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견디기 쉽다. 여름은 도망갈 데가 없지만 겨울은 옷을 두껍게 입고 집안으로 숨으면되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모든 것 다 떨구고 벌거벗은모습 그 자체로 서 있는 것이 처연하지만, 어떤 꾸밈, 수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비장미, 골계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나목으로 견디고 버티는 겨울나무가 숭고하고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한다.
사람은 일생을 사는 동안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애쓰는 구간도 있지만, 버리고 벗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직장 생활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은퇴를 하여 사회적 호칭을 벗게 될 때,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굴레와 포장을 벗기면 나는 어떤 사람,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를 생각하면서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바람 앞에 서 있는 겨울나무를 떠올리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아침의 문장>을 본 것이었다. 쿵하고 가슴을 때렸다.
얼마나 반갑던지....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확인 때문이었다. 내 노년의 방향을 버리고 비우는 것에 둔 것이 맞았다는 검증을 받은 것 같아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또, 모두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나름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만 가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였다.
겨울나무가 보여주는 정직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정처 없는 것에 기대어 희미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가리고 있던 모든 것이 다 떨어져 나가도 초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기대하는 당당한 모습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가는 노력은 계속하고 싶다.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내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내가 될 때까지.
지나간 뒤에야 슬쩍 느껴져서 뒤돌아보게 하는 꽃향기처럼 은근하고 미세한 마지막 향기를 풍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