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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밍웨이 Dec 04. 2023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퇴사자 아빠

2021년 9월 퇴사를 했다.

아이가 5살 때였다.


그로부터 2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 아이는 7살이 되었고 퇴사 후 2년이란 시간 동안 퇴사를 한 것이 잘한 것이냐에 대한 물음에 경제적인 성공으로 보면 잘한 것은 아니지만 딸과의 시간으로만 놓고 보면 정말 정말 잘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퇴사 후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작업은 하지만 우리 집안의 주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주부로써 부업을 하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의 주 업무는 주부이다.


하루 루틴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에 기상해서 씻고 아내 출근 준비를 도와주고 아내가 출근 준비 할 동안 아내 영양제들을 챙기고 딸을 깨운다.

딸도 씻기고 옷 입히고 아침 기분을 좀 달래주다 보면 아내가 출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아내 출근 전 따끈하게 커피 한잔 텀블러에 타서 현관에 졸린 눈의 딸과 함께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 나서 딸은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그동안 나는 딸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식사는 어린이집 아침 간식에 따라 다르게 준비하는데 어린이집 아침간식이 과일류이면 탄수화물이 들어간 아침식사를 집에서 먹이고 어린이집 간식이 죽류가 나오면 집에서 아침식사는 과일로 준비를 한다.

아침 먹이고 9시쯤 등원 채비를 하고 나선다.

차량으로 5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어린이집이 있다.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고 난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들어오면서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들어올 때도 있다.

집에 귀가 후 일단 집안 정리를 시작한다.

침대 정리 후 페브리즈도 뿌리고 아이방정리 아이가 먹고 난 식탁 정리 아이가 어제 놀다가 정리 못한 장난감이나 만들기 재료 정리, 청소기 한 바퀴 돌고 어제 돌려놓은 식기세척기 내에 설거지 거리를 정리한다.

유일하게 내 방 겸 작업실은 정리하지 않는다. 귀찮다.

정리 후 커피 한잔 뽑아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는다.

점심 같은 경우 보통 전날 저녁에 먹던 음식을 마저 먹든지 아니면 라면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 먹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커피 한잔 뽑고 작업을 하다가 오후 3시 반쯤 어린이 집으로 나선다.

10분 정도 차에서 좀 쉬고 아이를 하원시키러 간다.

하원을 하고 나서 요일마다 아이가 다니는 것들을 보내고 기다리고 픽업하고 이동하고 다시 보내고를 반복한다.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 준비동안 아이를 살살 달래서 숙제를 시킨다.

저녁을 먹고 나서 절거리 정리를 하고 아이와 좀 놀아주고 이부자리를 정리해 주고 재운다.


이게 보통 하루의 일과이다.


단순한 루틴 속에 바쁨이 서려있는 그런 아이러니한 일정이다.

아침 일정에서 내가 하는 것들은 다 단순하다. 정리 청소 설거지 픽업 등등

그러나 단순하지만..... 노동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이고 그걸 일한다고 말하긴 뭐 하지만 시간을 그만큼 써야 하고 필수로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그런 모순적인 일거리들이다.


퇴사한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좋은 건 집에 한 명이 붙박이로 있으니 가정이 매우 안정적으로 된 게 정말 좋았다. 맞벌이할 때는 서로 불안정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붙박이로 한 명이 지키고 있으니 한 명은 그래도 가정일과 육아로부터 여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것은 아이가 6살 때부터였다.

나도 잘 몰랐던 것들인데 5살 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어린이집 집 어린이집 이렇게 다니고 있었다.

6살 어떤 날 내가 어린이집 하원을 시키러 갔는데 많은 수의 아이들이 없었다.

6살 같은 반 아이들이 많이 없는 것이 좀 이상해서 선생님께 물어봤는데 6살 때부터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였다.

6살의 아이들은 그때부터 사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욕심에 따라 그 강도는 0일 수도 100일 수도 있다.

우리 부부는 국어 영어 수학 말고 머리 좋아지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6살 때 종이접기 공방에 데려가서 매주마다 수업을 받게 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옆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피아노를 다니게 되었다.

운이 좋게 우리 아파트 같은 통로에 영어 교습소가 있어서 거기도 다니게 되었다.

7살이 되어가며 위에 것들은 쭉 하고 있었고 그 중간마다 영어발레, 독서논술도 했지만 아이가 벌써부터 힘들어하는 게 싫던 나는 과감하게 그런 것들은 포기했다.


퇴사한 아빠가 되고 나서 좋았던 건 주양육자가 나였다는 것이다.

보통 아빠들은 아이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 수 있다. 아이들이 본인들이 어린이집에나 학원 같은 데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어 대지 않기 때문에 주제의 공유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린이집에서 뭐 재미난 일 있었니?"라고 물어보면 ,

"기억 안 나요"라고 말하거나 자세히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퇴사자 아빠가 아이를 하원시킬 때 차에 태우고 출발하면 계속 자랑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말을 잘하게 된다.


"아빠 잠깐 차 좀 멈춰봐, 이거 오늘 내가 만든 거다 친구가 이거 해주고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아빠 오늘 누구랑 누구랑 싸웠는데 이런 일 저런 일로 싸웠어"

"오늘 어떤 친구랑 놀고 있었는데 누가 뭘 안 해줘서 삐져서 안 놀다가 어떤 장난을 쳐서 다시 친해지고....."


여러 가지 말들을 묻지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말한다.


'내가 딸의 일상을 이렇게 듣는 순간이 오는구나'


딸의 일상을 듣고 있으면 잠시 행복이 몰려온다.


마치 우리가 힘들게 일하고 나서 주말이나 특별한 날 비싼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곳을 가서 여유를 부릴 때

'이래서 돈벌지'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거의 그런 느낌과 비슷하게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딸아이의 일상을 듣고 있으면 그런 힐링이 되면서 '이맛'에 빠지게 된다.

그러고 나서 한편으론 아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도 나와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지금처럼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물론 엄마와는 한 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같은 여자라 잘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아빠가 이렇게 아이와 소통하는 건 내가 생각하기 위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퇴사한 아빠의 장점 중 하나는 아이의 아침컨디션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을 때, 가끔 여행을 다녀와서 늦게 집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등원할 때 갑자기 열이 나서 등원 중 병원을 가고 집에를 가야 할 때 이럴 때 한 명이 집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당황해하지 않고 그냥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아침에 아프다? 그럼 병원을 갔다가 가면 된다. 아이가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다? 더 재우고 천천히 등원시키면 된다.

단순하다. 그리고 일하러 가는 사람은 솔직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한 명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정말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퇴사자 아빠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걱정이 많을 수는 있지만 딸의 사랑을 느끼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고 좋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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