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상태가 오면 문제 해결은 어떻게 하나?
아침에 알람 소리 끄고 휴대폰 화면에 뜬 알림 하나를 보자마자 잠이 확 깼다.
- 287만 원이 출금되었습니다 -
'???? 내 계좌가 털렸나??? 꿈인가????'
통장 어플을 확인해 보니 잔액 0원이 명확히 적혀있었다.
그렇게 빠져나갈 금액을 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오류겠지. 이체된 곳을 확인해 보자. 카드 대금 납부구나. 카드 결제금액을 보자. 9월 청구 금액 47만 원이네..
'시발 뭐지?'
침대에 걸터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8월 말에 440만 원 결제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다. 아 그거겠구나. 거기서 취소를 아직도 안 해놓은 건가?? 카드 결제 내역 확인해 보자.
-결제 취소 완료-
하아... 뭐지 진짜. 아! 결제가 8월 말이고, 취소가 9월 초라서 9월 청구에 잡힌 건가.. 엥? 그러면 9월 청구금액에 왜 47만 원만 적혀있는 거야?!!!
'카드 결제일별 이용기간'을 검색해 보자. 23일 날 카드 대금이 결제된 건 전월 10일~당월 9일까지 금액이 나가는 거구나. 그럼 8월 말 결제하고 9월 초 취소된 거면 안 빠져야 되는 게 맞지 않나??
이건 오류겠구나. 빨리 돌려달라 하자. 아니면 진짜 내 통장이 털린 건가..??
고객 센터에 확인해 보는 방법뿐이겠구나. 지금 시간이... 8시 17분이네... 오늘 할 일을 정리하다가 9시에 확인하면 되겠다.
하지만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어차피 일에 집중도 안될 거 좀 쉬자.
9시 땡 하자마자 기업은행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카드 관련 문의했다. 23일 카드 결제는 1일~말일까지 금액에 대해 청구되는 날짜라는 답변이었다.
후아.. 일단 오류는 아니구나. 근데 10월 23일까지 현금 나가야 할 일들은 어쩌지?
일단 노란 우산 대출, 비상금, 형과 가족 계모임 통장 잔액, 형한테 돌려받을 돈까지 모두 합치니 350만 원이다. [아직 남은 카드 대금 200만 원]+[다음 달 23일까지 필수로 빠질 금액은 150만 원] = [칼같이 딱 맞는 금액]이다. 일단 한숨 돌렸다.
---여기까지가 아침 7시 30분에 눈 뜨고, 10시 30분 해결 완료된 순간까지의 의식 흐름이다.---
역대급 긴 폭염과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된 지 2일째로 날씨는 기가 막힌 날이었다.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날씨였지만 오전에 업무는 전혀 할 수 없었다.
매달 생존을 위한 최소금액을 겨우 채우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사업자 통장의 잔액 0원 알림은 청천벽력 같았다. 나의 1인 사업 종결을 알리는 알림 같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항상 대비하는 성격이지만 어떤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한채 당한 첫 위기였다. 위기 수습하느라 진이 다 빠져 30분 정도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었다. 다행이도 멘붕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시간은 없었다.
나는 위기가 오면 정신이 번뜩이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경험을 몇 번 겪어봤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문제 파악-원인 분석-해결 방안 탐색-실행' 순서로 해결한다. 나의 성격은 주변에서도 침착하다고 평가해준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어쩌겠나? 해결 안 하면 피해는 내가 입는다. 화낸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면 해결만 미뤄질 뿐이다.(나는 이런 나의 사고방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이성적 판단 짜릿해.)
당연한 소리라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땐 문제가 명확하고, 해결 방안도 쉽게 보인다. 이미 해결된 상황이며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보통은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 동물적인 생존 본능에 의해 인간의 뇌는 사고를 멈춘다. 뱀을 마주한 쥐가 도망치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 속 등장인물으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장면을 보면서 '좀 움직여라!' 욕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위기를 마주해본 사람은 안다. 그때는 찰나의 순간에 판단하기도 어렵고, 오히려 꼼짝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머리가 굳는 느낌을 나도 겪어봤고, 대부분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거다. 예시로 들자면 평상시에 잘 풀리던 수학 문제가 시험 종료까지 2분 남은 시험장에선 안 풀린다. 남은 시간 동안 못 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더욱 커지면서 말이다.
그럼 어쩌냐고? 풀어야지 어쩌겠나. 시간을 멈출 수도 없고, 종료를 미뤄달라고 할 시간에 문제를 푸는 게 답이다. 둘 다 불가능한 일이니까.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지만 멘붕 오는 상황에선 그 당연한 사고방식대로 실행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한다.
어쩌겠어? 해결 안 하면 피 보는 건 난데.
문제를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해서, 해결 방안을 찾아 실행하자.
그럼에도 멘붕 오게 되면 어쩌냐고? 그냥 잠이나 자자.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우리 뇌가 갑작스러운 문제에 놀라서 기절한 상태라고 보면 되겠다. 멘붕 상태에서 어떡하지만 외친다고 아무것도 해결 안 된다. 그래도 멘붕은 올 거고 문제에 집중하지 못할 거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해결할 정신이 돌아올 거다. 미래의 나 자신이 알아서 해준다.
이걸로 끝이면 섭하겠지. 결국 해결책이 없는거니까. 안타깝게도 없긴하다.
근데 개인적인 경험으론 위기에 빠른 이성적 대응하는 능력은 반복된 훈련으로 가질 수 있다. 앞에서 말했던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왜 생겼지?' 이거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다면 해결책까지 자연스레 나오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위기가 오면 쉽게 생각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를 인지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원하는 속도만큼 아니라도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순간이 온다. 그런 경험은 쌓이면서 속도가 빨라질거라 믿는다. 0.1초라도 빨라지겠지.
문제가 생기면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 둘 중 전자가 무조건 문제 해결 사고방식을 반드시 가지게 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