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첫 줄
정후와 유진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아이러니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사랑하지만 서로 사랑하면 서로 상처를 입을 것 같아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든 사이가 되어 버린 둘.
그렇게 정후가 제대한 그 해 5월 그들은 헤어졌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유진은 학교를 4학년 모두 마치고 대학원을 다녔다. 학교 장학생이었고 그 과의 전설이었으며 대학원에서도 성적과 성과 모두 좋아 대학원 내내 장학금과 상장을 휩쓸었다.
그렇게 취직도 대기업으로 갔고 그 회사에서도 역시 에이스의 면모를 뽐내며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한편 정후는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운이 좋게 한 서울의 한 독일계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어느 정도 정후가 공부한 거 대비 수입이 괜찮은 회사였고 만족했다.
그렇게 그들이 각자의 삶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그만큼 흐르는 것도 모른 체 3년이란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어느 날 저녁, 정후는 그 어느 때보다 너무 힘든 날이었다. 회사에서 너무 힘든 일을 겪고 누군가에게 털어도 보고 울고 싶고 한 그런 울적한 날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누구에게도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호숫가에 멍하니 서서 물에 비친 달을 쳐다보는 정후.
정말 불현듯 유진이 생각났다.
헤어진 지 3년이 흘렀지만 이렇게 힘들 때 속마음을 마음껏 털어놓고 싶은 유일한 사람.
하지만 이미 정후의 핸드폰에는 유진의 번호가 없었다.
3년이나 잊고 지낸 번호... 정후의 머릿속에서도 이미 유진의 번호는 지워지고 없었다. 아무리 애를 쓰고 기억해 보려 해도 기억은 나지 않았다.
너무 보고 싶었다. 그날따라 너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정후의 손가락이 자동으로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군생활 2년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걸던 ‘콜렉트콜’
손가락은 그 시간을 증명하듯 거침없이 번호를 찍어 정후 대신 통화 버튼까지 눌러주었다.
다른 사람 번호면 어떡하지? 맞으면 뭐라고 말하지? 이런 걱정하기 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