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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나의 아름다운 정원』

by 선희 마리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었다. 심윤경은 2002년에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심윤경의 첫 번째 소설집인 것이다. 도서관의 서가를 훑어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어 든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은 생각지 않은 감동과 감탄을 주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35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이다, 내용은 동구라는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동구의 주변인 집과 동네, 학교에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동구가 여섯 살 때인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일들을 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시간적 배경을 1977년부터 1981년까지로 잡은 것은 동구의 하나뿐인 동생 영주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동구의 동생 영주의 출생과 죽음을 큰 맥락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감탄한 것은 여섯 살 난 아이의 관찰이 이토록 섬세하고 세밀하게 서술될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동구가 사는 인왕산 아래 산동네이다. 택시도 들어갈 수 없이 좁은 언덕길을 따라 손바닥만 한 작은 집들이 고물고물 기어 올라간 산동네에서도 동구네 집은 가장 꼭대기에 있다. 인왕산 허리 부근의 동구가 사는 곳을 달동네라고 한다면 차가 다니는 큰길이 가까운 아랫동네는 부자동네이다. 그 부자동네에서 10여분쯤 걸어가면 시장이 있고 10여 분을 더 가면 경복궁의 담길과 만난다. 소설은 동구네 집과 가족들, 이웃들,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 놀던 공터와 공터에 면해 있는 삼층집 주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 작은 공간을 배경으로 여섯 살 난 아이의 시선으로 실타래를 풀어내듯 이야기를 서술하는 작가의 역량에 거듭 감탄하였다.


그리고 동구의 시선으로 보는 암울하고 슬픈 이야기들이 담담하고 따뜻하게 풀어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를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감동하였다.

소설은 1977년, 1978년...... 1981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숫자로만 이야기해도 우리는 그 해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억한다. 그만큼 역사의 격변기였다는 이야기이다. 10.26 사태, 12.12사태, 1980년의 서울의 봄과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경복궁 자락과 닿아있는 산동네에서 여섯 살 난 아이의 시선으로 그 사건들을 훑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여러 번 감탄하였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구네 집은 3대 독자로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말수가 적은 아버지, 알뜰한 살림꾼에 결벽증이 몸에 배어 있는 어머니,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고 며느리를 잡는 것을 당신의 천직으로 생각하는 그악스럽기 그지없는 할머니, 그리고 4대 독자인 동구와 여섯 살 터울로 태어난 여동생 영주이다.


동구네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모든 분란의 중심에 있다. 어머니는 말대꾸 한 마디 없이 할머니의 구박을 견디지만 은근한 고집과 조용한 복수로 할머니에게 보복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는『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윗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공터에 면한 부잣집의 정원을 말한다.

삼층집은 가난한 동네인 윗동네에서 혼자만 너무 차이 나게 잘 사는 집이었다. 부자 동네인 아랫동네에서도 삼층집만큼 잘 사는 집은 흔치 않았다. 윗동네의 평균적인 집을 열 채 넘게 합해도 삼층집의 너른 마당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은 삼층집의 그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대공원이나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다람쥐 모양, 공룡 모양의 나무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나무들을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에 가져다 놓으면 금세 싸구려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탄로날 것이다.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점만을 조심스럽게 모아 둔 것 같은 그런 공간이다. 16쪽.

동구는 여섯 살이 되어서 여동생 영주를 보게 되자 그때까지 놀았던 친구들보다 영주를 돌보는데 재미를 붙인다. 말랑말랑한 두부 같고 백설기같이 하얗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동생에게 빠진 동구는 영주가 백일이 될 때부터 영주를 안고 이웃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영주를 자랑한다. 영주가 커서 안을 수가 없게 되자 동구는 아예 포대기로 영주를 업고 돌본다. 동구는 영주 때문에 친구들과 놀 수 없게 되자 자기만의 놀이를 개발하면서까지 영주를 극진히 사랑하고 위한다.


