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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버킷리스트를 가진 낭랑 86세 우리 할매

Chapter2.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경기도

by 장병조

방꾸쟁이들이 서울에서 교육을 듣는 날이었다. 우연히도 방꾸녀의 할머니가 사는 곳과 가까운 장소에서 교육에 참여했다. 그래서 할머니께 연락을 드렸더니 할머니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노원구에 위치한 방꾸녀의 할머니 집으로 갔다. 할머니가 “집 오는 길에 빈손으로 오기 그러면 우유나 한 팩 사 와.”라고 이야기했지만, 방꾸쟁이들은 깜빡했다. 역시 심부름은 까먹어야 제맛이지.


할머니의 집은 3층으로 되어 있는 복층 구조이다. 집 앞에 서서 비밀번호가 무엇이었는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더니, 방꾸쟁이들의 기척을 느낀 할머니가 위층에서 1층 현관으로 내려와 반겨주었다. 할머니를 따라 할머니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옛 감성의 나무 계단 열 칸 남짓을 올라갔다. 2층에 있는 주방에서 저녁을 먹기 위함이었다.


방꾸쟁이들은 할머니가 해준 콩밥과 양념갈비, 물김치를 먹고 후식으로 과일이 담겨 있던 접시까지 깨끗이 비웠다. 허겁지겁 밥을 먹느라 온 신경이 밥에 쏠려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로소 할머니에게 꿈 인터뷰를 하려고 그곳에 방문했다는 게 생각났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뒤, 방꾸녀의 할머니 꿈 인터뷰가 시작됐다.


할머니는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전쟁이 났다고 했다. 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전쟁통에는 안전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고, 전쟁 이후에는 먹고 사는 걱정을 하느라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시대 배경은 그대로인데 할머니만 다시 어려진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해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어릴 적 한문 선생님이 할머니 집 사랑방에 살았던 덕에 한문은 잘했지만, 한문보다는 영어가 현대 사회에서 유용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알았을 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폭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가장 재밌어했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개구리 잡고 나무 위에 올라가는 거. 어른들이 잔소리하고, 야단치고, 일 시키려고 하면 대나무 위에 올라가서 숨어 있는 게 제일 재밌었지.”라고 대답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곤 방꾸녀에게 “너는 지금 제일 재밌는 게 뭐냐?”라고 되물었고 방꾸녀는 “저는 요즘 자는 게 제일 재밌어요.”라고 답했다. 그런 방꾸녀에게 할머니가 뭐라고 했을지는 이 책의 독자라면 누구나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큰일 났다. 젊은 놈이 놀고 있네. 뭘 벌써부터 자는 게 재밌어? 죽으면 영원히 잘 텐데.”라며 혀를 찼고, 젊을 때는 열심히 노력하고 꿈꾸는 게 제일 재밌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글에는 잘 담기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86세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명랑하고, 에너지 넘쳤다. 그리고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충분히 즐기는 동시에 손녀딸이 너무 힘들지 않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듯한 분위기도 풍겼다. 또, 방꾸남 같은 이상한 친구를 사귀어서 엉뚱한 일만 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듯한 표정도 보였다. 이처럼 손녀딸을 아끼는 할머니다 보니, 버킷리스트에도 손녀딸이 가득했다. 인터뷰 당일 함께 적어본 할머니의 버킷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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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는 과정에서 손녀인 방꾸녀의 개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식들과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깊다는 진실이 버킷리스트에 담겼다. 또, 할머니네 집안 여성들이 장수한다는 점도 버킷리스트에 영향을 미친 듯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86세까지 사셨고, 할머니의 언니들도 90세 100세 이상을 살고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도 ‘어차피 오래 살 거면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즐겁게’ 살다 가면 좋겠다고 말했고, 할머니의 그 바람이 버킷리스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여행은 이제 미련이 없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너희 아빠가 아주 전국 방방곡곡을 나를 다 데리고 다녀서 이제 뭐 더 이상 어디를 특별히 가고 싶다 이런 것은 없어.”라는 말과 함께 자식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은은히 풍겼다.


방꾸녀의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버킷리스트나 꿈처럼 미래에 이루길 기대하는 무언가를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행위’라는 요소를 포함하는 것 자체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할지를 포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누구와 함께’ 어떤 행위를 하는지에 따라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할머니 인터뷰를 마친 뒤 방꾸남은 방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혼자서도 빨간 머리로 염색하고 빨간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실까?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움을 느끼실까? 나라면 오히려 그런 행위가 나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것 같기도 해.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 것 같고. 근데 할머니는 너와 함께라서 그런 버킷리스트를 즐겁게 실천하실 수 있는 거라고 느꼈어. 손녀딸인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니까. 함께라면 뭘 해도 즐거우신 거지.”

사진_Chapter2_경기도_3_사랑하는 사람과 함께.jpg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 다음 이야기(2025.03.30.일 업로드 예정)

□ Chapter2.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경기도


"방꾸남의 엄마 아빠 인터뷰"

→ 평범한 가정의 6n년생 엄마아빠, 그들은 과거에 어떤 꿈을 꾸었으며, 어떤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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