을 보면 목이 메어 오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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