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넼 Mar 03. 2021

인생을 말하는 영화가 왜 재즈를 다룬 것일까?

'재즈'를 통해 다시 본 '소울(2020)'

  여러분 재즈 좋아하시나요? 사실 요즘 음반시장에서 재즈는 카페 bgm이나 몇몇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고사하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초기 렉타임에서 시작해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스윙을 지나 연주 중심의 비밥을 거쳐가며 점점 대중성을 잃어갔죠.


재즈의 변천사, 왼쪽 부터 '렉타임', '빅밴드 스윙', '비밥'


  이렇게 재즈가 쇠퇴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인 즉흥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즉흥연주란 하나의 곡 안에서 주어진 코드 진행을 따라 즉흥으로 연주자 개인의 기량과 개성을 뽐내는 연주 방식인데요, 흥겨운 관객 중심의 춤곡이었던 빅밴드 스윙이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레코딩 기술의 발전으로 관객마저 줄면서 자연스레 연주자 중심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주자 중심이 되자 즉흥성이 더욱 강화되고 대다수 대중은 그러한 즉흥성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끼게 되면서 점점 더 대중성을 잃게 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은 재즈의 쇠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이러한 재즈의 복잡성과 대중성에 대해 연주자들 사이에서 “서너 개의 코드로 수천 명 앞에서 연주하면 락이고 수천 개의 코드로 서너 명 앞에서 연주하면 재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곡에서 무수히 많은 임프로비제이션이 나오는 즉흥성이야말로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러한 장르 특유의 매력과 분위기로 인해 아직도 많은 마니아층이 있으며, 영화에서도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 음악 장르입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에서는 이러한 재즈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장치 이상으로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쓰이기도 했습니다.

픽사의 신작 '소울(2020)'


  영화 ‘소울’은 하나의 목적만을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해 위인이 되거나 삶에서 길을 잃은 영혼이 되거나 모두 하나의 목표만을 쫒는 비슷한 존재들이란 것을 극 중 ‘문 윈드’의 대사를 통해 말해줍니다. 굉장히 복잡한 다른 차원의 존재인 ‘제리’들이 인간들의 이해를 위해 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습으로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통해서도 단순한 면만 보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죠.


'조 가드너'의 영혼과 '22' 그리고 '제리'들


  두 주인공인 ‘조’와 '22' 또한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조는 피아노와 재즈가 인생의 목적이라 여기고 그것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22에게 상처를 주고, 22는 자신의 목적을 찾는 게 목적이 되어 결국 길을 잃은 영혼이 되기도 하죠. 그러나 ‘소울’은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하나의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먼저는 이발사를 통해 이야기해주죠. 그는 자신이 원래 꿈꾸었던 수의사를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고 이발사가 되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말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변주가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22에게 상처를 주고 목적을 이룬 조를 통해서도 이야기해 줍니다. 자신이 목표하던 인생의 목적을 이룬 조는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고, ‘도로테아 윌리엄스’가 해준 바다에서 바다를 찾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하나의 목적만을 바라보느라 수많은 가능성이 가득한 인생 속에서 길을 잃을 뻔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그래서 길 잃은 영혼들을 쫒는 ‘문 윈드’는 배를 타고 다닌걸 수도 있겠네요.) 


  주머니 속 22가 남긴 잡동사니들을 통해 자신은 보지 못했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고 느꼈을 22가 앞으로 경험할 수많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빼앗았다는 것을 깨달은 조는 22를 찾으러 다시 유세미나로 향하게 됩니다. 결국 22에게 삶을 선물하고 사후세계로 향하는 조에게 나타난 ‘제리’를 통해 영화는 한번 더 이야기해 줍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쫒는 단 하나의 목적은 복잡한 인생 속 목적이 아닌 동기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22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재즈 한다(jazzing)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재즈에선 하나의 동기에서 연주자들의 개성과 경험을 통해 무수히 많은 변주가 일어나니깐 말이죠.

 

인생의 변주를 경험한 이발사와 조에게 조언해 주는 '도로테아 윌리엄스'


  어떠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코코'나 '인사이드 아웃'등의 최근 픽사 작품들을 봤을 때 느꼈던 감동과는 다른 어떤 여운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쫒으며 살 때 맞보았던 수많은 좌절과 실패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아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들렸거든요. 그리고 어쩌면 그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더 성장하고 자신만의 인생의 길을 찾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변주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는 재즈처럼 말이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의 삶 또한 레일 위를 달리는 하나의 방향성만 가진 숨 막히고 짜증 나는 지하철이 아닌 어디에 떨어져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단풍나무 씨앗처럼 무한한 가능성과 방향성을 가진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은 삶이길 소망합니다.  


당신은 재즈 하는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이전 07화 당신은 그때와 같은 존재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