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실패한 직후, 내 실패로 인해 엄마는 식음을 전폐했고 말수가 더 적어진 아빠와 마음을 나눌 수 없었다. 새롭게 도입된 입시제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재수를 선택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동생들 보는 것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인생의 절벽에 서서 우왕좌왕하던 중 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0년 인생 최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취직을 제안했다. 사장님과 직원 1명이 있는 단출한 창호 회사였다.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날 불러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혹시 직장 옮길 생각 있니?"
뜻밖의 제안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장님을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사장님은 말을 이어갔다. "형이 운영하는 지방 신문사인데, 거기 비서실에 사람을 구한다고 해. 거기 가서 일해라. 넌 여기 있기 아깝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당장 옮기라고 하셔서 따뜻한 봄날 직장을 옮겼다. 지방 신문사지만 지역을 대표하고 있었던지라 나름 인지도가 있었고, 사옥을 새로 지은 상태라 깔끔하고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꽤 만족한 상태로 본격적인 내 첫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첫 출근한 오전, 총무국장과 함께 회사 곳곳을 다니며 인사 다니느라 바빴다. 다시 돌아온 비서실에 함께 일하는 선배가 있었다. 26살, 예쁜 눈을 가진 언니였는데 22살인 내가 귀엽다며 웃으며 나를 맞아줬다. 함께 일할 파트너가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일을 배워나갔다.
"미쓰리! 녹차 좀 타 와"
"야! 미쓰리! 박 사장한테 전화 좀 걸어봐"
"미쓰리! 이 기사한테 나 이제 퇴근할 테니 차 준비시켜 놓으라고 해"
"야! 넌 내 목소리도 몰라? 그래서 어디 비서 하겠어? 때려치워"
"미쓰리, 진짜 미안한데, 오늘 사장님 결재되니? 내가 나가봐야 해"
"미쓰리, 비서가 사장님 스케줄도 모르면 어쩌니?"
매일 미쓰리를 외쳤다. 90년 대 초반에 여직원을 대하는 상사들의 태도는 지금과 사뭇, 아니 아무 많이 달랐다. 그 차별을 견디며 직장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견디며 일했다. 그렇게 2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함께 일하던 언니가 교환실로 인사이동이 났다.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렇게 도망치듯 가버렸다. (왜 그렇게 가 버렸는지 알게 된 건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비서실 새로 온 여직원 아무도 건들지 말라던데? 000 인천지부 원장 딸 이래"
공석이었던 내 옆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눈이 동그랗고 짧은 스커트가 눈에 띈 그녀는 정부 고위 공무원 딸로, 나보다 4살 많았고, 4년제 대학 졸업 후 낙하산으로 취직한 것이다. 엄청난 집 딸이 내 동료로 왔던 것. 이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망했다. 꼼짝없이 혼자 일하겠군'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색안경을 잔뜩 끼고 후임 언니를 맞이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언니는 성격도 좋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우리는 빨리 친해졌고, 언니가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됐다. 지금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들어준 것뿐이라 했다. 뭐, 재수는 없었지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모르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급여를 서로에게 공개하면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난 고졸이고 경력 3년, 언니는 4년제 대학졸업이고 경력 1년.
두 사람의 급여 차이가 무려 40만 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졸과 대졸 급여 차이가 이렇게 나는 줄 몰랐다. 사실 이때까지도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난 아무 죄 없는 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언니를 미워할수록 죄책감은 몰려오고, 불만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결국 난 급여 차이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리고 퇴사 준비를 하면서 전문대 입학을 준비했다.
이렇게 3년 4개월, 첫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때 언니와 급여를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불만을 품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며 그대로 근무했더라면, 지금의 내 인생과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지만 그때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