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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Sep 28. 2023

츄룹츄룹, 캬아~

히야시츄우카(冷やし中華)

여름은 덥다. 2층짜리 주택집의 2층에서 맞는 여름은 더 덥다.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가 꾸물꾸물 높은 곳으로 올라와 지붕 밑으로 꾹꾹 채워진다. 뉴스에서 35도가 넘는다며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날은 어김없이 에어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온도를 몇 도로 맞추든 후텁지근하다.


덥다는 말과 알 수 없는 짜증을 달고 다닐 즈음 냉장고는 열고 닫는 손길에 바쁘다. 그렇다고 찬 물이 갈증을 해소해 주느냐. 그건 또 아니다. 이런 날은 꼭 새콤한 것이 당긴다. 단단해서 이빨로 자르고 한참 오물거려야 되는 건 빼고, 너무 물이 많아서 먹고 나면 뱃속이 출렁대는 것도 빼고, 이것저것 따져 고르는 것은 히야시 츄-카((冷やし中華). 한국말로 하면 '차가운 중화면' 쯤 된다.


노란 면 위에 초록초록하고 물기가 번들거리는 오이채. 샛노랗게 얇게 잘라 구운 계란. 빨간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하는 토마토. 오이와 깔 맞춰 얇게 자른 햄.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진 번들거리는 갈색 소스.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을 기억하는 때문일 것이다. 서둘러 젓가락을 놀려 소스와 위에 얹힌 고명들을 섞는다. 톡 쏘는 새콤한 향이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곁들여 먹는 노란 겨자와의 콜라보는 또 어떻고. 달큼하면서 질리지 않게 시큰한 맛에 코 끝 찡한 맛이 합쳐지니 멈출 수가 없다. 만들기는 또 얼마나 간단한지. 면을 삶아 야채 몇 가지를 올리고 소스를 들이부으면 끝이다. 


매미가 사방에서 울어대서 귀가 터질 것 같던 날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보던 티브이에 히야시츄-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티브이에 집중했다. 하필 먹고 싶어 찾아 헤매는 내용이었다. 티브이 속 인물들이 침을 흘리며 집착할수록 아이들의 기분이 히야시츄-카가 되었다.


"히야시츄-카 먹고 싶어!"


당연하게도 첫째에게서 먹고 싶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곁눈으로 흘끗 본 시계는 이미 점심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배꼽시계가 울릴 때도 됐지. 급하게 확인한 냉장고 속에 히야시츄-카는 당연히 없었다. 필요 없을 때는 냉장고 한쪽 구석에서 쪼그라져가는 오이도 토마토도. 나가기가 싫어 다른 음식으로 꼬셔보려 했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밖은 햇빛이 지글지글 내리쬐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아스팔트가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내가 나가기를 망설이는 사이 아이들은 히야시츄-카만 외쳐댔다.


아. 어쩌겠는가. 먹고 싶다는데 다녀와야지.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장바구니를 꼭 쥐고 열심히 뛰었다. 햇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이라면 사이사이를 달리고 싶었다. 여전한 코시국으로 하고 있는 마스크 속으로 뜨거운 김이 모여들었다. 숨이 막혔다. 


'내 이번엔 냉장고에 쟁여 놓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놈의 히야시츄-카를 바구니에 담았다. 넉넉하게. 거기다 오이와 토마토까지.


서둘러 집에 돌아와 불 앞에 섰다. 앉을 여유도 없었지만 요리가 완성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이 풀풀 나는 몸이 다시 덥혀지는 일도 없었다. 면을 끓이고 찬물에 씻으면서는 시원한 물에 젖는 손이 기분 좋았다. 배고파 아우성치는 아이들과 더워서 뜨거운 것이 지긋지긋해지는 날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우린 모두 츄룹츄룹 소리를 내며 젓가락을 놀렸다. 먹는 입과 뱃속이 점점 시원해졌다. 아이들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나갔다 온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냉장고 속에 고이 모셔 놓은 히야시츄-카까지 생각하니 마음까지 든든했다.


그러나 역시 약간 부족한 면이 있어야 좋아하는 마음도 계속되는 모양이다. 냉장고 속에서 꺼내주길 바라며 존재감을 뿜뿜 뿜어대던 히야시츄-카는 아무도 원하는 이가 없었다.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없는 것이 먹고 싶어진 탓에 더더욱 손이 가지 않았다. 결국 한 봉지의 2인분이 들어있는 히야시츄-카 두 봉지는 전부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상미기한을 코 앞에 두었을 때의 일이다.


쟁여두고 먹으면 좋겠다던 생각은 더위에 찌든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오니 평일에는 찾을 일이 없었다.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는 너무 어려서 맛을 모르는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혼자 먹는 히야시츄-카는 알 수 없는 맛이었다. 더우면 그렇게 생각이 나고 그때마다 군침이 돌았는데 거짓말 같았다. 차갑고 신맛 가득한 맛에 식초를 한 사발 마시기라도 한 듯 입 안이 뽀득거렸다. 빨리 없앤다고 한 번에 많이 먹어서였을까. 소화까지 잘 되지 않아 한동안 고생했다. 덕분에 질려서인지 슈퍼에서 보아도 손이 가지 않았다.


웃긴 건 덥고 뜨거운 날 여전히 노랗고 새콤달콤한 면발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좋다고 잔뜩 사다 놓지 않는다는 것? 


혼자 보다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고스럽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사 와서 해 먹었을 때. 그 뒤의 시원함과 개운함을 알았다. 적당히 아쉬웠을 때 다음에 또 먹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알았다.


먹고 나서 캬- 하고 외치며 더 먹고 싶다는 말을 하는 순간까지도 히야시츄-카의 맛임을. 이제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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