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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Dec 13. 2023

혹시 재혼 생각 있어요?

어머 이런 질문 처음이야

그는 조금 전 점심을 먹으며 내 이혼 사유를 들었고, 카페로 이동한 후 아까 그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막 얘기한 참이었다.


혹시 재혼 생각 있어요?

혼인관계증명서가 깨끗한 이 40대 싱글남의 질문에 나는 순간 꽤 놀랐지만 마치 전에 여러 번 들어 본 질문이기라도 한 듯 망설이지 않고 포부를 밝혔다.


"아뇨, 없어요. 아주 아주, 정말 정말 괜찮은 분을 만나게 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굳이 법률혼을 한 번 더 할 생각은—지금으로서는 전혀요. 애들도 많이 불편할 것 같고."


재혼이라는 질문도 어색했는데, 대답하며 내 입에선 법률혼이라는 더 어색한 단어가 나왔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 딱히 놀라지도 않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내가 이 전문용어를 어디서 들어 봤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십여 년 만에 돌아온 미혼의 세계는 조금 설렜고 제법 낯설었다. 그게 이번 미혼 세계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생각했다. 분명 결혼했고 행복했는데, 좁고 깊은 우물 속에서 살다가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워졌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이혼을 단행했지만 면접교섭일마다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에 적응하기 힘들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보았다.


이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내가 그저 이혼했고 직장 다니며 아이들 키우는 엄마로 존재하고 기능했다는 걸 몰랐다. 먹고사니즘에 치여 기혼인지 미혼인지 궁금해할 줄도 몰랐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고 친구가 말할 때도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일갈하기 바빴다. (하지만 글을 쓸 시간은 있었다는 점.)


그러니 어느 일요일 오후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남자가 내 재혼 의사를 물었을 때 그제야 아아, 내가 미혼이 되고 말았구나, 실감이 났다. 요지경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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