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게 되다
나와 나의 아내는 20살 때 만났다.
잠깐 떨어져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29살에 우린 결혼을 하였다.
오랜 시간 서로 착 붙어 있었고 너무나도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왔다.
결혼하면서 우린 2세 계획도 함께 하게 되었고 대충 신혼 2년 차 때쯤 아이를 계획했다.
아이를 갖은 이유? 이유는 계획 세울 때 당시에는 따로 없었다. 그게 당연하고라고 생각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2세를 갖고 그렇게 살아간다.
내 주변도 모두 그렇다. 따로 2세를 갖는 이유를 생각해 보진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알콩달콩 신혼 1년을 지내고 2년 차에 우리가 계획한 대로 아이를 가질 무렵.
아이를 준비하려 하는데 그 생각지 않았던 이유가 생겨 버렸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서는 아니고 바로 나와 아내를 위한 결정 그리고 이유였다.
우린 서로 오래 같이 놀고 지내다 보니 거의 생활이 일정한 패턴이었다.
그렇다고 지루한 건 아니었지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특별해지지 않을 찰나 우리는 그렇게 2세를 갖게 되었다.
모든 게 다 계획적이었다.
미리 계획한 날짜에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는 일단 아기집이 너무 쪼그마해서 이게 임신인지 육안으로 분명하지 않아 피검사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피검사를 결과를 듣고 나서 임신인걸 알았다.
너무 행복했고 두근두근 거렸다.
나에게 벌어진 어떤 일들 중 가장 두근거리는 설렘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미래가 예상 불가였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통제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개체가 아니란 걸 알아서 그 랜덤 한 생명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것도 너무 궁금하고 설레었다.
내 인생에 앞으로 어떤 부분을 차지할지 모른 체 난 그저 설레어만 하고 아내가 갈수록 더 사랑스럽기만 하였다.
그렇게 양가 부모님들에게 알리기 전에 바로 설날이 찾아왔다.
설날 명절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큰아버지께서 우리 와이프에게 술 한잔 권하셨다.
그때 임신 4주 차였고 어른들은 임신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아직 알릴 수 없던 상황인지라 난 그녀를 대신해서 술잔을 거절하였다.
어른들 모두 황당해하였다. 그냥 몸이 안 좋다고 술잔을 단번에 거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몸조심을 해야 하는 것도 모자란데 술을 먹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가 임신한 동안 극진히 모시고 가만히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하던 직장은 계속 다녔다.
양가 부모님께 임신 소식을 전해 드렸을 때 모두 축하해 주셨고 축복의 대잔치였다.
정말 하루하루 기분이 좋은 날이었고 아직 새끼손가락 한마디 밖에 되지 않은 젤리곰만 한 태아일 때부터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뱃속아이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책도 읽어주고 최대한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다.
엄마가 기분이 좋아야 태아도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늘 아내를 웃기려고 노력했다.
임신기간이 가면서 아들이냐 딸이냐가 구분이 되는 시기가 되었다.
아들일까 딸일까? 이건 세상 모든 부모가 궁금해하는 사항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내 바람은 딸이었다.
왜냐?
내가 아들이니까 아들에 대해 자~~~ 알 알고 있었다.
딸만 있는 집들과 아들만 있는 집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것들을 통해 유추해 봤을 때, 나중에 크면 딸이 최고라고 느꼈다.
아들은 제사를 지내주고 그렇다 하지만 난 그냥 제사 안 지내 줘도 되고 나 살아 있을 때 나에게 팔짱을 끼며 소주 한잔 사달라고 어리광 부리는 딸을 원했다.
아내는 반대로 아들을 원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들이 뭔가 더 듬직하고 반대 성이라 끌려서 그런 것 같다.
아들, 딸 성별이 나오는데 딸이라고 알게 되었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인터넷에서 아기옷이나 용품을 볼 때도 여자아이, 귀여운 것, 이쁜 것만 찾아보게 되었다. 어떨지 너무 설레었고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다.
여자 아이를 키우며 드는 어려움이나 고충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아내와 나는 최선을 다해 각자의 자리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태교를 열심히 하였다.
아내는 힘들게 일을 다녀오고 바로 아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인형도 만들고 태교에 좋다는 것도 다 찾아서 이것저것 해보았다.
나도 아빠가 태교 때부터 잘해야 아이가 머리가 똑똑해진다는 말을 듣고 뭔가 하긴 하였다.
지금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노래도 불러주고 책도 읽어주고 기분도 좋게 해 주고 그랬다.
임신을 하게 되면 병원을 좀 자주 가야 하는데 난 그때마다 무조건 휴가를 쓰고 아내와 같이 병원을 함께 하였다. 하루도 혼자 보낸 적이 없다.
병원을 가면 간혹 혼자 온 여성들이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몸은 힘들어 보이는데 아빠나 누구 없이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내를 더욱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임신 기간 동안 즐거웠던 건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였는데 특히 아기용품을 사면서 기분이 좋았다.
소비를 하면서 기분 좋게 소비를 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보통은 내 옷 내 신발 여행 이런 쪽으로 소비를 해왔고 알다시피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수록 설렘이나 기분 좋은 흥분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 생명체를 위해 이것저것 사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베이비페어도 몇 번이나 갔다.
