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한 번 맡은 학년을 연속해서 하는 것을 선호한다. 교육과정을 한 번 지나가고 두 번 지나가고 그렇게 여러 번 지나갈수록 그 분야에서 내공이 쌓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영어교과를 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에서 교과 수업만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어렵다. 임신과 출산, 병원을 자주 가거나 어쩐 특정한 사유가 없다면 우선은 담임으로 배정이 된다. 영어 교과를 맡을 수 없다면 기왕에 하는 것 모두가 기피하는 최고학년인 6학년을 계속 맡기로 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내년에도 나는 6학년 담임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성을 쌓아가고 좀 더 내실을 다질 수 있다는 중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6학년을 1 지망으로 쓰기에는 많이 망설임과 고민이 있었다. 작년에 5학년이었던 이 아이들은 5년 내내 무성했다. 무엇이 무성했느냐 하면 악명이 자자했다. 이상하게 그런 학년이 있다. 그리고 그 학년은 기피학년이 된다. 맡는다면 피하지는 않겠지만 미리 나서서 어려움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는 그런 생각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올해 새 학년을 준비하는데 더 공을 많이 들였다. 교실 정리도 더 일찍 부지런히 했고 준비기간도 늘렸다.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웃지 말자. 아이들 앞에서 조금 더 엄숙한 모습을 보이자. 굳은 다짐을 하고 아이들을 만났다. 단지 소문만 듣고 이렇게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니다. 급식 시간을 비롯하여 학교 안에서 오고 가며 5학년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한숨이 나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떠드는 것은 문제 축에도 들지 않았다. 유독 심각하게 뛰어다니며 절제가 안 되는 그 모습들을 본 6학년 선생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년을 같이 했던 한 분은 더 이상 6학년을 맡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5학년으로 내려가셨다.
그런데 어제오늘 만난 우리 반 아이들은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한 달만 행복하고 일 년이 불행한 경우도 물론 허다하다. 그래서 첫날이 중요하고 일주일이 중요하고 초반의 두 주, 그리고 한 달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몹시 중요하다. 그러기에 3월 한 달은 모든 에너지를 여기에 쏟으며 학급 경영의 틀을 잡는데 공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순하디 순했다. 어디서 이런 귀염둥이들이 왔을까 싶을 정도로. 물론 반짝이는 개구짐의 눈빛을 보이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용히 다가가 눈을 마주치고 말은 건네면 수줍어하며 행동을 바로 잡았다. 오늘은 자신의 사진에 투명필름을 대고 펜으로 미니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작품을 완성하면 검사를 받고 칠판에 자석으로 붙인다. 보통은 자유롭게 마구잡이로 붙인다. 그런데 이 아이들. 내가 몇 년을 담임을 했어도 이렇게 차례차례 간격을 맞추어 붙이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조심조심 선을 지켜서 저렇게 예쁘게 붙여놓았다. 하나 슬쩍 내려간 것은 자석의 힘이 약해서 그런 것이다.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줄 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리를 알려주고, 식당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확인했더니 정말 그대로 했다. 마음대로 화장실을 간다고 급식실에서 자리를 이탈하거나 친구들과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두 어명 장난을 치고 돌아다니다가도 내가 일어서서 다가가 알려주면 자리로 돌아가 식당예절을 지키고자 애썼다.
밥을 먹고 돌아와 자리를 정리하는 시간에도 너무나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정리했다. 첫날이니까 그럴 수 있다. 나도 안다. 그런데 어떻게든 잘하려고 애쓰는 그 진정 어린 마음은 안 보일 수가 없는 법이다. 첫 단추를 어그러트리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들이 보여서 그저 예쁘기만 했다. 우리 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고 활동이 시작되는 오늘 6학년 복도는 활기찼지만 차분함이 감돌았고 질서가 지켜졌다. 모른다. 다음 주면 나는 역시 소문 그대로였다며 6학년 담임을 맡은 고충을 여기에 토로하고 있을지도. 그럼에도 행복한 일 년을 만들고자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고 맞추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어제와 오늘,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피는 그 모습들에서 나는 희망을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이라는 말이 있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으로 즉 외모나 겉만 보고 내면을 함부로 속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사실일 수도 있도 더할 수도 있지만 덜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조금 읽어보고 미리 판단을 내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니 여전히 조심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한 주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하늘이 흐리지만 따듯한 봄날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