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경기도
초기 기획에서는 꿈 인터뷰 대상 중에 아는 사람을 넣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만 인터뷰하다 보니 오래 붙잡고 있기도 어려운 데다가 생각했던 것만큼 깊이 있는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는 어른’의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부모님’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알던 부모님’과 ‘엄마 아빠가 알고 있는 자기’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방꾸쟁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그들의 과거에 관해 물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엄마 아빠는 원래 부모님이었던 것처럼 보였고, ‘한 사람’보다는 ‘나의 부모’로서 그들을 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꿈이나 버킷리스트 따위를 물어본 적도 없었다. 방꾸쟁이들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던 나머지, 그들을 마치 ‘주연 배우인 자식들의 꿈을 지원해주는 스태프’ 정도로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알게 됐다. 그들도 자기 삶의 주연이며, 모두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청소년이던 시절,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양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소중하던지, 잃고 싶지 않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꿈을 안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던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는 품에 안고 있던 꿈을 놓아주었다. 풍선처럼 두둥실 떠 오르는 꿈을 품에 안는 대신 두꺼운 끈으로 칭칭 감아 손목에 매달아 두었다. 그리고 양손에는 펜과 노트, 주판 따위를 잡았다. 꿈을 계속 끌어안고 있진 못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꿈은 언제나 내 옆에 떠 있었고, 언제든지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사랑하는 배우자와 가정이 생겼다. 자식들도 태어났다. 사랑하는 존재들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렇게 결심한 이후로, 두꺼운 끈으로 손목에 묶어두었던 꿈을 다시 손목에서 풀었다. 다행히 날려 보내진 않았다. 얇고 기다란 실, 길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기다란 실 한 가닥을 찾아 꿈의 끝자락과 자신의 허리춤에 묶어두었다. 그리고선 양손에 서류 가방, 키보드와 마우스, 망치, 철가방, 자동차 핸들과 분필 따위를 잡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매일 조금씩 꿈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눈에 띄게 멀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며 지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때로는 일, 관계, 돈이 뒤얽힌 폭풍우를 만나곤 했다. 꿈이 완전히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하곤 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해결하고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느라 바빴다.
그렇게 살아온 지 수십 년이 흘렀다. 허리춤에 무언가 묶여 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철없던 어린 시절 묶어둔 풍선 따위가 아닐까 싶다. 저 멀리 무언가 매달린 게 보이는 것 같지만, ‘건강’, ‘노후’라고 쓰인 커다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소중했던 것 같긴 한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보면 이제는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허리춤에 묶인 게 거슬리기도 하니 날려 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부모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살아온 그들의 꿈은 이제 자유롭게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저 멀리서 흔들리고 있는 꿈을 보니 그들이 꿈을 완전히 잊기 전에, 자신의 꿈을 완전히 날려 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꿈이 있나요? 그리고 어떤 꿈이 있었나요?”
또, 말해주고 싶어졌다. “당신이 잊어버린 그것, 너무 멀리 날아 가버린 저것이 사실 당신의 꿈이에요. 이제는 가까이 당겨올 수 없이 멀어졌네요. 솔직히 이젠 놓아줄 때가 됐다는 말에 공감해요. 그래야 새로운 것들을 또다시 당신의 허리춤에, 손목에 묶고 끌어안기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저걸 한 번만 자세히 살펴봅시다. 이젠 기억 안 날지도 모르지만, 저 작은 꿈이 한때는 당신의 몸과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게 했었어요. 아주아주 소중한 존재였어요. 그러니 완전히 날려 보내기 전에 저랑 한 번 같이 봅시다. 당신의 꿈.”
미리 말하자면, 꿈을 묻는다고 해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나 대단히 감동적인 답변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꿈, 누구나 비슷한 꿈을 얘기하기에 때로는 당연하게 여겨질 법한 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평범하고도 당연한 이야기가 결국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어쩌면 이미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기에 함께 살펴보고 공감하고 싶다.
■ 다음 이야기(2025.03.23.일 업로드 예정)
□ Chapter2.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경기도
"파격적인 버킷리스트를 가진 낭랑 86세 우리 할매"
→ 방꾸녀의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되다! 80대 중반인 그녀가 가진 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