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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27. 2023

애들이 아빠집에 갈 때 싱글맘은 무얼 할까

할일이 많은데 마냥 게으르고 싶은 이 마음

격주로 찾아오는 아이들 없는 주말이라고 해서 마냥 놀 수는 없다. 토요일 오전에는 아이들과 아침 점심(혹은 아점)을 챙겨 먹고 각자 취향껏 활동하다 아빠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떠나면 주중에 아이들과 내가 부지런히도 어지른 집을 적당히 치운다. 모이고 쌓인 쓰레기도 처리한다. 아이들 책상을 정리한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면 헬스장, 카페, 도서관에 가거나 약속에 나간다. 휴대폰을 한참 보거나 낮잠을 잘 때도 있다.


밤늦게 귀가하거나 언니네서 자는 날은 일요일 오전이 짧아서 주로 오후에 나머지 청소와 빨래를 한다. 점심은 빵이나 한 그릇 메뉴로 해결하고 옷가지와 장난감 정리를 한다. 묵은 물때와 먼지를 없애고 평일에 먹을 국, 반찬도 이때 만든다. 유튜브나 OTT를 백색 소음 삼아 틀어 놓고 일하다가 아이들이 돌아오면 저녁을 먹이고, 뒷정리를 하고, 숙제를 챙기고 놀다가 닦달해서 재운다. 가끔은 월요일이 오는 게 반갑다.


그림과 유사하나 내 앞치마는 잔꽃무늬고 나는 미소도 쏙 뺀다.


분명 주말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텐데 나는 에너지가 많이 없다는 오래된 핑계 신세를 진다. 그러니 예정에 없던 만남이 있었던 날, 그러니까 그는 내 이혼 사유가 듣고 싶었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고 싶었던 날, 어쩌다 예상보다 유쾌하고 긴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말았을 때는 아이들이 모처럼 저녁까지 먹고 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출근도 안 하는데 또 엄마 없는 집으로 귀가할 뻔했으니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그가 다음을 기약하는 동안 나는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 잊고 있었던 현실과 마주했다. 평일 맞을 준비를 하던 시간에 왕창 놀았더니 애들은 곧 도착하는데 집은 정리가 많이 필요했고, 완성된 반찬은 하나도 없었다. 도복도 못 빨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혼자 꼬마들을 키우는 엄마가 남자를 만나고 다니면 집구석이 어떻게 굴러갈지 그림이 그려졌다.


'미쳤나 봐'를 중얼대며 나는 황급히 빨래를 돌렸고, 청소를 했고, 돌아온 아이들을 반겼다. 그리고는 아빠와 작별인사를 한 뒤 아빠가 보고 싶다며, 더 같이 있고 싶다며 흐느끼기 시작한 둘째를 안아 올렸다. 깃털 같은 그 사람에게 아무래도 이런 무거운 마음까진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품 속의 아이를 토닥이며 나는 안중에 없던 데이트를 시작한다면 내 삶이, 우리 아이들의 삶이 어떤 모양이 될까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엉망인 집구석과 부실한 식단을 감수할 만큼 그분의 매력이 철철 넘쳤더라면 나는 기꺼이 더 부지런해지는 쪽을 택했을지 모르겠다. 쓸쓸하고 힘든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던가. 나 좋다며 잘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니, 애들 내팽개치고 신이 나서 그가 제안하는 이런저런 데이트를 즐겼겠다. 냉동볶음밥과 라면, 배달밥으로 아이들과 연명해도 엔도르핀과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이 솟구치겠다. 퍽 행복해지겠다.


그리 끌리지 않아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힘내서 애들한테도 더 잘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밥 사 줘, 차 사 줘, 데리고 다녀 줘, 이혼하고 확 올라간 인생 난이도가 조금은 덜 버겁겠다. 그런데 그렇게 노닥거리다가 아이들에게 소홀해진다면 그보다 더 나쁠 수 없을 듯했다. 이미 이혼이 주는 삶의 무게와 고단함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수 없이 양해를 구하지 않았던가. 나는 마음이, 마음이 정말 편하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Freepik.)



시작은 이랬습니다. 아이도, 저도 아직은 여전하네요.

https://brunch.co.kr/@freeing-dobby/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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