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배가 고프다 #오늘은 뭘 먹지 #맛집 순례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공복을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제멋대로가 되어,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이라고 할 것이다. - <고독한 미식가> 오프닝 멘트 -
<고독한 미식가>라는 TV 시리즈물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외국에서 잡화를 수입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삶이 무거워지는 것이 싫어 결혼도 하지 않고, 매장도 운영하지 않는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나면 항상 "배가 고프다"라는 전설적인 멘트를 날린 후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주변 맛집들을 탐문하며 어슬렁거립니다.
마침내 찾은 음식점에서 그는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와 주변 사람들이 먹고 있는 메뉴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가장 맛있게 보이는 몇 가지 메뉴들을 한꺼번에 주문합니다. 대식가답습니다! 원하는 음식을 먹고 난 그는 극한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건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에게 미식의 의미는 값비싸고,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을 먹는 특별한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는 진정한 맛의 순례자입니다.
'숯불이 나의 용광로에 불을 붙였다.'라는 멘트와 함께 지글지글 고기 굽히는 소리가 신체적·심리적 허기를 자극합니다. 먹기 전 그는 속으로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 잘 먹겠습니다).'라는 숭배 멘트를 시작으로 그만의 식도락 리추얼(ritual)을 거행합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을 때 그는 온전히 혀로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오이시(おいしい, 맛있네)'를 연발합니다. 음식이 등장하고, 먹을 때마다 경쾌한 음악소리가 배경음악으로 등장합니다.
원조 '혼밥러'이자 '혼술러'의 원조인 '고독한 미식가'는 일보다는 온전히 음식 먹는 거에만 집중하는 TV 프로그램입니다. 음식이 나올 때 환희에 찬 그의 표정, 주변의 어떤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음식에만 집중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 한 음식점에서 매번 손님이 바뀌어도 꿋꿋하게 한자리를 지키며 일차, 이차, 심지어 삼차까지 메뉴 주문을 진행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먹는 모든 음식들은 맛의 구도자요, 힐러입니다. 엄청난 음식의 양에도 불구하고 전혀 살찌지 않는, 신이 내린 그의 날씬한 몸매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근데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대부분 야밤, 즉 야식과 맥주가 급당기는 타이밍입니다. ㅠㅠ 게다가 일본 전통식 일인 화로 위에 굽히는 야키니쿠(焼肉)라는, 비주얼이 말도 안 되는 메뉴가 나올 때면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합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쿠X을 검색해 일인용 미니 화로를 로켓배송으로 주문을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체 액체로 가해지는 화력이 약할 뿐 아니라 평생 가족들 고기 굽는데 일생을 바친 제가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애초부터 잘못된 판단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집안 찬장 상단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 야키니쿠(焼肉) : 말 그대로 ‘고기(肉)’를 ‘굽다(焼く )’라는 뜻으로 일본식 고기구이를 말합니다. 어원을 보면 한국식 고기구이가 제일 한국 조선인 사회 및 그들과 교류가 많았던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에 정착된 요리이자 넓은 의미에서 일본식 한국 불고기로 불립니다. 부챗살, 살치살, 갈매기살 등 다양한 부위의 고기는 물론, 혀, 간, 위, 장(곱창) 등의 내장도 메뉴에 나옵니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고독한 미식가가 음식을 먹은 후 항상 마지막은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싹싹 훑어서 퍼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탄수화물 중독자의 모습니다. 다 먹은 후 그는 속으로 '고치소오사마데시타(ご馳走様でした, 잘 먹었습니다)'를 속으로 외치며 그만의 마지막 성스러운 식도락 리추얼을 거행합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세상 남부러울 게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숙소로 향합니다. 저 또한 눈요기로 대리만족을 하며 행복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내일은 뭐 먹지???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는 임경선 작가는 '일관된 삶을 태도를 유지하면서, 무언가에 몰두하여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인생의 방황을 줄여주고 공허함을 최소화시킬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일관된 삶의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몰입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뭔가 특별한 대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인 이노가시라 고로에게 맛있는 음식은 최고의 몰입 대상일 겁니다. 먹을 때 그의 환한 얼굴 표정, 이글거리는 눈빛, 성스러운 리추얼,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입놀림, 주변 사람들의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심함, 먹은 후 보여주는 흐뭇한 얼굴 등 사뭇 진지하기까지 한 그의 탐식 행위는 마치 이성과의 격렬한 XX보다 더 강렬한 쾌감과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저 또한 가끔은 고독한 미식가가 되고 싶단 강렬한 욕망을 느낍니다. 고백하면 아직도 혼밥은 불편하고 어색해 잘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일관된 삶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신가요? 누구에게는 스포츠 경기 관람이, 누구에게는 게임이, 누구에게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 낚시, 영화, 식도락 투어, 그 외 취미활동 등 수없이 많은 대상들이 있을 겁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나누는 봉사활동도 몰입의 대상이겠죠. 방황을 주여주고 공허함을 최소화시켜줄 한 가지 취미 활동 정도는 만들어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