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절제

by 선희 마리아
쓰이기를 원하는 것들과 남에게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날에는 더욱 문장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런 날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끼어들고, 등장인물의 말투가 들뜨고 단정적 종결어미가 글 쓰는 자를 제압하려고 덤벼든다. 글이 잘나가서 원고 매수가 늘어나고 원고료가 많아지는 날이 위험하다. 이런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공원에 놀러 나가기 전에 글 속에서 뜬 말들을 골라내고 기름기를 걷어 낼 때에는 남이 볼까 무섭다.
소설가 김훈의 신작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6. 25(화) 28면.

김훈 선생님의 글소문이야 워낙 알려져 있고 가감 없는 문장의 빼어남은 많은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고 본받고자 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난 김훈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치열하고 가차 없는 글쓰기 소문에 지레 눌렸는지 선생님의 작품 언저리에서 뱅뱅 돌면서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읽어 본 기억이 없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미루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글 앞에 선 선생님의 매섭고 추상같은 태도를 본다. 이런 치열한 자기 검열이 있기에 살아있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글을 보면서 이제는 더 이상 김훈 선생님의 작품 읽는 것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한 각오로 김훈 선생님의 글과 마주해야겠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