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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걱정하냐? 공동의존증의 늪.

중독자가족의 늪... 지대를 지나가면 악어 떼가 나온다.

by 와와치

차라리 악어떼가 덜 무섭다. 죽어라 도망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암만 발버둥 쳐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가 없지 않나. 이게 무슨 말이냐고?


천신만고 끝에 정신을 차리고 도박중독자와의 관계를 정리했다고 치자.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십분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공동의존증’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명이다. 공인인증서는 잘 안다만 공동의존증이라니. 아니, 아픈 건 도박중독자라면서요? 게다가 도박중독이 질병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나도 질병이라고요?


난 그냥 그 사람이 하도 전과 달리 이상하게 행동하니까 정신 차리라고 화도 내봤다가, 설득하고 타일러도 봤다가, 울고 불고 사정도 해봤다가, 이성적으로 종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달도 해봤다가, 밥도 못 먹고 앓아누워도 봤다가, 묵언수행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결국에는 온갖 화와 짜증이 섞인 무기력한 여자가 된 것뿐인데 그런 제가 질병이라니,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나의 이 증상이 바로 공동의존증이라고 한다. 이 말을 처음 접한 건,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상담사 분을 통해서다. 한 시간가량 전 남편에 대한 나의 의혹을 묵묵히 들어주시던 그분이 난데없이 나에 대해 물었다. 나를 걱정해 준다. 일단 제 걱정도 감사한데요,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제가 아니라 도박을 하는 게 99% 맞을 저의 전 남편 아닌가요? 아니란다. 일단 나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화투짝으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맵고 뜨겁고 얼얼했다.


그랬구나… 나도 치유가 필요한 거구나… 나 그동안 계속 아팠던 거 진짜 맞았네.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이상하긴 했는데… 내가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어…


병명은 처음 들었지만 나는 앓고 있었고, 그가 그런 나를 깨우쳐 줬다. 그렇다. 나는 공동의존증이다.


특정 대상을 향한 분노, 의심, 통제, 그리고 절망…


평소 나는 통제가 필요한 관계는 나쁜 관계라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내가 계속 잔소리를 해야 하는 관계는 길게 끌고 가지 않았었다. 뭔가 문제가 있으니 통제가 필요한 것일 테고, 통제가 지나치면 반발이 일어날 것이며, 문제를 일으키는 상대를 납득시키기 위해 나도 발악해야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부득부득 발악해 대는 꼴이 제일 미웠기 때문에, 애초에 그렇게 망가지지 않으려고 인간관계를 잘 조절해 왔다. 진정 건강한 관계는 자유로움 속에서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할 필요가 전혀 없는 관계를 늘 지향해 왔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이 사람 하나에 ‘집착’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과거 내가 제일 싫어하던 여자의 모습이 되다니, 끔찍했다.


변해버린 내가 싫어지니 타인을 만나고 싶지 않아 지고, 점점 더 동굴 안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모습도 성격도 스타일도 말투도 습관도 행동도 표정도 모두 전과 달라져버렸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를 스스로조차 거부하는 기괴한 감정이 생겨났다. 전과 같이 나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거울 속 이 여자가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다. 나는 정말 사랑이 많았고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는데,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상실감에 나를 변하게 한 상대를 더욱더 원망하게 되고, 설령 내가 표현을 않더라도 그 마음은 내 내면을 뚫고 나가 말투로 표정으로 그를 괴롭혔으리라. 그래서 그는 더 도박에 빠졌던 것일까?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의 도박이 먼저냐, 나의 통제가 먼저냐. 둘 다 아니라면, 이러한 괴로움조차도 그저 ‘공동의존증’이라는 질병의 증상일 뿐인 것인가. 누구 답을 아는 사람?


<공동의존자 더 이상은 없다>의 저자 멜로디 비에티는 공동의존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공동의존자란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락한 사람이자 그 상대방을 통제하고자 고심하며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냥, 나다. 아 물론, 과거의 나. 이젠 결코 그러지 않을 지난 과거의 나. 그 시간들의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추하고, 떠올릴수록 비참하고 괴롭다.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의 밑바닥을 본 느낌이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연연하고 절절매며 괴로워했다니… 그때 나는 괴로운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어긋난 행동을 하는 그를 말리고 싸우고 포기했다가 또다시 희망을 걸고 설득하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했다가 또다시 싸우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지고… 의 반복이었던 시간들.


이혼을 한 지금도 때때로 마음이 약해진다. 그는 더 힘들 텐데…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놈의 도박 때문에… 대체 누가 그 사람에게 도박을 권유했을까…이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복기한다. 그가 나에게 했던 거짓말들을, 십여 년에 가까운 아까운 내 시간들을, 그가 나에게 지운 무거운 피해들을, 마지막까지도 속아서 건넸던 돈을, 그 순간들마저 다 거짓말이었음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고, 아픈 순간들을 다시 한번 나에게 각인시킨다. 나의 정신적 신체적 회복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시간의 힘을 믿어보려고 한다.


그는 잃은 본전을 잊지 못해 도박을 이어갔을 것이고, 나는 지난 추억을 놓지 못해 그와의 관계를 이어갔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과거를 놓지 못한 채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뜨거운 줄 알면 놓아야 한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나는 미련하나마 이제야 그를 놓기로 했다.


목숨 걸고 늪지대를 건넜건만, 서슬 푸른 악어떼를 마주한 것만 같이 때때로 모골이 송연해져 온다. 공동의존자에게 있어 악어떼란, 오랜 기간 상대를 통제하면서 서서히 변해버린 빛이 사그라든 자신의 모습이다. 실제로 여러 증상들이 몸과 마음에 나타나 때때로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부디 이 공동의존의 늪에서 스스로를 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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