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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밍웨이 Dec 11. 2023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아빠 T야?

이제까지 나의 인생이 그래서 그런 건지 타고난 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MBTI 중 T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객관화된 시선으로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고 갈팡질팡 하는 누군가에게는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길잡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들도 많이 겪어보니 내가 결정한 일들에 대해선 다 이유가 있고 내 예상대로 잘 흘러가게 되었다.

그래서 T라는 성격이 나는 참 좋았다. 특별히 공감을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 그냥 공감 유형인 F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거 같다.

가끔 아내와 이야기할 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라는 말정도? 주제를 이야기하면 공감하면 될 문제를 그냥 그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아이가 좀 크기 전까지는 이런 나의 성격이 문제가 된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이는 어느덧 7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7살

7살 요 1년 동안 아이는 정말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감정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하게 되는데 특히 딸 같은 경우 자기에게 공감을 요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T 아빠는 전혀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하고 늘 이제까지 살아왔던 대로 말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블루베리주스를 먹다가 자기가 아끼는 티셔츠에 흘렸다.

아이는 슬퍼한다. 아빠는 말한다.

" 티셔츠는 빨면 되니까 벗고 다른 걸로 갈아입어. 흘린 거 물티슈로 닦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확실하게 주고 지시해서 아빠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딸은 속상해서 울고 티셔츠는 계속 입고 있는다.

자기 말대로 하지 않는 딸을 보며 아빠는 답답해하며 다시 말한다.

"울어봤자 티셔츠는 깨끗해지지 않아 빨리 티셔츠 벗고 다른 걸로 갈아입어. 흘린 거 물티슈로 닦고 우리 이제 어린이집 가야 돼"

다시 아빠는 빠릿빠릿한 자신의 계획적이고 명쾌한 행동 처신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딸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에게 화살이 돌려진다.

"아빠 미워"

객관적으로 블루베리주스를 먹다가 쏟은 것도 아이 잘못이고 옷을 안 갈아입는 것도 아이잘못이고 흘린걸 안 닦는 것도 아이 잘못이고 그러다 등원시간에 늦는 거도 아이 잘못인데 왜 아이는 날 미워할까

아빠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아빠를 미워하는 것일까?


난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다.

장난을 너무 심하게 처서 아이가 울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 달래주는 게 맞는 건데 이건 T와 는 별개로 난 잘 안 달래주고 그 우는 모습을 보며 귀여워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이게 통했을지 모르지만 7살짜리에겐 통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에게 장난을 차 놓고 울렸으면서 사과와 위로를 하지 않는 아빠는 그저 복수의 대상 또는 증오의 대상으로 순식간이 바뀌게 된다.

뒤늦게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게 되면 또 귀신같이 진심이 담기지 않은 걸 느끼고 슬퍼한다.

그제야 나는 미안해지고 위로를 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이는 공감하지 못한 아빠에게 실망하여 실컷 슬퍼하고 울고 하다가 엄마가 안아주고 위로를 해주고 설명을 해야 그 슬픔 실망 증오의 마음이 사그라든다.

난 아내가 있어야 사과를 할 수 있었고 아내를 통해 아이의 감정에 공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내가 힘들게 쌓아놨던 신뢰와 우정의 적립이 깨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서먹한 관계가 되는 상황들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경우가 많아질 경우 7살이라 '아빠 미워' 정도로 끝나는데 13살 , 17살, 20살 되면 나랑 그냥 멀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의 상상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나는 나중에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고 나서 내 팔짱을 끼며 '아빠 우리 식구 오늘 술 한잔 어때요?'라는 행복한 제안을 상상하곤 했는데 내가 이렇게 내 성격대로 아이에게 다가간다면 절대 친근한 친구 이미지의 아빠는 될 수 없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많이 짐에 따라 그 생각은 점점 확신이 되어가고 어느 순간 혼자 생각했다.


'성격 개조가 필요해. 나도 F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아내의 자상한 공감능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말에서 결정된다 라는 책도 읽어보았다.

광고 아님 내돈내산입니다

'F형 딸에게는 F형 아빠가 필요하다'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아내가 딸에게 대하는 행동과 말을 좀 배우려고 노력했고 책에서 나온 예제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맨 처음 딸은 내가 자상하게 대하면 말했다.

"아빠 왜 이래?"

"왜 그러냐"

딸이 그런 반응을 보이면 나도 모르게 좀 머쓱해지기도 하고 아니면 나도 모르게 툭툭 거리며 받아칠 경우도 있지만 차근차근 꾸준히 해나갔다.

지금도 따듯하게 공감하기 위한 말투로 변경하려고 노력 중이다.


성격개조를 하는 수준인데 할 말을 다 못 하니 가슴에 사리가 쌓이는 느낌이 몇 번 들기는 한다.

그리고 소녀소녀한 따듯한 감성으로 대화를 하려 하다 보니 설명하지 못할 그 가려운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이 버티기 힘든 그런 느낌들이 밀려들어와 가끔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좋아할 수 있는 아빠가 된다라는 점에서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성격 개조는 힘들다.

하지만 친구 같은 아빠로서 우리 식구들 같이 술 한잔 행복하게 걸치수 있는 자리에 날 껴줄 수 있다면 이까짓 성격개조쯤이야 몇 번이고 할 것이다.

아직 나는 완전한 공감형 아빠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10년 20년 노력하다 보면 몸에 베이고 우리 딸에게만큼은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로 기억에 남게 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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