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시아누크에는
작은 시장
큰 시장이 있었다
큰 시장은
좀 멀어서
마음먹고 가야 하는
시장이었고
작은 시장은
동네 어귀에 있어
자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구경삼아
나선
작은 시장 길에서
그 여자를 보았다
머리는 산발하고
옷은 흐트러져 있고
맨발인 그녀를.
그녀는
쓰레기통을 뒤졌고
오물통에 담긴 빗물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셨다
돌아오는 길
그녀의 손에
살그머니
지폐 몇 장을 쥐어 주었다
몇 걸음 가다
뒤돌아 보니
그 여자가
맑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신이 든
반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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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건 참 묘하다. 보통 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실타래가 풀리듯 기억이 풀리기 시작하면 의식하지 못하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기억들은 머릿속 어딘가에 깊이 잠겨 있다가, 박혀 있다가 미끼에 걸려든 고기처럼 줄줄이 나온다.
10년 전에 살았던 캄보디아를 한 번 회상하기 시작하자 그곳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위의 시에 있는 이야기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미친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나지 못한다. 사회적 장치가 잘 되어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을 거리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머리와 옷차림은 흐트러져 보기 힘들었다. 이유 없이 그들이 무서워서 멀리 피해 다니기도 했고 멀찌감치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밤이 되면 그들은 어디로 가나 하는 것이었다. 밤이 되기 전에 그들은 찾아갈 집이 있는 것인지 집을 찾아갈 수나 있을 것인지가 걱정이 되고 궁금하였다. 왜냐하면 다음 날이 되면 그들이 안보였기 때문이었다.
10년 전에 찾아간 캄보디아는 우리가 어렸을 때 살던 곳과 같았다. 그래서 가난하고 더럽고 무질서한 그곳이 낯설지 않고 이해가 되었고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시장의 모습도 똑같았다. 아무리 가난해도 시장에는 물건들이 쌓여있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런저런 거래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시장에 가면 미친 여자들을 한두 명씩 볼 수 있었다.
그 여자를 만난 것은 작은 시장에서였다. 시장 근처는 언제나 오물이 널려있고 길은 질척거렸고 사람과 짐승과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이 함께 뒤엉키고 있었다. 그 한편에서 여자는 쪼그리고 쓰레기를 뒤지고 웅덩이에 고인 물을 두 손으로 떠 마시고 있었다. 시장에 들어갈 때 못 본 척하고 지나쳤던 여자를 나오면서 다시 보니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널브러져 누워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손에 지폐 몇 장을 놓고는 얼른 돌아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은근히 무서웠기 때문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야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이 아니라 세상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런 때가 묻지 않는 맑은 눈을 보면서 그 여자가 미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이 잘못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들의 눈이 너무 혼탁하고 흐려져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그 여자는 보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여자의 맑은 눈에 우리의 어지러운 모습이 들킬까 봐 그런 사람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현실이라는 말, 꿈이라는 말. 꿈과 현실의 기준이 무엇이고 그 구별은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마치 찰나적으로 다른 세상을 슬쩍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