동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3학년이 되도록 책을 읽지 못한다. 선생님들과 집에서는 동구를 책도 못 읽는 바보 취급을 한다. 동구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박영은 선생님이 새 담임 선생님으로 오신다. 예쁘고 멋쟁이인 박 선생님은 동구가 머리가 나쁜 바보여서 책을 못 읽는 것이 아니라 난독증이 아닌가 생각하여 수업이 끝난 후 1시간씩 동구에게 특별 수업을 한다, 둘만이 하는 수업 중에 선생님은 고향이 광주이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할머니와 광주에서 살았으며 지금도 할머니는 광주에서 살면서 수시로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잔소리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선생님은 동구네 집안 이야기도 다 알고 계신다. 동구가 할머니와 어머니의 불화, 그리고 아버지의 일방적인 할머니 옹호에 대한 불만, 동구 자신이 그런 환경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괴로워하자 선생님은 동구를 위로하며 동구가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그때 지금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고쳐나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이후로 박 선생님은 동구에게 향기로 다가왔고 동구의 첫사랑이 된다, 동구는 나중에 자신이 크면 박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다짐하며 할머니와 같은 구박에서 박 선생님을 의연히 지켜 주겠다고 결심한다.

박 선생님과의 특별 수업 덕분에 동구는 글자 공포증에서 벗어나고 읽고 쓸 줄 알게 된다. 그리고 동구의 3학년이 끝나간다. 박 선생님은 6학년을 맡고 동구는 4학년이 된다. 어느 날부터 박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지 않으신다. 들리는 말로는 대통령 할아버지가 지난겨울에 갑자기 돌아가시고 박 선생님은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박 선생님의 행방에 온갖 수소문을 하며 탐문하던 동구에게 박 선생님의 선배가 되는 동네 주리 삼촌이 동구에게 말한다. 광주에서 데모를 하다가 박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 같다고.

박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 동구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찾아간다. 조금 열려 있는 대문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간다.

정원은 고요했다. 키 큰 집사 아저씨도, 사장님도, 할머니도 없었다. 숲의 향기만 코끝이 찡하도록 강렬했다. 하늘을 가리도록 무성한 8월의 잎사귀들이 짙푸른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끝이 아물아물하도록 높은 느티나무 꼭대기에서 한 점 한 점 나리는 능소화는 푸른 화염에 미련없이 몸을 던지는 선홍빛 눈송이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찬미하면서 능소화 꽃 사이에서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능소화의 찬란한 영혼, 붉은 자줏빛 원피스를 나부끼며 떠나가신 박 선생님 같은 그 황금의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272쪽.

가을 어느 날, 할머니가 안 계시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자 동구는 영주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간다. 마당에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감나무가 있다. 영주는 감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내 어깨 위에 무등을 탄다. 영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리에 한껏 힘을 주며 버티고 있던 동구는 티끌이 눈에 들어갔는지 따가워 지자 무심결에 손을 떼어 눈을 비빈다. 그 바람에 감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영주가 공중에서 퉁겨져 나가 장독대 시멘트 계단 모서리에 몸을 부딪치고 뻗어버린다. 동구의 울부짖는 소리에 뛰쳐나온 엄마와 아버지는 영주를 끌어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영주는 깨어나지 못한다.

나는 영주를 보지 못했다. 영주가 타고 있는 작은 나무배는 이미 봉해져 있었고, 그 뚜껑은 한 번 닫히면 다시 열리지 못한다는, 생사의 중한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의 배는 용기있게 네모난 철문을 열고 들어간 후 단호하게 뒷모습을 감추었는데, 그곳은 아무리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승에 남은 한 가닥 미련조차 털어버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도록 화산처럼 뜨겁고 끈덕진 불로 수천 번 단근질하는 곳이었다. 영주가 그곳에서 혼자 불바다를 건너는 동안 남은 우리 식구들은 유리문 뒤로 쫓겨나서 우리도 그 철문 안으로 들어가 영주와 같이 바다를 건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297쪽.

그렇게 허망하게 영주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지만 동구네 집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불화로 조용할 새가 없다. 할머니는 영주를 잡아먹은 년이라고 엄마를 닦달하자 엄마는 견디다 못해 할머니 앞에 고추장 단지를 내던지고 집을 나가 버린다. 병원에 입원하여 집에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돌아오면 다시 패악질을 준비하고 있는 할머니와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동구는 할머니에게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할머니는 답을 찾은 듯 반색을 하며 내려갈 준비를 하고 아버지는 마지못한 듯 모른 척한다. 동구는 자기만의 아름다운 정원에 가서 작별을 고한다.

나는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장님의 부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나섰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만 들어왔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350쪽.

소설의 표지가 따뜻했다. 2002년에 초판을 내고 십일 년이 지난 2013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는 자신과 오빠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설이 이십 년 삼십 년 후에도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2025년에 나는 이 소설을 읽었다. 이십 이상을 살아남은 소설이 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 더욱 오랫동안 살아있기를 나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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