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시간이 있다.
일출 무렵의 풍경과
일몰 무렵의 풍경이
겹쳐질 때가 있다
일 년 중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있다.
봄날과 가을날이
여름날과 겨울날이
같은 풍경
같은 색깔로 보이는 때가 있다
인생도 어느 부분에서
흡사해지는 때가 있다
유모차를 타고 놀던 아이가
유모차에 의지하는 할머니로
회귀한다
유모차는 같지만
모습은 같지 않다
아이는
유모차 속에서
자란다
할머니는
유모차에 벽돌 한 장을 얹고
밀고 간다
아이의 유모차 옆에는
웃어주는 엄마가 있지만
할머니의 유모차에는
놓인 벽돌 한 장이
보호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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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이란 말이 있다. 한 번도 보지 않았거나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이 이전에 보았거나 경험한 것처럼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를 말한다. 처음 본 사람이 어디선가 보았거나 만났던 사람처럼 익숙하여 낯설지 않게 여겨질 때도 있다. 그래서 어디서 뵌 분 같은데요. 하고 말하기도 한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돌아와 낮잠에 깊이 빠졌다가 황혼 무렵 깨어나서 아침인 줄 알고 학교에 가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아침과 흡사한 풍경에 아침으로 착각한 것이다.
인생에서도 이런 유사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언제부턴가 유모차가 아기들을 태우는 용도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보행을 돕는 보조차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유모차를 미는 할머니를 봤을 때 아기를 데리고 산책 나오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유모차는 아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밀고 나온 유모차를 가까이에서 보다가 놀란 적도 있다. 할머니가 미는 유모차 의자에 벽돌 한 장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할머니의 몸이 유모차를 지탱하지 못해 무게를 주려고 벽돌을 한 장 얹어 놓았다는 말씀이셨다. 할머니의 지혜이자 고육책이었다. 할머니의 몸이 너무 가벼워져서 유모차를 지탱하지 못하고 유모차가 너무 무거우면 할머니가 밀 수 없기 때문에 벽돌 한 장이 딱 좋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유모차는 아기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기를 위해 유모차를 처음 마련하는 엄마는 마냥 기쁘고 기대에 부푼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갈 때 얼마나 예쁘고 자랑스럽고 흐뭇하였는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를 보며 엄마의 기쁨과 사랑도 함께 커갔을 것이다.
처음 유모차를 할머니가 사용하게 된 것은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할머니가 버려진 아기의 유모차를 밀어보았을 때였을 것이다. 어딘가에 의지하고 기대어 걸어야 하는 할머니에게 유모차는 안성맞춤의 보조책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걷지 못할 때의 아이를 위한 유모차는 한 세월을 지나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할머니를 위한 것이 되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되어가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유모차에 앉은 아기 곁에는 엄마가 있다. 유모차를 미는 할머니에게는 벽돌 한 장이 있다. 기시감은 같다는 느낌이지 분명하거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아이 같아지는 할머니는 있어도 할머니 같아지는 아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