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는 거야?

지겨운 회식. 누굴 위한 복지일까?

by 퍼플슈룹
오늘 회식이다!


지겨운 회식, 오늘도 한다네. 매번 자기들이 먹고 싶은 거 먹고, 술만 마시고, 말단 직원들은 욕만 먹는 회식, 대체 왜 가야 한단 말인가! 대체 누굴 위한 회식이란 말인가!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불참은 엄두도 못 낸다. 다음 날 폭풍 같은 잔소리를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회식에 가면 국장 옆에 앉지 않기 위해 여직원들은 눈치싸움을 한다. 옆에 앉으면 술 따르기 바쁘고, 강제로 마시기까지 해야 했다. 술을 마시든, 못 마시든 상관없다. 더 기가 막힌 건 옆에 술은 늘 여직원이 따라야 했다. 자기 손 멀쩡하게 있으면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날은 남직원이 술을 따르려 하자,



무슨 짓이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참았다. 정말 꾹꾹 참았다. 끔찍하게도 듣기 싫었던 저 말을 오랜 시간 참았다. 그런데 진짜 오늘만큼은 참고 싶지 않았다. 회식 자리 가장 끝에 앉아서 밥만 먹고 있던 내가 정말 큰소리로 말했다. "국장님! 여직원들은 술 따르려고 회식 오나요? 여직원들이 술집 아가씨들도 아니고 술을 왜 따라야 하나요? 그리고 못 마시는 술을 왜 자꾸 강요하시나요?" 회식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상황 끝!






입사 1년 차, 내 나이 22살. 겁 없던 청춘이었다.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열정 넘치던 청춘이었다. 직장 상사의 꼴 같지 않은 태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 행동은 훌륭했다. 그런데 국장 반응이 기가 찼다.


"아, 쟤가 또 시작이네. 야! 미스 리, 너 큰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지? 그리고 예부터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는 거야" 이 말을 듣고 돌아버린 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렸죠? 미스 리가 아니라, 이름 부르시라고요! 그리고 어디에 나왔나요?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다는 말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주변에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막내가 부서장에게 덤볐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가장 먼저, 경리부 언니가 나를 향해 그만하라는 손짓을 한 후, 씩씩대는 국장에게 "국장님, 제가 따라 드릴게요. 얼른 드세요" 비서실에 같이 근무하던 언니가 나를 보고, "그만하자. 저 인간 못 고쳐"

그래도 난! 계속 말해서 본인이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강심장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아났고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나를 말리고 국장을 다독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모두 나처럼 생각하고 있으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막내 직원의 쓴소리가 먹혔던 걸까? 이후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이 술 따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시키면 무조건 술 마시기, 여성을 희롱하는 이야기' 등 잘못된 회식 문화가 많아서 더 싸워야 했다.


부당함을 말하는 상사를 향해 모두가 함께 소리 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혼자였다. 덕분에 지어진 영광스러운 별명.


쌈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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