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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밍웨이 Nov 27. 2023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직장인 아빠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맞벌이하는 분들 중 주 양육자인 어머니들을 존경한다.

물론 가정 내 한 명이 주부를 하며 전담으로 양육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맞벌이 같은 경우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늦게 데리러 와야 하는 부분에 대한 미안함과 가슴아픔이 항상 들어 슬퍼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나는 청주-서울 출퇴근을 7년간 하였다.

보통 출근을 위해 4시 반 정도 일어나 씻고 아침 차려서 간단히 먹고 인터넷이나 책 좀 읽다가 5시 40분에 집에서 나선다. 15분쯤 걸어가면 KTX역이 있고 좀 더 기다렸다가 6시 10분 KTX를 타고 서울에 향했다.

보통 출근길은 자유석 자리가 여유롭여서 앉아가는 편이다. 앉아서 1시간 정도 눈을 붙인다.

자고 일어나면 서울역에 도착을 한다.

서울역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오면 바로 일어나서 특정칸까지 걸어가서 문 앞에 대기를 하고 있다.

잠시라도 늦으면 벌써 다른 직장인들이 문 앞에 내리기 위해 줄을 길게 서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직장인들은 KTX문이 열리자마자 서울역 KTX 플랫폼에 있는 긴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계속 뛴다.

서울역을 지나 지하철 4호선 있는 데까지 계속 뛴다.

뛰어야 시간에 맞게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작역 까지 가서 다시 뛴다. 9호선이 나타날 때까지 뛴다.

9호선을 타고 다시 언주역까지 간다.

언주역에서 보통 때는 15분 정도 걸어서 회사까지 간다.

이렇게 5시 40분에 출발한 나는 회사에 8시 10분쯤 도착한다.

가끔 8-5 유연근무를 하는 날은 언주역에서 다시 회사까지 뛴다.

그럼 5~7분 사이 도착 해서 8시쯤 도착을 한다.


이게 7년간 출근할 때의 보통 일상이었다.


나는 보통 칼퇴를 했다.

눈치는 보이지만 그만큼 스스로 일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꿇리는 거 없이 그냥 철면피 깔고 퇴근을 한다.

내가 칼퇴를 하는 이유? 내가 칼퇴를 해야 아내가 빨리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아내는 육아휴직 1년을 갖고 복직을 바로 한 케이스였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나 복직을 했을 때나 아이를 케어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내가 빨리 곁에 있고 육아에 참전해야 했기 때문에 칼퇴를 무조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아이와 평일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퇴근 후부터 자기 전까지 시간이었다.


보통 평일에는 일과를 빡빡하게 마친 후 보통 외근을 갔다가 회사 복귀 후 6시 1~2분 정도 바로 칼퇴를 한다.

회사에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 5층에서 1층까지 뛰어 내려간다.

그리고 아침에 왔던 길을 다시 뛰어 언주역까지 지하철 9호선을 타러 간다.

뛰어가면 잠시 후 지하철이 온다.

뛰어가는 길에 지하철이 온다는 메시지가 나오면 더욱 힘내서 더 빨리 뛴다.

동작역에서 다시 뛰어 4호선을 타고 서울역을 간다.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그래야 6시 40분 기차를 탈 수 있다.

만약 늦으면 6시 57분기차를 타야 한다. 하루가 너무 힘들고 지친 날은 뛸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6시 57분기차를 타고 왔다.

이렇게 오송역 도착 후 집까지 가면 보통 7시 50분~8시 정도 집에 도착하였다.

칼퇴를 한경우 이렇게 도착하는 것이다.


하루가 고단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그 중간 일과가 일 년 일 년 힘들기는 했지만 딸 웃음이라는 피로회복제 덕분에 그때의 고단함을 단번에 날릴 수 있었다.


집에 와서 밥만 먹어도 8시 반이고 설거지만 다해서 9시이다. 아이와 놀고 책 읽어주고 씻기다 보면 10시가 되어 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이 1시간.....


난 그 1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아이와 못 나눈 우정을 쌓아야 했고 아빠의 역할을 다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항상 이 소중한 1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아빠로서 사랑을 줄 수만은 없었다.

가끔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날, 나는 아이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나의 기분 안 좋고 힘듦의 부정적 느낌이 아이에게 닿는 것 같아 그런 날에는 거리를 두었다.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생명체에게 세상의 때 묻은 단면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힘듦을 아직 알려주고 싶지 않았고 슬픔을 알려주기 싫었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내가 막는다고 해서 그런 감정들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세상에 그런 시련을 주는 것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나서서 딸에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가끔 그런 날들은 그 소중한 1시간을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 거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더욱 슬퍼했던 게 기억이 난다.


