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인 '루틴(routine)'은 사전적 의미로는 '일상, 틀에 박힌 일' 또는 '특정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된 명령'을 뜻합니다. 스포츠에서는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경기 3시간 전부터 운동장을 꼭 15바퀴 뛰고 체조를 한다거나, 운동장의 선을 밟지 않고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는 의식적 행동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루틴'이란 용어는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즉, '판에 박힌 일상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을 지칭하거나 '변화 없는 무료한 일상' 등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루틴'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이나 절차'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말하고자 합니다.
요즘 많은 블로그를 보면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나 운동 등 자기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을 실행하는 이웃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마 블로그 소재로도 적당하고, 자신만의 결심을 이웃 블로거들에게 공유하고 알림으로써 실행의 동력도 얻고, 한편으로 평소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는 이웃들도 자극이 되기 때문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한편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꼭 그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치이고, 24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삶의 더 의미 있고 가치있게 만들어간다!는 뿌듯한 감정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하루의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미라클 모닝은 습관일까요 아니면 루틴일까요? 그러면 습관(habit)과 루틴(routine)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글러이자 네스 연구소(Ness Lab) 소장인 Anne-Laure Le Cunff는 습관과 루틴의 차이점에 대해서 '의식적인 노력의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습관은 노력 없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말하는 반면 루틴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동이란 뜻이죠. 습관은 기상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거나 아침 출근길에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등 특정 신호에 반응화된 자동화된 욕구이자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반면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양치질을 한다든가 아니면 독서나 운동 등 삷을 더 의미 있고 가치있게 만드는 의식적인 노력을 수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루틴은 습관과 달리 조금만 의식적인 노력을 게을리하면 지속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댄 애리얼리·그레첸 루빈의 저서 《루틴의 힘》이란 책에서는 루틴을 이어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보상(reward)을 주라고 말합니다. 보상을 받은 뇌는 루틴이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유지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죠.
칸트의 산책
<루틴의 힘>이라는 책을 보면 성공한 CEO 10명 중 6명은 오전 5~6시에 일어나 등산, 명상, 신문 읽기, 독서 등 저마다의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일어나자마자 서너 종류의 신문을 읽으며, 메타로 사명을 변경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또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3시 30분에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정확했던지 당시 쾨니히스베르크 주민들은 그가 산책하는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려고 결심한 사람들은 어떻게 '루틴'을 만들어 행동에 옮겨야 할까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환경 디자인(Environment design)을 적용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환경 설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전날 밤에 러닝 웨어(시계, 압박 슬리브, 신발 등)를 깔끔하게 머리맡에 준비해 두고, 일어나면 옷만 입고 바로 나가는 행동을 예로 듭니다. 이외에도 의식적으로 해야 할 루틴은 전날 일찍 자기, 새벽 알람을 맞추기, 익익 알람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찬물을 한잔 마시기, 마신 후 바로 세수나 양치질하기 등이 루틴이 될 겁니다. 이 정까지만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정신을 추스르고 운동을 하러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사소한 루틴의 힘입니다.
한국 속담 중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는 게 어렵지 일단 시작만 하면 끝마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속담이라 그냥 간과하기 쉽지만 어찌 보면 선인들의 삶의 지혜와 통찰력이 담긴 보석 같은 어록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가진 경영학 박사학위도 제 나름의 목표 수립과 소소한 루틴을 만들어 지킨 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루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동화된 습관을 만드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계속 일관되게 해 나가는 사람을 선망하거나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그냥 주어진 루틴을 성실하고 꾸준하게 실행한 것'이 다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인생이 다 그렇듯 뭔가를 이루는 특별한 비결 따위는 없습니다. 그냥 묵묵히, 꾸준히 루틴을 실행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말로는 끈기 있는 열정, 즉 그릿(Grit)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루틴은 자동화된 습관을 만드는 것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자동화된 습관은 '관성'과 '항상성'을 만들고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젖으면 스며들고, 스며들면 번지는 효과처럼 말입니다.
예전 주물로 만든 우물 펌프를 보신 적이 있다면 '마중물(calling water)'이란 단어의 뜻을 아실 겁니다. 메마른 우물 펌프에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 필요한데 이 물을 부으면서 펌프질하면 저 아래 고여있는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이때 붓는 '첫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비유적으로는 '첫 계기' 또는 '초석'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즉 계기를 만들어 잠재성을 끌어낸다는 의미가 포함된다는 뜻이겠죠. 마중물은 루틴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한마디로 루틴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말일 겁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사람에게 아침 운동의 시작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마중물이 되겠지요.
루틴의 경우 거창한 것보다는 가급적 지킬 수 있는 사소한 루틴을 만들어 행동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너무 야심찬 목표를 세워 지키기 어려운 루틴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애초부터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겁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처럼 사소한 루틴부터 시작해서 보다 큰 루틴으로 만들어 나가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Anne-Laure는 루틴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식(ritual)화에 있다고 말합니다. 의식이란 단순한 행동의 수행을 넘어 모든 행동을 오감으로 느끼고 몰입함으로써 교감하는 단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음식을 씹을 때 음식의 영양소를 생각하며 천천히 씹을 때 음식의 맛과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많은 것을 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달리 멀티태스킹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으면 넋 놓고 멍한 상태가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만약 할 일이 많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업무의 우선순위 정하기'가 될 겁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것을 제일 먼저, 그리고 긴급한 것을 두 번째.... 이런 식으로 '긴급성'과 '중요성'을 축으로 분류한다면 업무 우선순위 정하기가 훨씬 수월하겠지요.
루틴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일단 머리를 최대한 비워놔야 합니다. 동시에 많을 걸 해야 한다면 뇌의 한정된 자원은 최대한 복잡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머리를 비운 상태에서 가벼운 목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사소한 루틴을 만들어 실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행동으로 옮겨진 루틴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자동화된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이 정도 수준만 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루틴을 실행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루틴을 만들어 행동으로 옮길 때는 루틴 실행의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운동 중에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상상을, 운동 후에는 건강해졌다는 뿌듯함을, 운동 후에는 먹는 음식, 즉 식도락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을 말합니다. 산책을 할 때는 발과 닿는 땅의 감촉을, 걸을 때 보는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을, 시원한 공기와 새소리가 주는 평온함을 느껴는 것이죠. 이런 긍정적인 느낌이 루틴의 즐거움과 보상을 주는 훌륭한 방법이 될 겁니다. 모두들 한번 사소한 루틴을 만들어 삶의 변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또 그런 사소한 루틴의 실행이 삶의 여정에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감정을 가져다주는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