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눈빛의 청년이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마을에
들이닥친 사람들이
마을을 휘저으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춤과 노래를 요구했다
비디오가 돌아가자
급조된 예닐곱 명의 무용단이
음악도 없이 어설픈 춤을 추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빛이 복잡하였다
답사를 빙자하여
마을을 술렁이게 하는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분노마저 서려 보였다
학예회 같은 춤판이 끝나자
피리 하나를 손에 들고
등장한 예술가는
그 청년이었다.
그가 부는 횡적 소리가
들판을 적시고
냇물을 적시고
산비탈을 따라서
하늘로 올라갔다
장난하듯 서 있던 사람들이
자세를 바로 잡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 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느 곳을 보아도
초록만이 보이는 곳에서
밤마다 잠 못 이루던
횡적 소리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비디오를 찍던 엔지니어도
사진기를 눌러대던 답사팀도
숨을 죽이고 숙연하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부는 횡적소리에는
우울한 예술가의
불면의 밤이 있었고
넘지 못한 한계에 대한
좌절이 있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가득하였다
한 곡,
한 곡,
또 한 곡,
그는 밤마다 쏟아내던 소리를
모두 들려주었다
횡적 소리에 담긴
우울과
절규와
고뇌를 넘겨받은
이방인들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유려한 횡적 소리에
자신들의 무례를 깨달은
이방인들이
자리를 뜨면서
청년의 손에 가만히 쥐어준 것은
한반도의 지도와 태극기가 그려진
하얀 손수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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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도 훨씬 지난 그때, 우리나라가 막 기지개를 켜던 그때, 외국과의 교류를 넓혀가던 그때, 방학이 되면 제 삼국의 오지를 찾아 그들의 민속 문화를 조사하던 때가 있었다.
사파는 베트남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베트남의 북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라오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고산지대였다. 그때는 사파를 찾는 외지인이 거의 없었다. 학술 답사팀이 조사나 연구를 위하여 가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을 뿐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차로 5시간 이상을 달려 사파에 도착하였다. 산굽이를 따라 조성된 수많은 계단식 논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그림 같은 산악 풍경, 그리고 자욱이 올라오는 물안개 등으로 천상에 오른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사파에서 조사지인 깟깟마을까지는 버스를 이용하였다. 그때 탔던 버스는 우리나라에서 수입된 중고 버스였다. 마포구 청소차, 학원 버스, 개봉동 마을버스 등 한글이 지워지지도 않은 중고 버스를 타고 안전망이 전혀 없는 비포장 산굽이를 돌고 돌아 소수민족인 블랙 몽족이 사는 깟깟마을에 도착했다.
깟깟 마을은 조용하고 고즈넉하였다. 동네를 돌면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출 줄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몽족의 고유 복장을 입고 있는 십 대의 처녀애들이 열 명 남짓 모여들었다. 이들은 음악도 없이 어설프고 부끄러운 몸짓으로 자기들의 민속춤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난 후 횡적을 부는 예술가가 등장하였다.
그 예술가의 표정은 복잡하였다. 이방인들의 무례함이 거슬리는 듯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의 어두운 눈빛과 굳은 표정은 자기들을 구경하듯 하는 외지인들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함께 몰려다니며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 조사단은 청년의 그런 반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의 횡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횡적 소리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청아하고 유려하고 매끄러운 소리였다. 청년의 횡적 소리는 깊고 심오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밤마다 불었을 횡적 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횡적 연주에 산만하던 조사단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불던 횡적 연주가 끝나고도 청년은 넋을 잃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일어설 기력마저 소진한 듯싶었다. 조용했던 주변이 웅성거리면서 조사단은 철수 준비를 하였다.
청년에게 줄 것이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이 전부였다. 청년의 손에 하얀 손수건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청년의 눈빛은 보지 못했다. 청년이 자신의 꿈과 포부를 마음껏 펼 수 있기를 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