우리는 유모차를 사려고 계획했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유모차의 카테고리는 크게 3가지 정도였는데 디럭스/절충형/휴대용 이렇게가 있었다.
디럭스/휴대용으로 가느냐 아니면 절충형으로 가느냐 그런 차이였는데 각자의 장단점은 있었다.
디럭스는 크고 무겁지만 핸들링이나 유모차 안정성이 좋았다. 대신 휴대가 불편해서 어디 갈 때는 휴대용 특히 비행기를 타거나 할 때 휴대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충형은 딱 디럭스와 휴대용 중간이었다. 특히 내가 알아본 절충형은 360도 회전이 되는 유모차였기에 활용면에서는 디럭스와 휴대용 보다 실생활 활용에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이 됐다.
그렇게 난 절충형을 생각하고 베이비페어를 가서 내가 생각한 브랜드의 유모차를 끌어보기 위해 베이비페어 하는 장소로 갔다.
베이비페어 하는 장소 입구에서 마침 내가 원하던 유모차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주차장에서 베이비페어 장소로 이동 중에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유모차가 보도블록에서 덜덜 떨리고 흔들리면서 아이 머리가 통통 튀는 걸 보게 됐는데 그 순간 바로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전혀 절충형을 하고 싶지 않았다.
들어가면서 디럭스를 찾아보게 되었다.
유모차도 알아보고 카시트도 알아보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은 이것저것 다 알아보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작동하는 부분이나 구매하는 부분에서 좀 어리바리한 것도 있었는데 그것조차 초보 아빠일 때 생기는 경험이다 생각하니 기분이 또 좋아졌다.
그리고 아이가 나왔을 때 능숙하게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픈 마음에 유모차나 카시트를 사고 나서 혼자 여러 번 능숙해질 때까지 작동시켜 보았다.
위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고 준비했다.
아이 피부에 닿는 모든 걸 소독한다. 물론 100% 그럴 순 없겠지만 소독할 수 있는 건 모두 소독하고 깨끗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집안 청소 소독 그리고 차까지 업체에 맡겨서 소독까지 다했다.
샤워도 하루에 두 번씩 했다. 아이를 만지려면 항상 손을 씻어야 했기에 생활화했다.
그때 당시 코로나 시국은 아니었기 때문에 손 씻는 게 나에겐 엄청 익숙하진 않았는데 아이가 생긴 이후로 항상 손을 엄청 씻어댔다.
아이를 갖게 된 이후로 우리 부부는 이야기에 대한 주제가 거의 육아 주제로 바뀌게 되었고 서로 알아본 부분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아직 뱃속에 있었지만 우린 이미 아빠 엄마가 되어 있었고 사진으로만 얼굴을 봐오고 실제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우린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술을 좋아한다.
대부분 신혼부부들이 그렇듯 월요일~일요일까지 7일 중 7일은 시켜 먹고 그중 5일은 술을 마셨다.
그러나 임신하고 나서 우리 부부는 술을 끊게 되었다. 나는 술이 당기긴 했지만 아내를 두고 혼자 술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회식 아닌 이상 친구들과의 약속을 잘 잡지도 않았고 집에서도 맥주 한잔 혼자 먹지 않았다. 막상 혼자 먹어도 아내랑 같이 먹는 술과 맛이 달랐다. 혼자 먹는 술은 맛이 없었다.
나도 그냥 끊게 되었다.
아내는 대단한 게 매운 것도 밀가루 음식도 잘 먹지 않았다. 특히 매운 건 하나도 먹지 않았고 밀가루 들어간 음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내가 점점 살이 올라오며 좀 슬퍼하긴 했지만 난 그냥 임신한 나의 아내 모습 자체가 너무 아름다웠고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가 대단하다는 걸 그녀를 보며 느꼈다.
왜 아빠가 임신을 안 하고 엄마가 임신을 하게 만들었을까.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깨달았다.
남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아이의 생존율이 극히 낮아지게 될 것이다.
아이의 태아사진이 나올 당시 얼굴이 평범한 사진들이 없었다.
맨날 뱃속에서 얼굴은 찌그렇뜨리고 울고 있는 그런 모습의 사진들 밖에 없었다.
입을 툭 내밀며 불만 섞인 얼굴들. 나는 그 얼굴조차 너무 귀엽고 왜 그렇까 너무 궁금했다.
아내는 얼굴이 엄청 예쁜 얼굴이 아니라 좀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이는 흑백사진의 초음파 사진으로만 봐도 나를 닮은 아이였다.
아내에게 좀 미안했다.
어찌어찌 하니 아이를 갖게 된 지 10개월
아내는 출산 전날까지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퇴근 후 우린 다음날 이른 아침 출산이라 2주간의 짐을 싸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아픈 일이다. 퇴근하자마자 짐을 싸고 다음날 출산이라니......
아내가 고생을 한 것이 미안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 줘서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10개월간 정말 서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태교를 하였다.
성심성의껏 다 하였고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한 것들이라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하고 열정 있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