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증질환, 엄마, 그리고 분가

혼자 살고 싶었지만, 이런 식이라고?

by 외강내유 이모씨

불운이 찾아왔다! 어쩔 수가 없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내가 의료비의 5%만 부담하는 중증질환산정특례자로 발탁(?)된 사건이다. 작년 여름 예고편도 없이 들이닥친 질병 덕에 불운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실감했다. 다행히 초기로, 표준치료를 마쳤으며 지금은 약을 먹으면서 관리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평생 몸을 소중히 대하지 않았다. 극도의 수면부족과 스트레스, 나쁜 생활습관을 에너지 삼아 직장생활을 견뎌왔다. 월화수목금금금 근무, 무수한 새벽 퇴근, 책상에 엎드린 쪽잠 수면, 칼로리와 당분 폭탄의 야식 메뉴, 5보 이상 승차의 운동 부재 일상, 아이템 고민과 마감 스트레스 등등.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과 성을 다했는지는 미스터리. 그 와중에 ‘내가 미모는 몰라도 건강은 타고났다’는 쓸데없는 자신감까지 장착하고 30년 직장생활을 버텨냈다.


그렇다고 병에 걸린 게 내 잘못은 아니다. 가장으로서 다른 선택의 여유도 없었고 같은 환경에서 일한 동료들이 다 환자가 된 것도 아니다. 나는 운이 나빴다. 어쨌든,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당혹함과 원망, 우울감 등의 단계를 지나 어리광이라고는 1도 없는 K장녀, 대문자 T답게 문제해결 모드로 전환했다. 1년 여 동안 수술과 방사선치료, 각종 검사 등을 받았고, 주위에서도 대충 다 알게 되었으며(주위에 알리고 걱정을 듣는 일도 은근 스트레스다), 나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엄마는 왜 자식을 위로할 줄 모르는 걸까?


엄마에겐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연세 많은 엄마가 충격이라도 받지 않을까, 너무 걱정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라는 마음이 컸다. 동시에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엄마와 따로 살 결심을 했다. 놀란 가족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큰 동생 부부가 엄마를 모시겠다고 나섰다. 동생들은 내게 미안해하면서 엄마는 이제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누나는 병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수술을 앞둔 주말, 3형제가 모여 먼저 엄마에게 상황을 알린 후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던 내가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나를 보고 눈물이라도 흘리시는 거 아냐? 그럼 나도 덩달아 울어버릴 것 같은데... 그러긴 싫은데... 걱정과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마주한 순간 “니는 참, 애도 많이 멕인다.” 엄마의 첫마디는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아, 역시 우리 엄마! 내가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사실 그 말은 걱정을 에둘러 표현할 걸 수도 있지만, 내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엄마는 상대가 취약한 순간에 왜 늘 이렇게 서운한 말을 할까? 위로와 걱정이 필요한 순간에 왜 이런 식일까? 덕택에 눈물바람 사태는 나지 않았고, 서로 쿨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엄마는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간단한 짐을 싸서 동생을 따라나섰다.


동생집에서 사시기를 거부한 엄마


그래서 지금은 엄마랑 따로 잘 살고 있냐고? 늘 꿈꾸던 독립을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해피하냐고? 흠. 인생사 그렇게 수월하게 풀릴 리가! 동생 집에 가셨던 엄마는 인지저하증세와 평소 성격이 더해져 온갖 분란을 만들어내셨고, 엄마를 감당해내지 못한 동생들은 모두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나를 왜 이런 낯선 동네에 데려다 놓고 감옥살이를 시키는 거냐?” “나는 여기서 못 산다. 이런 시골 동네(경기도 남양주) 싫다. 나 살던 내 집으로 데려다 놔라.” “내가 니 누나랑 같이 사는 게 무슨 문제냐? 나랑 살면 병이 안 낫는다냐.” “누나가 집에 없다고? 그럼 나 혼자 살면 되지. 내가 혼자 왜 못살아?”


