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책을 한 권 고르는 것은 신기한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한 권을 고르면 그 책과 관련된 다른 책을 또 읽고 싶어집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줄줄이 떠올라 옆의 책도, 또 그 옆의 책도 집어 들어 읽고 싶어집니다.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숙명적으로 횡단성과 연속성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오키 미아코의 수필집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중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4.1(화) 28면.
독서를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소극적인 삶이고 현실도피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의 세계에 한 번 빠져들면 책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요,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광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이 많아지고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광대한 책의 바다에 빠져나올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독서는 고구마를 캐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한다. 고구마 줄기 하나를 잡고 살금살금 캐내어 들어가면 고구마가 하나가 아니라 줄줄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의 흐뭇함은 농사짓는 농부가 느끼는 만족감 아닐까.
책은 또 다른 책을 불러낸다. 책을 읽으면 그 책에서 언급하는 책이 있다. 영감을 받았거나 영향을 받았거나 참고가 된 책들이다.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무수히 많은 책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책장을 넘어 책의 강을 지나 책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
독서는 희귀하고 진기한 보물을 캐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독서 중에 기대하지 않았던 기가 막힌 문장을 만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거나 내 지식의 한계가 조금 확장되면서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 든다.
독서는 노동이고 노력이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두뇌를 가동해야 하고 인내를 발휘해야 한다. 노동과 노력이 아깝고 당장 변화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독서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깊고 넓은 책의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있다. 책장을 덮는 것이다. 책장을 덮는 것은 책 속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책 없이도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책의 황홀경을 맛본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도 독서가 주는 황홀함과 같은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또다시 인내로 무장하고 시간을 투자하여 기꺼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장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슨 창문이 반강제적으로 삐걱삐걱 열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그 충격은 때로 강풍이나 눈을 찌르는 빛이 되어 저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오키 미아코의 수필집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중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3. 24(월)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