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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29. 2022

여름엔 별을 먹는다.

오쿠라

"오늘 점심에 별님 먹었어."



어느 날, 집에 와서 함께 점심을 먹던 네살난 조카딸이 하는 이야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별사탕' 이라고 불리는 색색의 달콤한 설탕과자를 디저트로라도 먹었나 생각했다. 시엄마의 그런 것도 먹을 줄 아냐는 말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오쿠라' 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오쿠라는 음식점에나 가야 먹는 미끄덩한 식재료의 하나일뿐이었다. 자른 단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별모양을 하고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오쿠라 히타시(オクラ浸し) : 데친오쿠라 + 쯔유 혹은 간장 + 가쓰오부시



"와! 별님이다!"



한쪽에 데쳐서 잘라놓은 오쿠라를 보고 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외쳤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관심이 없다고 제대로 보지 않아서 뭔지도 모르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좋아하건 말건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별모양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을 보며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연히 본 테레비 광고에서 오쿠라는 영어로도 '오쿠라' 라고 한다는 것을 듣고 얼마나 맛있으면 미국에까지 건너가서 생김새도 문화도 다른 외국인들에게 먹혔나 신기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일본에서 영어명인 'okra' 에서 이름을 따 왔단다. 게다가 원산지는 아프리카였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함께 슈퍼에서 오쿠라가 보이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됨을 느낀다.



붉은 것, 연한 초록빛의 것, 진한 초록빛의 것, 공통점은 다 맛있다는 것?



언뜻보면 고추같이 생겼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슈퍼에서 오쿠라를 발견하고 고추인줄 알고 반가움에 덥썩 집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추처럼 표면이 맨질맨질 하지도 않고 꼭지가 살짝만 비틀면 똑 떨어질 것처럼 달려있지도 않다. 꼭지와 일체화 된 모습에 부들부들해보이는 오쿠라는 자세히 보면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이 솜털이 자잘해서 그냥 먹어도 될 것 같지만 남겨두고 먹으면 입 안이 꺼끌꺼끌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은근 신경쓰인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새끼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나면 손을 쓸 때 마다 '내 새끼 손가락이 저기 있어' 하고 느껴지는 것 처럼 말이다. 처음엔 그런가보다 하고 먹던 나도 이제는 소금을 묻혀 도마위에서 굴려대는 여유를 부린다. 제대로 굴릴 줄 몰라 손바닥에 잔가시가 박힌 것 마냥 따끔거려서 요리를 하다말도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가보다 넘어갈 줄도 안다.


먹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튀기면 가볍게 '와삭' 하고 씹히는 것이 입 안에서 별이 톡톡 튀어오르는 것 같고 데치거나 구우면 또 다른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보통 데쳐서 먹기 좋게 잘라 간단하게 쯔유(혹은 간장)와 가쓰오부시를 뿌려 먹는다. 반찬이 좀 부족한데 싶을 때 야채실을 뒤지다가 '나 여깄어.' 하는 오쿠라를 발견할 때는 땡잡은 느낌이다. 사실 내가 오쿠라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둘째가 뱃속에서 한창 꼬물거릴무렵이었다. 첫째 때는 토마토만 먹으면 속이 다 시원한 것이 기분까지 좋아져서 냉장고에 잔뜩 넣어놓고 달고 살았다. 하지만 매번 같을 수는 없는건지 둘째 때는 입덧으로 토마토를 비롯해 음식을 먹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가끔 가는 회전초밥집에서 임신중이라고 날 생선을 피해 주문한 것 중에 오쿠라와 오징어, 메카부(めかぶ)라 불리는 미역뿌리부분을 잘게 자른 것이 올려져 있는 군함이 섞여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집어 입에 넣은 순간 난 '유레카' 를 외쳤다. 멀미하는 것처럼 답답하던 입과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두접시나 연달아 먹은 그날 이후 오쿠라는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어떤 맛인지 궁금한가?


한 입 깨물면 잘 말린 곶감을 씹을 때 처럼 쫀득하게 씹힌다. 그렇다고 이빨에 쩍쩍 달라붙지는 않는다. 마를 먹어봤다면 한층 더 상상하기가 쉽다. 씹어낸 오쿠라가 입안에서 미끄러지면서 흩어지다가 탱글한 씨가 톡 씹히는 맛이 은근히 중독성있다. 특별히 '이 맛이야!' 하는 맛은 없지만 목구멍으로 넘길 때에 입안을 깔끔하게 씻겨주는 느낌이다. 오이를 먹고 난 뒤의 상쾌함과 닮은 구석이 있다.


아이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쿠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별님' 의 모습을 한 야채로 기억되고 있지만 언젠가 '여름에 먹는 맛있는 별님' 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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