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 살, 조울증 승무원의 삶

by 미라쌤

과거, 나의 삶은 그야말로 1년 365일 동안 매일 생리를 하는 기분이었다. 생리를 하는 기분을 표현하자면, 생리 시작 2주 전부터 동물원 원숭이가 단체로 미친 것처럼 내 감정이 날뛴다. 우에엑 꺄갹. 원숭이가 단체로 약을 먹고 미친 듯이 날뛴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싫어진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은 물론 길가에 서 있는 전봇대조차 싫어진다.


그러다 생리 1일 차가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갑자기 온화해진다. 봉사단체 포스터에서 본 듯한 여배우 김혜자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가 지어진다. 마음속 무한한 평화로 오염된 똥물도 받아주는 넓은 바다가 된다. 하루 뒤인 생리 2일 차가 되면 내 자궁 안에 공룡이 나타나 마구 돌아다니는 것처럼 아프다. 허리가 뒤틀리고 골반이 빠질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괜찮다가 아프다가 쉴 새 없이 반복된다. 나의 과거는 매일 생리하는 것처럼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


천국에서 살던 서른 살의 삶

서른 살, 승무원으로 근무한 지 4년 차였다. 외국 계 항공사에서 일하던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 있었다. 해외 생활, 모든 것은 만족스러웠다. 결혼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없고, 만나자마자 나이가 몇이냐 라고 묻는 무례함도 여기엔 없었다. 자유롭게 내 생활을 즐기며 여행도 맘껏 할 수 있는 나에겐 그곳이 천국과도 같았다. 동남아를 가 본 한국 사람들은 공감할 테지만 그들은 특히 하얀 얼굴을 좋아한다. 그래서 외출하면 오랑찬틱! (예쁜 사람)이라는 소리에 우월함을 매일 느끼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최고 황금기라고 할 정도로 나는 물질적으로 넘치는 생활을 했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였기에 청소부와 운전기사를 쓸 수 있었다. 혼자 살면서 내 손으로 화장실 청소 한 번 안 해도 늘 집은 깔끔했고 옷도 칼각으로 잡혀 있었다. 일반 회사원 월급에 버금가는 월세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도심 가장 한가운데 위치한 고급 아파트였다. 번쩍번쩍한 로비가 있고 헬스장, 수영장, 사우나가 있었다. 7층에는 공원과 조깅 트랙도 있었다. 쉬는 날이면 마사지를 받고, 손톱과 발톱을 꾸미고 쇼핑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 걸어 다닐 일이 많이 없었기에 10센티 넘는 하이힐을 신고 매일 예쁘게 치장하고 다녔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여자처럼 부족한 것 없이 살았다.


하지만 화려한 겉과는 다르게 내 속은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와인에 중독되었다. 자카르타는 소주가 한 병에 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비싼 편이었다.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인의 맛을 알아버렸다. 저녁식사 때 음식과 곁들여 마시던 한두 잔의 와인에 어느새 중독되었다. 혼자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적적함을 달래주는 와인이 좋았다. 어렸을 땐 소주만 마시던 내가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면 티브이에 나오는 화려한 여배우가 된 것 같은 분위기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쉬는 날마다 와인을 마시다 보니, 점점 취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날들이었다. 술에 취하면 해롱댔다. 평소에 우울했던 마음이 더욱 크게 일어나 갑자기 절망과 좌절에 빠져들었다. 마치 그건 조울증 증상 같았다. 매일 생리하는 것처럼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나의 과거는 조울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울증은 매번 우울하다 보니 본인이 그 심각성을 알게 되는데, 조울증은 행복한 기분과 우울증을 왔다 갔다 하니 본인이 자신의 상태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인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와인에 더 쉽게 중독된 것 같다. 친구들과 있을 땐 조증으로 활발하게 지내다가 집에 혼자 있으면 그 고독함과 우울함에 견딜 수 없었기에 와인으로 우울함을 채우기 바빴다.


와인으로 달래던 나의 조울증

쉬는 날 저녁이 되면 맛있는 음식을 차려 어김없이 술을 마신다. 반 병만 마셔야지 했던 와인을 절제 없이 혼자서 다 마셔버린다. 처음 몇 잔에는 몽롱해지는 정신에 기분이 좋다가 술에 취해 한 순간에 우울해진다. 내가 살던 57층의 아파트 난간에 매달렸다. 내 눈앞에 보이는 도시의 화려함에 압도된다.


금색 불빛과 높은 빌딩들이 어우러진 밤의 화려함을 보면서 나만 홀로 이 고통을 겪는 것 같았다. 좌절감에 고개를 떨궈 아래를 바라보니 수영장이 보였다. 나는 마구 눈물을 흘렸다. 내 눈물로 저 수영장을 더 가득 메울 수 있을 것처럼 울어댔다. 혼자라는 사실에 너무도 외로웠다. 누가 봐도 멋진 삶을 즐기고 있는데 내 가슴은 답답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 수영장에 떨어지면 편안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올라온다. 나도 이 도시처럼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속은 텅 비었을까. 원인을 알 수 없어 그 공허함과 답답함이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어느새 난간에 내 몸이 빨래처럼 걸려 있다. 바람 빠진 주유소 풍선 같았다. 힘없는 양 팔은 축 늘어뜨린 채 수영장을 향하고 나의 다리는 위태롭게 발코니에 걸쳐져 있었다. 잘못하다 미끄러지면 바로 떨어질 참이었다. 아니 그냥 떨어지고 싶었다.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아래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불쌍하고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의 화려함에 비해 텅 비어 있는 나의 마음이 대비되어 더 크게 우울했다. 그냥 놓고 싶었다.


나는 소리 내며 펑펑 울다가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경련이 일어났다. 콧물과 눈물은 서로 뒤섞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겨우 정신을 붙잡고 침대로 기어가 쭈그려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무렇지 않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누가 봐도 부러운 삶을 살았던 나는 왜 죽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때 난 감정의 노예였던 것 같다.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서른 살에 처음 올라온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정확히 14살, 나의 삶에 우울하고 어둡던 마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