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목구멍까지 차오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위로는 그냥 혼자
《슬픔의 위안》이란 책에서는 '순수한 휴식은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슬퍼하는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도 휴식입니다. 휴식이 왜 어려울까요? 저자들은 '슬픔이 원기를 고갈시키는 것처럼, 좋은 감정 역시 에너지를 무척이나 고갈시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므로 나는 좋은 감정으로 응대합니다. 그러나 그 응대는 그 자체로 나의 감정적 자원을 크게 소모시키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 먹습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슬픔에 빠져 있지만 말고 외출도 하고 사람도 만나라고 말하는 이들의 헛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일 뿐이라고. 집안일도 남에게 맡겨버리고 필요하면 수면제도 먹으라고. 수면제 대신 캐머마일 차를 드셔보라고 말하는 친척의 말은 샌드위치 그만 먹고 도장이나 핧으라는 말과 같으니 과감하게 무시하라고. 함께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제가 직접 할 테니 설거지나 좀 해주시겠어요." 이쯤 되면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위의 내용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품, 신형철》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책에서 눈물은 눈에서 흐르지만 울음은 목구멍에서 치솟습니다. 그래서 울음을 참는 일을 '울음을 삼킨다'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체험하지 못한 공통에는 제대로 공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프레임'이란 틀처럼 자신이 알고, 경허한 만큼만 알 수 있는 것이 세상사 아닐까요? 자의든 타의든 고통 가까이에 가 본 사람, 많은 고통을 함께 느껴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것입니다. 가끔은 어설픈 위로보다 가만히 상대방을 지켜보면서 묵묵하게 마음으로 위로하고 응원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하늘이 너무 청명한 것 같습니다. 글 내용과 관계없이 그냥 가까운 곳에 산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날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