나이 들어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기 주장 강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 엄마는 더 심한 게 당연하다. 거기에 상황을 자꾸 망각하는 초기 치매 증세까지 더해져 상상 이상으로 문제가 심각했다. 엄마는 온몸과 마음으로 변화를 거부하셨고, 그걸 강요하는 자식들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평소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긴 했지만 욕을 하지는 않으셨던 엄마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다. 논리도 안 맞고 근거도 없는 감정적인 말들이 필터 없이 쏟아졌다. “형님, 걱정마세요. 제가 어머니 잘 모실게요.” 했던 고마운 심성의 큰 올케는 유독 엄마의 타깃이 되어 심신이 피폐해졌다. 아들들은 수시로 모여 대책을 상의했으나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에너지는 분노, 목표는 컴백홈


정말 그때는 엄마가 뭐에 씌인 사람처럼 행동하셨던 것 같다. 평정심을 완전히 잃으신 상태랄까. 엄마의 에너지는 분노였고, 목표는 나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본인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신 걸까? 옮긴 거처가 큰 아들집이었지만,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에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가끔 동생이 모시고 갈 때도 하룻밤 주무시고 난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곤 했었다.


엄마가 동생집에 사는 데 익숙해지시라고 한동안은 연락을 딱 끊고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동생집을 방문해서 잘 적응하고 사시기를 부탁드리기도 했다. 편지를 쓰기도 했다. 나는 내 몸만을 돌보고 병 치료에 힘쓰겠다고. 하지만 누구도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급기야 엄마는 동생이 잠깐 방심한 사이 혼자 길을 나서 예전 집(내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는 7시간여의 대모험을 감행하셨다. 혼비백산한 자식들과 수십 통 전화통화 끝에 무사히 동생 차를 타고 돌아가시는 중에도 엄마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내일은 꼭 성공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우셨다.


당시 나는 중증환자들이 모여 사는 강원도 한 공동체에 잠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와, 방사선 치료를 다니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내 집, 내 공간을 누리고 있었지만 치료가 끝나면 내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이 집에 돌아오시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쩔 수가 없다. 더 이상 엄마가 동생집에 계시면 무슨 사달이 벌어질 것 같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살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어찌저찌 우여곡절(이 단어 뒤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끝에 나는 집을 나왔고, 엄마가 돌아오셨다.


엄마는 집으로, 나는 밖으로


그토록 원하던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는 행복하냐고? 그럴 리가! 우리는 ‘아흔이 넘은 엄마가 혼자 살야야 한다’는 새로운 버전의 문제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해답 비슷한 걸 찾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 그래도 최소한 엄마로 인해 시련에 들었던 큰동생 가족은 구제가 된 셈이다. 엄마와 자식들 간에 폭발 일보직전으로 부풀어오르던 갈등과 위기도 일단 고비를 넘겼다.


지난 일을 소환해보니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진다. 불과 1년 여 년 일인데,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엄마는 왜 그렇게 막무가내로 살던 집에 가고자 하셨던 걸까? 집을 떠나면 불안한 걸까? 돌아갈 곳이 없어질까 봐 그러시는 걸까? 내 기억에는 한번도 엄마가 갈 곳을 걱정할 상황이 벌어진 일이 없었는데... 나랑 30 여 년 살면서도 늘 집주인 노릇을 하셨지, 딸 집에 얹혀산다고 생각하셨을 리는 없는데... 집에 돌아가면 나랑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신 걸까? 이유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엄마는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랑 같이 살던 때가 정말 편안한 시절이었는데 그때조차도 엄마는 불만과 불평이 많으셨으니까.


늘 자유롭고 싶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혼자 살고 싶다는 희망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문장은 레토릭이 아니라 완벽한 현실이었다.


나는 요즘 엄마의 처지가 너무 안쓰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음이 아프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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