이렇게 평일이 지나고 주말이면 보통 겨울 빼고는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했다. 집에서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에 장난감도 엄청 많지도 않을뿐더러 아이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겪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 부부도 둘 다 직장인이기에 아이에게 주말에 시간과 돈을 쏟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주말에 거의 쉬지 않고 밖에서 놀고 여행 다니다가 다음 월요일 평일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였다.

이렇게 아이를 갖고 평일 주말 보낸 지 5년... 점점 몸에서 피곤함이 누적되는 게 느껴지고 아픈 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 같은 경우 아이가 아플 때가 항상 고민이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의 개인일정에 맞추어 계획에 맞게 휴가를 늘 써왔다면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아이가 언제 아플지 모르기 때문에 휴가도 항상 남겨둬야 한다.

아이는 랜덤인 날짜에 아프다. 계획적으로 아프지 않고 그냥 랜덤한날 아프다.

당장 아플 수도 있고 며칠 시름시름 아플 수도 있다.

이럴 때 물론 근처에 할아버지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의 부모님께서 봐주시면 한결 편하긴 하다.

물론 신경 안 쓰일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내 출근 퇴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그 부분은 마음이 편할 테다.

아이 병원과 상태, 식사 이런 것들만 신경 쓰면 되고 다시 퇴근 후 아이를 내가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이 그러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혹 내가 휴가를 쓸 수도 있지만 나보다 보통 아내가 갑작스럽게 휴가를 쓴 적도 많다.

직장 생활을 해봐서 알겠지만 그날 아침에 출근 전 직장 상사에게 휴가를 쓴다고 말하고 당일 쓰는 건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이를 위한 휴가라 트여있는 직장 상사 거나 같은 처지의 직장상사라면 이해를 해주겠지만 같은 처지가 아닌 그러니까 직장상사가 아이가 없거나 외벌이 거나 아니면 아이가 벌써 다 커서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갑자기 휴가를 쓰면 안 좋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좀 더 자유롭게 휴가들을 쓸 수 있어서 좋지만 지금부터 6~7년 전에는 안 좋게 보는 경우들이 더 많았다.

아내에게 이런 힘든 상황을 겪게 해서 항상 미안했다.


이렇게 직장인 부모의 가장 힘든 부분은 갑작스러운 아이케어로 인해 휴가를 쓰는 경우였는데 가장 힘든 때가 바로 코로나 시국이었다.

코로나가 덮치고 나서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코로나가 걸리고 코로나 초기 때는 코로나가 걸린 곳이 나오면 건물 전체가 셧다운 되는 그런 시기였다.

어린이집이 강제로 2주 정도 쉬고 다시 나오고 또 며칠 있다가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 또 2주 쉬기를 반복하였다. 2년 정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우리 부부는 휴가를 다 아이 케어하는데 소비를 하였다.

차라리 나도 코로나가 걸려서 회사에서 나오는 휴가를 받고 푹 쉬고 싶을 지경이었다.

운이 좋게 공동육아를 하게 돼서 맞벌이 부부 2집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휴가를 써서 그렇게 아이들을 돌봐 오며 버텼다. 아직도 그 집 부부와는 잘 지내고 있고 특히 그때 같이 돌본 그 집 부부의 딸은 거의 나의 세컨드딸로 지내오고 있다.


한 번은 아이가 놀다가 팔이 빠져서 응급실을 가야 했는데 아내가 바로 응급실로 갈 수가 없었다.

내가 최대한 빨리 집에 간다 하더라도 7시 50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차를 끌고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팔이 빠진 거라 의사 선생님이 조치를 취해주시니 금세 아이는 괜찮아졌다.

팔이 빠진 상태로 2시간 넘게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때 당시 집에 차가 2011년식 아반떼 MD였는데 급해 죽겠는데 액셀을 밟아도 차가 잘 나가지 못했다. 아이는 울고 집에 늦어 미안한 감정과 빨리 가고 응급실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차가 속도가 나지 않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고 차가 원망스러웠다.

이 사건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차를 더 빨리 속도가 나는 차로 바꾸게 되었다.


이렇게 직장인 아빠는 좋은 아빠가 되기가 너무 힘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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