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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첫 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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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밍웨이 Jun 02. 2024

첫 줄

6. 흑백기억

밤 사이 그 짧은 시간의 고백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 정후와 유진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업 과제기간 한 달의 썸이 엄청나게 빠르듯 수줍은 고백 이후 이 연인들의 시간은 엄청난 속도로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후는 곧 의경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다. 

정후의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분이 경찰 어디에 계셔서 나중에 정후가 의경으로 빠지게 되면 그분께 말씀드려 고향으로 데려 올 수 있다고 하셨다. 

정후는 항상 유진 옆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행복한 시절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매도 먼저 맞는 매가 낫다고 어차피 갈 거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었다. 

정후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보통 생각하는 의경 은 음주 단속을 하는 경찰의 비서 같은 역할 또는 우리 생활에서 걸어 다니며 보안순찰을 하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을 했다. 정말 가볍게 생각했고 가볍게 결정을 했고 의경 시험을 보게 되었다. 

어느덧 입대 날짜까지 받게 되었다.

유진과 사귀는 한 달, 그 한 달 동안 정후와 유진 불 같은 연애를 하였다.

서로 태어나 처음 사귀는 그 둘은 모든 게 낯설었고 어색했고 순수했다.

20살의 풋풋한 사랑이라는 걸 이야기만 들었지 해보지 않은 그 둘은 그렇게 20살 풋풋하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한 달 동안은 매일 아침, 학교에서 만나 같이 점심, 저녁,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새벽마다 유진네 집 근처 슈퍼에 들어가 따듯한 호빵하나와 두유 하나를 품에 안고 기다렸다.

아침에 날이 밝고 유진이 집에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정후는 몰래 유진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아주었고 준비해 둔 간단한 아침을 내밀었다.

밤에 헤어지고 나서 각자의 집에서 새벽 늦게까지 5시간, 6시간 통화를 나눈 적도 허다했다. 배터리가 없어서 충전기에 전화기를 충전시키며 전화를 했고 배터리가 뜨거워 얼굴에 천을 받쳐두고 통화를 했다. 

이들의 사랑은 D-DAY가 다가올수록 애틋함이 슬픔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정후도 유진도 시간이 되어갈수록 초조했고 말을 나눌 때마다 둘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지는 일이 종종 생겼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 군대 전 둘은 같이 롯데월드를 놀러 갔다. 

정후는 처음으로 바이킹을 타봤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며 유진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함께 모노레일을 타고 실외를 나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하늘은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주었다.


2005년 12월 첫눈


그렇게 그 둘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고 서로를 안고 가슴속에 새겨두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D-DAY는 결국 오고야 말았다.

유진은 정후를 보러 가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는 문자만 남기고 이불속에 파묻혀 울고만 있었다.

너무 울어 유진의 눈이 퉁퉁 불어났다.

정후는 그렇게 훈련소 입소를 했다.

정후가 입대하고 다음날 유진은 학교에 가려 집을 나섰다.

매일 아침 숨어있던 정후가 떠올랐다. 혹시나 정후가 어디선가 나올까 기대를 하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내내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아침에 늘 챙겨주던 단팥호빵 하나와 따듯한 두유. 사실 유진은 호빵을 싫어하고 두유도 잘 먹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유독 호빵 하나와 두유가 간절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 유진은 슈퍼에 들러 호빵하나와 두유 하나를 사들고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운 겨울날. 벤치에 앉아 호빵과 두유를 보기만 하고 먹지 않았다.

유진은 차마 먹지 못했다. 또다시 호빵과 두유를 보며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버스를 몇 대를 보냈을까.

유진은 정후가 벌써부터 그립고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나쁜 놈'


정후 때문에 마음 아픈 이별을 벌써부터 겪는 유진 자신에게도 한심했다. 

정후 원망도 하였지만 얼마 안 가 그 원망은 사라지고 원망에 덮인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이 다시 유진을 감쌌다.


한편 정후는 훈련소를 거처 중앙경찰학교를 가게 되었다.

거기서 시험만 잘 보면 무조건 본인의 지역으로 갈 수 있었다.

정후는 공부와 담을 쌓은 친구였다. 공부가 한순간에 잘 될 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시험은 망했고 그날 저녁 아버지에게 통화하여 아버지 지인분께 말씀 부탁 드린다고 말을 했다.

대망의 지역 배정날

모든 의경 훈련병들이 연병장에 집합했고 앞에 직원이 호명 후 지역을 불러주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정후의 이름이 곧 불렸고 지역도 불렸다.


"임정후, 양주"


'양주...... 양주???????'


정후는 양주로 본대배치가 되었다. 자신이 사는 곳과 완전 다른 곳이었다.

정후는 결과 발표 후 바로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보았다.


"아버지 저 정후인데요. 혹시 그 지인분께 말씀은 드리셨나요?"


"아이고 허허허 까먹었다. 나중에 말하면 되지 뭐"


정후의 아버지는 소탈하게 웃으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정후는 유진에게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바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면목이 없었다.

자면서 눈물이 흘렀다. 


'결국 2년간 떨어져야 하는구나'


정후는 다음날이 돼서야 유진에게 연락을 했고 유진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정후가 걱정됐다.

그렇게 정후는 본대 배치가 되었고 제대로 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 군생활은 정말 힘듦 그 자체였다.

정후의 부대는 데모를 막으러 다니는 부대였다. 일주일에 한 번 쉬고 나머지는 계속 데모 막는 일을 했다. 기강이 세고 그 사이에 6.25 시절의 똥군기가 있던 그런 부대였다.

매일매일마다 지옥이었고 항상 누군가 맞고 때리고 하는 일상이 생활이었고 정후도 이런 생활이 예외일 수 없었다.

이런 고생에서 버틸 수 있던 힘은 바로 유진이었다.

유진의 목소리 하나에 하루 있던 고생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고 부대로 와있는 유진의 편지는 힘들 때마다 그를 수시로 위로해 주는 힐링 그 자체였다.

그렇게 1년 이 지나고 정후의 군생활은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군생활이 편해지고 익숙해져 갈수록 유진의 편지는 점점 오지 않게 되고 서로 전화도 예전보다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유진도 더 이상 20살 때의 유진이 아니었다. 유진은 평상시에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바쁜 일상이었다. 언제까지나 정후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고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둘은 그렇게 얼굴 보는 날보다 안보는 날이 많았고 목소리를 듣는 날 보다 안 듣는 날이 많아져갔다.

어느 날은 정후가 휴가를 나오고 1시간만 보고 서로 쉬기 위해 각자 빨리 헤어져 집에 들어갔다.

2년이란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느렸고 서로가 서로에게 점점 멀어지는 시간이었다.

정후와 유진은 각자 느끼고 있었다. 

서로의 작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건 언제라도 누군가가 툭 건들면 떨어지는 외줄에 서있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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