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첫 번째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읽었다. 『여수의 사랑』은 1995년에 초판을 발간하였는데 이때 한강의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었다. 『여수의 사랑』은 한강의 초기 단편 6편을 모아 발표한 첫 작품집이었다. 『여수의 사랑』에는 한강이 ’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즉, 그녀의 나이 스물세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 쓴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수의 사랑』은 이 단편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여수의 사랑』을 읽으면서 아, 한강은 시작부터 달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재능이란 타고난 것도 있고, 갈고닦아서 습득한 것도 있다면, 한강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 더 큰 것일 정도로 그녀는 초기 작품에서부터 원숙하고 깊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강 문학의 특장을 ’범상치 않은 소재의 발굴, 시와 산문을 넘나드는 문장, 아름답고 모호한 분위기’라고 보았는데 스물세 살에 발표한 『여수의 사랑』에서도 이런 한강 문학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 되는 『여수의 사랑』에서 여수는 전라도 남단의 바닷가 마을 ‘여수(麗水)’의 지명이기도 하고, 고단하고 애처로운 여행의 수심을 담은 ‘여수(旅愁)’를 의미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나로 나오는 정선과 룸메이트로 우연히 만난 자흔이다.
나는 혼자 사는 자취방의 월세를 줄이기 위해 같이 살 룸메이트를 구하는 전단지를 직접 써서 전봇대와 버스정류장 옆 영화광고판, 동네 슈퍼에 딸린 공중전화박스에 붙인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전봇대에 붙인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자흔이었다. 자흔보다 먼저 살던 룸메이트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매일 방이고 부엌이고 많지 않은 가구들을 닦아대는 나의 결벽증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린 형편이었다.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자흔은 지금까지 같이 살았던 누구보다 더 허술하고 조심성이 없었다. 전기밥솥이나 옷이나 몸이나 할 것 없이 그녀는 늘 함부로 다루었고 돈조차도 눈에 띄는 아무 데나 던져두었다. 내가 자흔의 무질서함과 깔끔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무리 질색을 하고 잔소리를 해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자흔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땅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그녀의 지치고 피로한 기색과 그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짓는 순진무구한 웃음 때문이었다. 평생을 떠돌아다닌 것 같은 피로와 온 세상을 둘러보아도 아무 데도 기댈 데 없는 것 같은 자흔의 외로움, 그럼에도 보이는 따스한 온기가 그녀를 밀어내지 못하게 하였다.
물과 기름 같은 두 룸메이트는 우연히 고향을 얘기하다 나의 고향이 여수라는 말을 듣자 자흔은 깜짝 놀랄 정도로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여수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온다. 나는 일곱 살에 떠난 여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고 남아 있는 기억도 별로 좋지 않다는 말로 자흔의 여수에 대한 관심을 차단하였다. 그런데도 자흔은 끊임없이 여수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여수에 가고 싶어 했다.
...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28쪽.
-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29쪽.
나의 여수에 대한 기억은 끔찍하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일곱 살에 아버지가 죽은 그곳에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토해내던 무시무시한 기침소리와 술에 젖어 살던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쫓아올 때 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달아나자 뒤에서 들리던 동생의 외마디 소리, 아버지에게 붙잡혀 바다에 던져지면서 외치던 동생의 마지막 비명소리, 끝까지 나를 붙잡아 바다에 던지던 아버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젖은 시멘트 바닥에 뉘어 있었고 나를 둘러싸고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바다에 던지고 자신도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졸지에 어머니와 아버지, 동생을 잃고 천애 고아가 된 나는 여수를 떠나 외가가 있는 수원에서 자랐고 그 후 여수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아왔다.
자흔은 고향을 묻자 인천, 속초, 대구, 충무, 광주, 그 밖의 소도시들까지 들먹거리다 결국은 자신의 고향도 여수라고 털어놓았다.
두 살 쯤 되었을 때 나는 강보에 싸인 채로 열차 안에서 발견됐대요. 보호자 없이 울고 있는 것을 서울역에서 발견한 역원들이 파출소까지 데려다주었대요. 43쪽.
그 후 자흔은 일 년 가까이 보호기관을 떠돌다가 인천에 있는 시립고아원에 들어갔다. 곧 어느 집에 입양되었으나 말을 못 한다는 이유로 파양 되었는데 고아원으로 돌아오자 자흔은 말문이 트여 말하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전주에 있는 유복한 집으로 집에 입양되어 갔으나 곧 양아버지가 죽고 양어머니를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하였다고 했다. 자흔이 자신의 고향을 여기저기라고 이야기했던 곳이 바로 양어머니와 함께 떠돌아다녔던 곳들이었다. 자흔은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양어머니를 떠나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고 했다.
... 어느 곳 하나 고향이 아니었어요. 모든 도시가 곧 떠나야 할 낯선 곳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죠.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44쪽.
자흔은 자기가 발견된 기차가 여수발 서울행 통일호였으니까 자기의 고향이 여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내 고향, 여수가 아닐지도 몰라요. 다만 그 기차가 여수발 서울행 통일호였다고 하니까 어릴 때부터 그곳이 내 고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지나가는 얘기라도 여수,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쩡하고 울리곤 했어요. 43쪽.
자흔의 기나긴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여러 사람을 괴롭혔던 결벽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닦아내고 닦아내도 자흔에게서 풍겨오는 여수의 냄새를 없앨 수 없었다. 나는 자흔이 한치도 다가오지 못하게 그녀를 막아냈다. 나의 완강한 거부 앞에서 자흔의 얼굴은 점차로 흐려지고 우울해졌으며 맑고 높았던 웃음소리가 사라져 갔다.
어느 날 자흔은 한사코 자기를 떠매는 나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는 통보를 하였다. 어디로 가느냐고 고통스럽게 묻는 나에게 타고 가던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우연히 내렸던 여수 근처의 마을을 헤매다가 낯익은 산야와 마을의 비루함과 정겨움에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곳이 바로 자기가 찾아 헤매던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긴 이야기를 했다. 자흔에게 가지 말라고 투정하듯 애원하다가 다음날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자흔은 떠나가고 없었다.
나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여수행 통일호 기차표를 끊어 고개도 돌리지 않았던 여수를 향하여 내려가고 있다. 무엇을 찾아 내려가는지도 모르면서.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64쪽.
왜 이렇게 소설이 애달프고 슬픈지 모르겠다. 정선과 자흔의 상처와 외로움, 세상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불쌍한 두 사람, 스무 살 초반의 작가가 이런 감성과 문체의 글을 써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탄한다. 역시 노벨문학상은 비범한 작가들을 찾아내는데 귀재인 것 같다. 작가 소개에 나오는 한강의 풋풋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상당히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